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하자 피노키오의 코는 어느 쪽으로도 몸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길어졌다. 이쪽으로 몸을 틀면 코가 침대나 창문에 부딪히고, 저쪽으로 몸을 돌리면 벽이나 문에 부딪혔다. 고개를 조금만 들어도 코가 요정의 눈을 찌를 것 같았다.’
- 동화 『피노키오』 중에서
십수 년 전, 저는 ‘피노키오’라는 제목의 TV 드라마를 인상 깊게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드라마를 소재로 글도 기고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드라마의 내용도 제가 쓴 글도 기억 속에서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는데, 얼마 전 우연히 OTT(Over-The-Top)채널을 돌리다가 옛날 그 드라마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잠깐만 맛만 볼까?’ 하는 마음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는데, 어느새 다시 드라마 속으로 깊이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그전에 이미 여러 번 본 드라마인데도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게 다가오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아마도 그때의 제가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그리고 미처 느끼지 못했던 작가의 세계를, 지금의 제가 다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같은 작품이라도 책이건, 영화든, 드라마건 세월이 흐르면 다르게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젊은 날에는 재미로만 보이던 장면이 어느 순간 인생의 질문처럼 다가오기도 하고, 예전에는 지나쳤던 대사가 오히려 마음 깊은 곳에 오래 남기도 합니다.
이 드라마는 아주 흥미로운 가정에서 시작합니다. ‘만일 이 세상에 거짓말을 하면 피노키오처럼 바로 티가 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런 사람이 기자가 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라는 가정입니다. 드라마 속에는 ‘피노키오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거짓말을 하면 어김없이 딸꾹질이 나오기 때문에 티가 나서 거짓말을 숨길 수 없습니다. 동화 속 피노키오의 길어진 코처럼, 자신의 거짓이 즉시 드러나 버리는 것입니다.
또 다른 설정도 꽤 흥미롭습니다. 피노키오 증후군이 43명 중 한 명꼴로 꽤 많은 빈도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억지로라도 참말만 하며 살아가는 집단을 이루게 됩니다. 일반 사람들에게서 약간은 이질감을 느끼면서 말이지요.
처음엔 이런 사람들이 기자가 된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라고 쉽게 생각하게 됩니다. 거짓말을 할 수 없으니 누구보다 진실한 뉴스를 전달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방송국에서는 오히려 피노키오 증후군 환자를 기자로 선호하지 않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이 제대로 역할을 하려면 때로는 상황에 맞게 ‘선의의 거짓말’도 필요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기사의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어느 정도의 과장도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드라마 속에서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주인공 가족이 풍비박산 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피노키오 증후군을 가진 사람의 거짓 증언 때문이었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피노키오 증후군 환자가 거짓 증언을 할 수 있었느냐구요? 그 사람은 어떤 사건 현장에서 얼핏 본 인물을 머릿속에서 범인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본인이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기에 딸꾹질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는 그것을 ‘거짓이 아닌 진실’로 받아들였고, 결국 그 내용은 대대적인 뉴스로 보도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그 잘못된 보도로 인해 한 가족의 삶이 완전히 무너져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어머니는 주위의 손가락질과 싸늘한 시선을 견디지 못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아이들은 고아가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단 한 사람의 잘못된 확신에 의한 거짓 기사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드라마는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 ‘내가 진실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 정말 진실인가?’ 그리고 거짓이 아니라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악의를 품지 않았다고 해서 결과까지 선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경험과 감정, 편견과 선입견 안에서 세상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확신’이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 이 드라마를 다시 보며 제일 강하게 느낀 것은, 결국 인간은 완벽할 수 없으며 그러므로 내가 언제나 옳을 수 없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나의 평생 직업인 치과의료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치과 의료의 기준과 방법이 계속 발전하고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쉬지 않고 배워야합니다. 과거에는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치료가 지금은 더 이상 권장되지 않기도 하고, 예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치료가 이제는 자연스럽게 시행되기도 합니다.
제가 치과의사로 지내온 4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수 없이 많은 환자들을 만나고, 다양한 치료들을 해드리고, 상담을 해왔는데 과연 환자에게 제공했던 치료술식과 상담이 모두 진실이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이 마치 절대적인 기준인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다른 치과에서 받은 치료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면 쉽게 평가하여 “왜 이렇게 했을까?”라는 말을 너무 쉽게 내뱉으며 단정적인 표현을 하곤 합니다. 마치 매스컴 뉴스에서 정황의 앞뒤를 다 자르고 원하는 것만 편집해서 보도하듯이 말입니다. 물론 명백히 잘못된 치료는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의료는 단순한 흑백논리가 아니라, 당시의 상황과 조건, 환자의 상태, 그리고 담당 의료진의 판단 속에서 이루어진 어떤 ‘이유모음’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 ‘맥락’을 읽으려 하지 않고 당장의 눈앞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한다면 그 순간 나도 거짓된 사실을 진실처럼 이야기하는 위험한 ‘피노키오’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치과에서 이루어진 잘못된 것처럼 보이는 치료를 바라볼 때도 조금 더 신중해지려 합니다. 살아가면서 혹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믿는 ‘진실’이 사실은 나의 제한된 경험 속에서 이루어진 확신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를 스스로 질문해 보려 합니다.
동화 속 피노키오의 코는 거짓말 때문에 길어져 고생했지만, 어쩌면 우리에게 더 위험한 것은 거짓말보다 ‘나는 항상 옳다’는 그릇된 자기 확신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배우게 되는 것은 새로운 지식보다도,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유연한 겸손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한 드라마가 알려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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