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경부 뼈의 이름을 외웠고, 신경의 길을 외웠고, 외운 것을 시험지에 옮겨 적었다. 시험지는 채점되어 돌아왔고, 점수는 등수가 되었고, 등수는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해부학 실습실에서 카데바의 얼굴을 열던 날, 나는 처음으로 사람의 안쪽을 보았다. 안쪽은 책과 달랐다.
여섯 해가 지나자 면허증이 나왔다. 면허증은 깨끗하게 프린트되어 있었다. 졸업장은 큰 주석의 쟁반으로 나왔다. 프린트된 종이는 빛을 받으면 번들거렸고 졸업장은 무거웠다. 국가가 나를 치과의사로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면허증을 액자에 넣어 걸던 날, 선배가 전화를 했다. 선배는 말했다. 학교에서 배운 걸로는 개원 못 한다. 진짜 공부는 이제 시작이다. 선배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확신은 전염되었다.
진짜 공부는 주말에 있었다. 호텔 연회장에서 있었고, 강남의 세미나실에서 있었다. 임플란트 베이직이 삼백이었다. 어드밴스드가 사백이었다. 교정 입문이 오백이었고, 마스터 코스는 칠백이었다. 마스터를 마치면 그랜드 마스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랜드 마스터 위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물으면 끝이 보일까 봐 묻지 않는 것 같았다. 끝이 없어야 장사가 되었고, 장사가 되어야 강의가 열렸다.
연회장에는 동기들이 있었다. 우리는 커피를 들고 서서 서로의 등록 현황을 물었다. 너 그거 들었냐. 나 이번에 어드밴스드 끊었다. 등록은 안부가 되었다. 등록하지 않은 자는 안부에서 밀려났다. 밀려나는 것이 두려워 우리는 다시 등록했다.
연자는 말했다. 여러분 자신에게 투자하십시오. 여러분이 곧 병원의 경쟁력입니다. 연자의 시계가 조명을 받아 번들거렸다. 프린트 된 면허증 같이 번들거렸다. 연자는 십오 년 전에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단상에 서 있다고 했다. 단상과 객석 사이의 거리는 십오 년이거나, 이천만 원이거나, 둘 다였다.
이천만 원을 썼다. 카드는 무이자 십이 개월로 긁혔다. 긁힐 때마다 나는 업그레이드되었다. 업그레이드된 나는 수료증을 받았다. 수료증도 코팅되어 있었다. 벽에는 액자가 늘어났다. 액자는 면허증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번져 나갔다. 환자들은 대기실에 앉아 액자를 올려다보았다. 올려다보는 눈빛에는 신뢰가 있었고, 신뢰의 값은 액자 아래 상담실에서 매겨졌다.
노인이 왔다. 노인은 어금니 하나가 흔들린다고 했다. 나는 배운 것을 말했다. 임플란트를 말했고, 뼈이식을 말했고, 상악동 거상술을 말했다. 이천만 원어치의 언어였다. 언어는 유창했다. 유창한 만큼 길었다. 노인은 다 듣고 나서 말했다.
“빼 주소. 그냥 빼기만 해 주소. 남은 이로 씹으면 되니께.”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발치는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학교 여섯 해의 끝자락에서 배운 것이었고, 그 뒤로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었다. 가르칠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남는 것이 없어서였다.
발치는 만오천 원이었다. 노인은 만오천 원을 현금으로 냈고, 거스름돈을 받아 지갑에 넣고 나갔다. 노인의 걸음은 가벼웠다. 배우지 않은 걸음이었다. 나는 창밖으로 노인의 뒷모습을 오래 보았다. 노인은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저녁에 문자가 왔다. 디지털 덴티스트리 라미네이트 마스터 코스, 얼리버드 마감 임박. 조기 등록 시 백만 원 할인. 나는 문자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할인은 친절했다. 친절은 계산되어 있었다. 창밖이 어두워졌고, 액자들이 유리 속에서 번들거렸다. 여섯 해와 이천만 원이 벽에 걸려 있었다. 만오천 원이 서랍 안에 있었다. 벽에 건 것과 서랍에 넣은 것 중에 어느 쪽이 치과인지, 나는 알 것 같았고 모르는 척했다.
나는 얼리버드를 신청했다. 신청하지 않으면, 벽에 건 것들이 전부 헛것이 될 것 같았다. 헛것이 아니라고 말해 줄 사람은 다음 세미나에 있었다. “다음 연자의 번들거리는 시계는 과연 어느 브랜드일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