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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우의 문화NGO칼럼>
정치와 문화에 대한 시민의식

관리자 기자  2002.09.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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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시풍토가 사회전역에 퍼질때 정치는 올바로 설 것” 당선 소식을 듣고 골똘히 묵상에 잠겨 있는 프랑스의 어느 대통령에게 무엇을 생각하느냐고 기자가 물었더니, 전국의 도서관 전산망을 통합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우리 나라 어느 공직자는 자신의 장례식 때 애국가 3절까지 불러달라고 했다는데, 이처럼 국가와 민족을 내세우는 거창한 상투어에 젖어 사는 우리로서는 이를 대통령의 첫 당선 소감으로 여기기엔 고개를 갸우뚱거릴 만하다. 요즈음 우리의 정치권을 바라보자면 시민들의 문화에 대한 성숙한 인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한 걸음 전진시켰다고 한동안 떠들어대던 국민경선제를 휴지통 속으로 던져 버리고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후보를 다시 뽑겠다고 하거나 또는 제1, 2, 3의 신당(쉰당?)을 만들겠다는 정치권은 염치도 없다. 얼마 전 지방선거가 끝나고 난 후 내가 사는 지역의 어느 구청장은 당선 보름만에 내걸었던 공약을 뒤집었고, 광역시장은 약속했던 공약의 절반이 현실성이 없다고 폐기 처분을 고려 중이라 한다. 사업하는 이들이 약속어음을 지키지 못하면 형사처벌을 받지만, 정치인들이 공약을 어긴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처벌이 없다. 이렇게 손쉽게 말을 뒤집는 정치인들에 신물이 난 국민들은 이제 정치에 대해 냉소와 무관심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이들의 가정 교육이 부모의 책임이듯이 우리가 대표로 뽑아 놓은 이들을 제대로 양육하지 못하는 것 또한 우리의 책임이다. 정치인을 탓하기 이전에 정치인을 뽑은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아무나 정치를 한다고 나서지 못하도록 정치인에 대한 자격이나 제약 조건을 엄하게 만드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안이다. 만약 어떤 이가 사욕으로 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이것저것 걸리고 귀찮아서 차라리 안 하는 편이 나아 스스로 물러서도록, 제도와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래서 정치는 시민에 대한 봉사일 수밖에 없도록 사회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그런데 이 방법에는 문화적 접근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경선제에서 보았듯이 아무리 제도가 있어도 지키지 않으면 소용이 없고, 또 그것을 지키게 만드는 것이 바로 사회·문화적인 주변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의 몰염치한 행태에는 가차없는 시민들의 응징이 뒤따르고, 또 학연이나 지연보다는 평상시의 공복으로서의 언행에 따라 정치인을 선택하고 심판하는 분위기가 사회에 고조된다면, 당연히 정치인들은 민생현안을 위한 정책 대결로 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민들의 삶의 질을 고양시키고자 노력하는 문제, 즉 문화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 정치인들의 관심사가 모일 것이다. 사람이 나무라면 제도는 숲이고, 문화는 나무와 숲이 자라는 땅이다. 썩은 땅에서는 어떤 나무라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것이고, 또 아무리 좋은 나무를 한 두 그루 옮겨 심어놓는다고 해도 결국 시들기 마련이다. 올바른 정치 문화가 이 땅에 뿌리내리지 않는 한, 한 두 명의 좋은 정치인이 있다해서 정치 전반이 바뀌지 않는 걸 우리는 지난 몇 차례의 선거를 통해 보아 왔다. 정치인은 당연히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리고 또 충직한 공복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존중할 때, 그때 우리 정치가 바뀌는 것이다. 정치가 문화를 바꾸기는 어렵지만 문화는 정치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즉 민생 현안을 중히 여기는 마음, 바로 그것은 삶의 질에 관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개개인의 삶의 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도서관이나, 미술관, 거리의 경관, 공원과 광장의 확충 등에 정치인들의 관심과 노력이 쏠리고 또 그러한 문화 중시의 풍토가 사회 전역에 퍼질 때, 그 때 정치는 올바로 설 것이다. 그런데 그 밑바탕을 만드는 책임은 정치인이 아닌 시민, 바로 우리들에게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