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분야보다도 낡은 정치가 오랫동안 한국사회의 발전을 가로막아 왔다는 사실은 국민 누구나 인정한다.
이와 같은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핵심적인 선거 전략으로 낡은 정치의 타파를 부르짖었던 노무현 당선자와 그 지지자들이 지난번 대선에서 승리하였다. 정치개혁이라는 구호는 정권 교체라는 한나라당의 선거 구호를 능가하여 불과 투표일 한 두 달 전만 해도 민주당은 절대 안 뽑겠다던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려놓았고, 결국 개혁을 바라는 민심은 정당을 무시한 채 후보자 노무현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물론 대전으로의 수도 이전과 같은 지방분권도 쟁점사항이었지만, 어쨌든 지난 대선의 최고 쟁점은 무엇보다도 신물이 난 기성정치인들에 대한 심판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대선이 끝나자 요즘 언론에는 정치개혁보다 인수위원회의 활동과 지방분권에 관한 기사들로 꽉 차 있다.
최근 인수위의 발표 내용인 즉, 완전한 지방자치의 정착을 위해 중앙의 돈과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방대학과 지역문화를 육성하여, 인구가 줄어드는 지방에서 지역민들이 떠나지 않고 머물러 살게끔 전 국토를 균형 있게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물론 좋은 방향이다. 지역문화가 꽃핀다는 것은 지역민들이 나름대로 지역에서의 삶에 자긍심을 갖고 스스로 삶의 질적 향상을 느낀다는 소리이다.
그 대책이야 여러 가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지역축제나 문화프로젝트비를 분배하는 방법, 문화의 집이나 주민자치센터 등 각종 문화시설들을 민간위탁으로 전환하여 좀 더 활성화시키는 방법 등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중앙의 지부로서가 아니라 독자적인 이름과 자존심을 갖고 자기 지역 내에서의 삶과 문화를 지키는 이들의 꿋꿋한 정신과 이에 따른 사업을 진작시키고 지원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중앙에서 지방문화활성화 대책을 세워주고 하달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문광부 관료의 입장에서 지방문화활성화 대책을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제 지역의 문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지역민들의 입장에서 지역민 스스로가 그 대책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여태 자발적으로 지역의 사업들을 말없이 진행해 왔던 지역의 문화관계자들이나 단체들을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체적인 사업들이 이루어진다 할 지라도 정작 총체적인 지역문화활성화에서 이러한 것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숨어 있다.
위에서처럼 지방자치가 실현되는 것이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하나만큼 고양시킬 효력을 지니고 있다고 친다면, 사실 전국적인 정치풍토의 개혁은 열만큼의 효력을 지닐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정치개혁입법 처럼 정치개혁만 제대로 된다면, 설령 지역문화활성화에 대한 그 어떤 특별한 대책이 없더라도 지역문화가 열 배나 활성화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정치인들이 진정 지방분권과 지역문화활성화를 바란다면 자신들의 목을 옥죌지도 모를 정치개혁입법부터 제안하고 시행해야 한다. 양당의 의원들이 이미 발의했던 정치개혁입법은 지난 해 11월 14일 처리시한이 만료됨으로써 국회에 보류된 채 무산되었지만, 그 내용의 일부는 이미 언론에 공표된 바 있다.
예를 들어, 민주당은 100만원 이상의 정치자금은 반드시 수표를 받고 50만원 이상의 선거 비용은 카드로 결제를 하고 선거회계는 단일장부로 투명하게 공개한다든지 하는 정치자금법의 개정을 정치개혁입법으로 제안했었다.
물론 요즘도 거론되고 있는 중앙당의 축소 및 지구당의 폐쇄와 상향식 공천 등의 정당법 개정도 당연히 위에서 말한 정치개혁입법에 속할 것이며, 또한 전에 제외되었던 정치자금까지 돈세탁방지법에 포함시키는 것도 정치개혁입법일 것이다. 더욱이 노후보가 공약했다가 민주당의원들이 국회법사위에서 뒤집어버린 ‘대통령 친족의 비리전담 감찰기구 신설’과 ‘권력형 부패에 대한 특검제’ 공약 등과 같은 부패방지법에 관한 법안도 개혁입법이 될 것이고, 그리고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에 대한 인사청문회법 제정도 여기에 속할 것이다.
이에 관한 자료는 토론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인터넷에 이미 다 나와 있지만, 단지 현 국회의원들의 대부분이 실행할 의지를 갖지 않았다는 사실만이 시행의 어려움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만약 올해에도 정치개혁입법이 언론의 전면에서 슬며시 사라지고 대신 지방분권이나 지역문화프로젝트 등만이 인구에 회자된다면, 역시 정치인들은 제 손이나 발을 묶는 정치개혁입법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 이기주의자들이라고 국민들은 여길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건 한나라당이건 정말 지방분권과 지역문화육성을 바란다면 정치개혁입법부터 제안해야 한다.
만약 그들이 아니 하려고 주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