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일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휴가를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 새벽부터 아이와 함께 ‘청주고인쇄박물관’으로 향했다. 작년에 감명 깊게 읽었던 소설 『직지』가 떠올라, 이번 휴가 첫 일정으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김진명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이것이 역사인지 허구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작가가 말한 “합리적 허구 위에 상상력을 더한 이야기”라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치밀한 구성과 짜릿한 반전도 인상 깊었지만, 무엇보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와 한글 창제, 그리고 정보와 지식을 독점하려는 기득권의 방해 공작이 현재의 반도체 강국인 한국과 묘하게 겹쳐지는 지점에서 깊은 울림을 받았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은 규모가 작았지만 소설 속 장면들을 현실로 만나는 경험을 선사했다. 직지가 구한말 프랑스 외교관을 통해 프랑스로 건너가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었고, 프랑스 유학 중이던 박병선 박사의 집념 덕분에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양피지 문서, 종이 발명, 목판인쇄, 목활자인쇄, 금속활자인쇄 같은 역사적 성취는 단순한 기술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인류 문명을 발전시킨 거대한 힘이었을 뿐 아니라, 각 과정마다 섬세한 장인정신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글자본을 만들고 밀납글자와 밀납가지를 제작하며, 대나무 거푸집과 흙으로 채우고, 건조와 밀납녹이기를 거쳐 주형틀을 완성한다. 그 안에 1,200-1,400도의 쇳물을 붓고, 식힌 뒤 주형틀의 흙을 제거하여, 활자가지와 활자를 얻는다. 이어 숫돌로 다듬고, 준비된 조판대에 원고대로 활자를 배열한 뒤, 밀랍으로 고정하고, 먹을 발라 인쇄하고 제본하는 과정이다.
흥미롭게도 이 과정이 치과 보철물 주조와도 매우 흡사하다. 환자에게 설명할 때에도 종종 비유하곤 한다. 치아를 다듬고 본을 떠 석고를 붓고, 왁스업과 매몰, 주조와 연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금속활자 제작과 거의 같다. 각 단계마다 사용되는 재료의 수축과 팽창이 미세한 차이를 보이고, 온도와 습도의 영향도 받는다. 결국 구강 내에서 정교한 조정을 거쳐야 하며, 마이크로 단위의 교합 차이로도 불편감이나 두통까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가 신발을 조금씩 다른 크기로도 불편 없이 신을 수 있듯, 인체는 적응의 범위를 가진다. 이러한 설명을 하다 보면, 치과 보철물과 금속활자가 연결되는 순간이 재미있게 다가온다.
그리고 박물관의 활자 제작 모형 속 주인공은 주로 승려들이었다. 서양의 구텐베르크 금속활자가 성서를 위한 신앙의 열정과 인내에서 비롯된 것처럼, 동서양 모두에서 종교가 강력한 동기가 되었음을 새삼 느꼈다.
소설 『직지』에서는 한글 창제와 금속활자 보급을 가로막는 기득권층의 방해가 생생하게 묘사된다. 주인공 은수는 아버지를 잃은 뒤 중국을 거쳐 두명의 신부와 함께 2년 동안 걸어서 로마로 향한다. 마인츠에서 금속활자 인쇄를 시연하지만,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고자 금속활자를 만들지 못하도록 하려는 교황의 지시’에 관한 내막을 알고 절망한다. 인쇄술이 대중의 정보 접근을 가능케 한다는 사실이 동서양의 권력자들에게는 두려움이었던 것이다.
결국 소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식 독점이 기득권의 본성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한자보다 배우기 쉽고 보급이 용이한 한글 창제와 금속활자가, 오늘날 정보저장과 전파의 주요 매체인 반도체 강국 대한민국의 문화적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는 시선을 제시한다. 작가의 상상력은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아직 비어 있는 부분을 채워 넣은 것이며, 그 안에서 자부심마저 느껴졌다.
정보와 지식의 공유는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문자와 기록, 그리고 인쇄술이 세상을 바꾼 것처럼,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청주시가 이를 9월 4일에 격년제로 기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득 학부 시절, 치과 기공 실습에서 처음 해보았던 왁스업과 주조의 시간이 떠올랐다. 그리고 오늘날의 CAD-CAM 기술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발전이 한 흐름으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에 무더위조차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소설 속 은수는 유럽 최고의 지성 쿠자누스와의 사랑을 아버지와 새 글자를 만들던 상감을 향한 길로 승화시키며, 금속활자를 세상에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이후 수도원 침잠의 방에서 30년간 수행하고, 이후에도 25년 동안 묵언으로 살아간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지금도 비행기로 13시간 걸리는 로마로의 험한 여정을 2년 동안 걸어서 이동했던 은수의 마지막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Tempus Fugit, Amor Manet.
세월은 흘러도 사랑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