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에서 김수영 시인이 “독서와 생활을 혼동하지 말라. 독서는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생활은 뚫고 나가는 것”이라고 쓴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최근 독서를 통해 최정환이라는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정환 씨는 1958년생의 척수장애인이었습니다(과거형으로 쓰는 것은 이미 고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버림을 받고 보육원에서 살다가, 노력 끝에 1985년 다시 아버지를 찾았으나 또 한 번 거부를 당했고, 오히려 이 때문에 당시 생활보호대상자(지금은 기초생활보장수급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호적상의 아버지 때문에 소위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린 것이지요.
그래서 최정환 씨는 노점을 통해 직접 생계를 꾸려가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노점상 단속에 항의하다가 다리가 골절됩니다. 기존 척수장애와 교통사고로 인한 중증장애에 골절이 더해진 것이지요. 그래도 최정환 씨는 생계를 위해서는 노점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속은 해가 갈수록 심해졌고, 어느 날 최정환 씨는 자신의 마지막 재산을 단속으로 빼앗기게 됩니다. 이것을 찾으러 구청에 갔지만 항의는 무의미했고 돌아오는 것은 모멸감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최정환 씨는 분신을 택합니다. 1995년 3월 21일 밤 복수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그는 숨을 거둡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살기 위한 최정환 씨의 노력에서 어떤 잘못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즉 나는 독서를 통해 이 사회에는 큰 부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합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오래된 부조리가 해결되지 않을 수 있는지. 이렇게 누구나 부조리를 알게 되면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는지를 생각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부조리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아마도 우리는 알고 바라기는 하지만 단지 거기에 그쳐버리기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는 독서뿐 아니라 여러 매체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여러 사건을 접하고,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상에는 수많은 제언과 좋은 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생활과 혼동하여 그저 받아들이면 될 줄로 알 뿐, 행동에 옮겨 뚫고 나가지 않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던 중 세월호가 침몰하고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이 사회의 또 하나의 오래된 부조리로 인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번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잊지 않으려고, 눈을 돌리지 않으려고, 외면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미국 National Academies Press가 출판하는 모든 책의 속표지에는 “Knowing is not enough; we must apply. Willing is not enough; we must do.”라는 괴테(Goethe)의 말이 쓰여 있습니다. 아는 것만으로는, 바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아는 것은 적용하고, 바라면 행동해야 합니다. 우선 내 주변부터 돌아봅시다. 내가 할 일은 없는지.
김각균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