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생 ‘나’라는 존재를 중심에 두고 세상을 살아간다. 나의 생각, 나의 감정, 나의 소유물과 나의 미래는 우리 삶을 지탱하는 가장 견고한 기둥처럼 보인다. 아침에 눈을 떠 밤에 잠들 때까지, 우리는 ‘나’라는 일인칭 주인공이 이끄는 삶의 서사를 한 치의 의심없이 받아들인다. 하지만 인지 신경심리학자 크리스 나이바우어(Chris Niebauer)는 그의 저서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원제, No Self, No Problem: How Neuropsychology Is Catching Up to Buddhism)』를 통해 이 믿음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그는 최신 뇌과학 연구와 수천 년 전 동양 철학의 통찰을 결합하여, 우리가 ‘나’라고 믿는 존재가 사실은 좌뇌가 만들어낸 교묘한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충격적인 진실을 폭로한다.
나이바우어는 톨레도 대학교(University of Toledo)에서 인지 신경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인간 두뇌의 좌뇌와 우뇌 차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해 온 학자다. 현재 펜실베이니아주 슬리퍼리 록 대학교(Slippery Rock University)의 교수로 재직하며 의식, 마음챙김, 좌우뇌의 차이, 그리고 인공지능에 관한 학문적 탐구를 이어가고 있는 그는, 특히 이 책의 제8장 ‘진정한 나 찾기(Finding the Real You)’를 통해 우리가 평생 ‘나’라고 믿어온 견고한 정체성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신경과학과 동양 철학의 절묘한 접점에서 저자는 우리가 스스로를 정의해온 방식이 사실은 좌뇌가 만들어낸 교묘한 ‘해석’의 결과물임을 역설한다.
인간의 뇌는 좌반구와 우반구로 나뉘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인지한다. 나이바우어는 현대 뇌과학의 거두 마이클 가자니가(Michael Gazzaniga)의 분리 뇌 연구를 인용하며, 좌뇌의 핵심 기능을 ‘해석기(解釋器, Interpreter)’라고 명명한다. 우리의 좌뇌는 끊임없이 외부 세계를 범주화하고,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 ‘나’라는 일인칭 서사를 구축하는 본능이 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단편적인 정보들을 수집해 논리적인 인과관계를 부여하려 애쓰는 것이다. 문제는 이 해석기가 정보가 부족할 때조차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좌뇌는 즉석에서 가짜 이유를 지어내서라도 상황을 그럴듯하게 설명해내며, 이를 통해 우리가 세상을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준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그토록 집착하는 ‘자아’가 탄생한다. 수만 가지 생각과 감정이 뇌 속을 스쳐 지나갈 때, 좌뇌는 이 모든 현상의 주인이 마치 ‘나’라는 고정된 실체인 것처럼 라벨을 붙인다. 즉, 자아는 뇌 속에 존재하는 물리적인 실체가 아니라, 좌뇌가 끊임없이 집필하고 있는 일인칭 소설의 주인공인 셈이다. 우리가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할 때, 그것은 사실에 기반한 보고라기보다 좌뇌가 편집한 서사적 결과물에 가깝다. 하지만 나이바우어는 이 장에서 강조하길, 이 서사(敍事, narrative)를 만드는 ‘해석자(解釋者)’가 결코 진정한 자아일 수 없다고 말한다. 마치 영화 화면 속의 주인공이 화면 그 자체가 될 수 없듯이, 좌뇌가 쏟아내는 생각과 감정의 파도는 우리라는 존재의 본질이 아니라 그저 그 위를 지나가는 현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생각을 곧 ‘나 자신’ 혹은 ‘진리’라고 믿는다. 나이바우어는 이를 ‘지도와 지형의 혼동’으로 설명한다. 지도는 지형을 찾아가기 위한 유용한 도구이지 지형 그 자체가 아니다. 하지만 좌뇌의 언어적 범주화에 익숙해진 현대인은 개념(지도) 속에 갇혀 실제 현실(지형)을 잃어버린다. 예를 들어 “나는 우울하다”는 생각은 좌뇌가 특정 신체적 감각과 과거의 기억을 연결해 내린 하나의 해석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해석을 절대적인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고통 받는다. 좌뇌가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만드는 수많은 패턴 속에 갇힐 때,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생생한 삶의 실체를 놓치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모든 고통의 근원이 자아라는 가상의 존재를 유지하고 보호하려는 좌뇌의 과도한 노력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이 허구의 감옥에서 어떻게 탈출하여 ‘진정한 나’를 찾을 것인가? 나이바우어는 진정한 나를 찾는 여정이 무언가를 새로이 획득하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익숙한 것들을 내려놓는 ‘학습 해제(學習解除, Unlearning)’의 과정이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는 분석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의 도구인 좌뇌의 속도를 늦추고, 직관과 연결의 영역인 우뇌적 감각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뇌는 세상을 범주로 나누지 않고 전체로 인식한다. 이는 불교의 ‘무아(無我)’나 ‘비이원성(非二元性, 불이不二, Non-duality)’ 철학과 맞닿아 있다. 우뇌적 인식 안에서는 나와 대상의 구분이 사라지며, 모든 것이 연결된 하나의 흐름으로 경험된다. 자아라는 벽을 허물고 우뇌의 기능에 주목할 때, 비로소 우리는 분리된 개인이 아닌 전체로서의 존재감을 회복할 수 있다.
몰입(Flow)의 순간을 떠올려 보라. 운동에 집중하거나 예술 활동에 깊이 빠져 있을 때, 혹은 아름다운 자연 풍경 앞에서 압도당할 때 ‘나’라는 자각은 사라지고 오직 행위와 경험만이 남는다. 그때 우리는 가장 평온하고 강력한 존재감을 느낀다. 자아라는 해석기가 잠시 가동을 멈출 때, 오히려 우리는 더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경험하는 역설을 마주하게 된다. 결국 ‘무아(No Self)’라는 개념은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허무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나’라는 좁은 틀에 갇혀 있던 의식을 해방시켜, 모든 판단과 생각이 일어나는 배경인 ‘순수 의식(Pure Awareness)’으로 돌아가라는 초대다.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가 주는 가장 큰 위안은 “자아가 없으므로 문제도 없다(No Self, No Problem)”는 선언이다. 내가 지켜내야 할 고정된 ‘나’가 사실은 좌뇌가 만든 허구라면, 타인의 비난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내려앉을 자리가 없어진다. 자아라는 환상의 구름이 걷힐 때, 우리는 비로소 변하지 않는 본연의 평온함과 마주하게 된다. 구름이 하늘을 가릴 순 있어도 하늘 자체가 될 수 없듯이, 생각과 감정은 우리라는 광대한 의식의 공간을 스쳐 지나가는 기상 현상일 뿐이다.
결국, 깨달음이란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좌뇌가 만든 정체성이라는 안경을 벗는 과정이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이야기에 속지 않고, 그 이야기를 지켜보는 고요한 관찰자로 거듭날 수 있다. 자아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삶이라는 파도 위에서 자유롭게 서핑(Surfing, 파도타기)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좌뇌의 해석을 멈추고 현존하는 의식 그 자체가 되는 것, 그것이 나이바우어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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