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이제 우리의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사람들은 AI에게 길을 묻고, 정보를 검색하고, 계획을 세우고, 때로는 마음속 이야기도 털어놓습니다. 특히 외로운 노인이나 사회적 관계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AI는 감정적 소모나 부담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ChatGPT나 Gemini 같은 생성형 AI 챗봇을 정보 검색뿐 아니라 정서적 지지와 조언의 도구로도 사용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AI 안부전화 서비스를 통해 고립된 노인들의 생활 상태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기술은 이미 상담, 교육, 돌봄, 의료, 행정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람의 삶을 보조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아마 되돌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AI가 아무리 빠르게 답을 주고, 아무리 다정한 문장을 만들어도 아직 닿지 못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헤아림’입니다. 헤아림은 단순히 정보를 이해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대가 왜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그 말 뒤에 어떤 시간과 상처와 기대가 쌓여 있는지 짐작하는 일입니다. 사람은 질문을 받을 때 늘 정답만 기대하지 않죠. 때로는 정확한 답보다 “당신이 왜 그렇게 느끼는지 알겠다”는 반응을 원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해결책보다 침묵이 필요하고, 때로는 조언보다 눈빛 하나가 더 큰 위로가 됩니다.
인간은 서로의 얼굴을 봅니다. 눈을 보고, 말끝의 흔들림을 듣고, 손짓과 표정의 미세한 변화를 느끼죠. 상대가 괜찮다고 말할 때 그 말 뒤의 피로와 망설임을 알아차리기도 하고, 조용한 미소 속에서 성취와 기쁨을 함께 읽어내기도 합니다. 사람은 그런 작은 신호들을 통해 말로 다 설명되지 않는 서로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특히 눈이 마주치는 순간, 우리는 상대를 바라보는 동시에 나 역시 상대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 짧은 상호성은 주의와 감정을 서로에게 맞추게 하고, 마음 한쪽에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안정감을 남깁니다. AI는 많은 것을 알고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지만, 아직 그 눈빛의 무게를 갖지는 못합니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는 인간 윤리의 출발점을 ‘얼굴과 얼굴의 마주침’에서 찾았습니다. 그의 사유에서 얼굴은 단순한 생김새가 아니라, 타인이 나에게 말을 걸고 나의 책임을 깨우는 자리입니다(그림 1).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 역시 인간관계를 ‘나-그것’과 ‘나-너’의 관계로 나누었습니다. 대상을 분석하고 사용하는 관계가 ‘나-그것’이라면, 온 존재로 마주하는 관계가 ‘나-너’입니다. 적어도 지금의 AI와의 대화는 대부분 ‘나-그것’의 영역에 가깝습니다. 아무리 자연스럽게 응답해도, 그것은 나를 온전히 마주보는 타자의 삶에서 나온 반응은 아닙니다.
이 점은 특히 한국 사회에서 더 깊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예전보다 더 많이 연결되어 있지만, 마음을 천천히 주고받는 시간은 오히려 줄어든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평가와 경쟁의 언어에 익숙해지고, 성인이 되어서는 진학, 취업, 승진, 경제적 안정, 노후 준비라는 과제를 차례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과제들은 삶을 앞으로 이끄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람은 자주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존재가 되고, 타인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기보다 비교의 기준이 되기 쉽죠. 결국 우리를 지치게 하는 것은 답을 모르는 일만이 아닙니다. 그 답을 찾아가는 동안, 내 마음의 속도를 함께 헤아려 주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감각도 우리를 지치게 합니다.
AI는 이 빈자리를 어느 정도 채워줍니다. AI는 언제 어디서든 대답합니다. 피곤하다고 하지 않고, 귀찮아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AI는 나의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고, 선택지를 제시하며, 더 나은 결정을 도와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AI에게 쉽게 마음을 열게 되죠. 이것은 분명한 장점입니다. 누군가에게는 AI가 가장 안전한 대화 상대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AI의 친절함은 때때로 인간적 위로의 핵심을 비껴갑니다. AI는 나의 문장을 분석할 수 있지만, 내가 그 말을 꺼내기까지 삼켜온 침묵의 무게를 온전히 알지는 못합니다. 현재 시점에서는요.
기술적·과학적 측면에서 AI가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오는 흐름은 이미 비가역적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결정을 AI와 함께 내리게 될 것입니다. 병원, 학교, 직장, 가정에서 AI는 점점 더 중요한 조력자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2026년, AI의 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AI가 어디까지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가”만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중요한 질문은 ‘AI가 많은 것을 대신하게 된 시대에도,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가’일 것입니다.
답을 찾는 능력은 점점 더 기계와 나눌 수 있게 되었지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마음의 결을 살피고, 한 사람의 삶을 단순한 정보로 축소하지 않는 태도는 여전히 사람 사이에서만 자라납니다. 완벽한 답은 아니더라도, 불완전한 한 사람이 또 다른 불완전한 사람을 바라보며 건네는 헤아림은 인간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작은 헤아림들이 가까운 사람들과의 연결을 회복시키고, 사회적 유대를 조금씩 튼튼하게 만들 것입니다. 결국 인간다운 사회는 진보하는 기술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서로를 알아보고, 연결되고, 함께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마음 위에서 지켜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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