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 치과진료 시스템 구축돼 요양시설 방문 진료 가능

  • 등록 2025.05.14 20:3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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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노년치의학회, 후쿠오카 치과대학병원 방문진료 참관기 <2>

지난 2025년 1월 31일, 대한노년치의학회 주관으로 일본 후쿠오카대학교 치과병원을 방문했다. 초고령 사회에 먼저 진입한 일본의 치과의료 시스템, 특히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방문 치과 진료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직접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이번 워크숍은 ▲병원 견학 ▲구강연하(삼킴) 클리닉 ▲고령자 요양시설 탐방 ▲방문 치과 진료 참관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중 필자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관찰했던 부분은 방문 치과 진료였다.


후쿠오카대학교 치과병원은 1972년 ‘후쿠오카치과진료소’로 시작해 1973년 부속병원으로 전환되었고, 1974년 내과, 1975년 외과를 병설하면서 ‘구강 건강을 통해 전신 건강을 지킨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치과 중심의 통합형 의료기관으로 발전해왔다. 이 병원에는 ‘노인치과(Geriatric Dentistry)’와 ‘방문치과(Visiting Dentistry)’가 각각 독립된 진료과와 센터로 운영되고 있으며, 인근에는 개호노인보건시설 ‘선샤인시티’, 요양원 ‘선샤인플라자’ 등이 위치해 실질적인 의료-복지 연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방문 치과는 병원 방문이 어려운 환자들을 위해 의료진이 자택이나 요양시설, 혹은 치과가 없는 병원에 직접 찾아가 진료와 구강 관리를 제공하는 체계다. 대상자는 요양원 입소자, 와상 상태의 자택 환자, 입원 중인 환자 중 구강 문제가 있는 경우, 암 치료 중 구강 관리가 필요한 환자 등으로 다양하다. 진료 범위는 병원 반경 약 16km 이내(차량 기준 약 30분 거리)로 설정되어 있었다.


우리는 방문진료팀과 함께 세 곳의 요양시설에 동행했다. 출발 전, 환자별 진료 내용과 구강 관리 계획을 점검한 후 필요한 장비를 선별해 차량에 실었다. ‘이동진료’라고 해서 대형 밴을 상상했지만, 실제 차량은 소형 경차였다. 놀랍게도 발치, 수복, 보철, 틀니 조정까지 가능한 장비들이 체계적으로 패킹되어 트렁크에 모두 실릴 수 있었다. 숙련된 인력들이 단 몇 분 만에 모든 세팅을 마치는 모습에서 오랜 시행착오 끝에 다듬어진 효율성과 노련함이 느껴졌다.

 

치과의료진은 당일 방문 예정인 환자 리스트와 진료 항목, 치료 계획 등을 사전에 확인하고 준비한다.

 

이동 차량 트렁크에는 진료에 필요한 장비가 체계적으로 적재되어 있다. 틀니 조정, 수복, 구강기능 평가, 방사선 촬영까지 가능한 장비들이 모두 탑재 된다.

 

진료를 위해 시설로 향하는 후쿠오카대학교 치과병원 의료진의 모습. 가벼운 장비와 간편한 복장으로도 전문적인 진료 수행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첫 번째로 방문한 요양원에서 만난 환자는 침상에 누운 채 거의 움직일 수 없는 고령자였다. 의료진은 이동식 조명과 검진 기구를 활용해 구강 상태를 확인했고, 치주염이 의심되는 부위는 이동식 방사선 장비로 구내 촬영을 진행했다. 이후 혀의 백태를 제거하고, 이동식 엔진과 핸드피스로 틀니를 조정하는 등 외래 진료실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진료가 침대 위에서 무리 없이 수행되었다.


방문진료는 단순한 치료를 넘어, 환자의 구강 건강 상태와 기능을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관리하는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었다. 구강 기능 검진은 총 7가지 항목으로 구성되며, 이 중 3가지 이상이 비정상이면 ‘구강 기능 저하증’으로 진단된다. 우리가 참관한 날에도 발음 회수 평가(입술과 혀의 운동성 평가), 저작력 측정, 구강 건조 상태 평가 등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는 환자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씹고, 삼키고, 말하는 능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개선하려는 이 시스템은 고령자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지탱하고 있었다.

 

진료 현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또 하나는 감염관리였다. 단순한 검진이라 하더라도 진료팀은 헤어캡, 앞치마, N95 마스크를 착용했고, 요양원 출입 전에는 머리와 전신에 소독액을 분사하는 절차를 철저히 따랐다. 참관자였던 우리 또한 일반 덴탈 마스크에서 N95 마스크로 교체 착용한 후에야 진료 현장에 동행할 수 있었다. 고령자 환자의 감염 취약성을 고려한 이러한 시스템은 일본의 세심한 진료 철학을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거동이 불가능한 고령 환자를 대상으로, 침상 위에서 곧바로 진료가 진행되는 모습. 이동식 조명과 진료 장비가 모두 활용되며, 외래 진료와 거의 동일한 수준의 처치가 가능하다.

 

방문진료를 수행하는 의료진은 감염에 취약한 고령 환자를 배려하여 헤어캡, 앞치마, 장갑, N95 마스크 등을 완비한 채 진료에 임한다. 모든 진료는 철저한 위생관리 하에 이루어진다.


현재 일본에서는 전국 치과 병원의 약 24%가 방문진료를 실시하고 있으며, 이는 전체 치과 진료 중 약 3.9%를 차지하고 있다. 고령인구의 증가에 따라 병원 내원 자체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치과의료인이 병원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역사회로 직접 진출하는 구조가 이미 제도화되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시스템은 의료보험 및 개호보험 수가 체계 안에서 안정적으로 지원되고 있으며, 이는 환자와 가족에게 실질적인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번 후쿠오카 방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단순히 장비나 공간을 벤치마킹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면에 자리한 철학이었다. 일본은

‘구강 건강이 곧 전신 건강이며, 나아가 인간의 존엄과 직결된다’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 병원, 의료진, 복지시설이 긴밀히 연계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2025년,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다행히 지난 2024년 장기요양기관 평가 기준에 구강관리 항목이 처음 포함되었고, 2026년부터 시행 예정인「돌봄통합지원법」은 치과의사 역시 가정이나 시설에서 진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제 ‘치과도 찾아가는 의료가 되어야 할 때’가 정말로 다가온 것이다. 이 변화가 일시적인 제도 도입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시스템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은 물론,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와 치과계 내부의 의지와 준비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워크숍은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분명한 청사진을 제공해주었다.


이제는 우리도, ‘구강 건강이 전신 건강’이라는 명제를 실천으로 옮겨야 할 때다.
 

백연화 관악서울대학교치과병원 보철과 교수/대한노년치의학회 법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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