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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의 꿈

이미연 칼럼

요즘은 스트리밍 음원을 주로 이용하니 그렇지 않지만, 레코드나 CD음반을 틀면 곡과 곡 사이에 잠깐 조용한 간격이 있다. 어릴 적에는 음악이 계속 이어지지 않는 이 빈틈이 아쉬웠다. 특히나 재생시간이 정해진 카세트 테이프에 이 곡 간격이 용량을 차지하는 것이 아까워, 초시계를 들고 수신호를 해 가며 음악을 꽉꽉 채워 녹음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는 곡 간격의 적막이 주는 여운을 즐길 수 있게 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어른이 되어 삶이 복잡해지기 시작한 때문은 아닐까. 적막이 주는 평화를 극단적으로 체험하게 된 탓인지도 모르겠다.


매일 아침 학교에 가기 위해 타곤 하던 옛150번 버스는 서울 서북부에서 출발해 중심가를 지나 한강대교를 건넌 다음 봉천고개를 넘어 경유해 서남권으로 주행하는 긴 노선이었다. 한강을 건넌 뒤에는 한동안 소강상태를 보이다 고개를 넘어갈 무렵부터 다시 손님이 차곤 했다. 그날은 시내에서 밀려 차가 연달아 지나갔는지, 중앙대 학생들이 우르르 내리고 나니 버스 안엔 나와 다른 손님 한분 그리고 기사님만 남았다. 평소와 다른 고요함도 잠시, 다음 정거장에서 엄청난 소리와 함께 초등학생들이 물밀 듯이 버스에 들이닥쳤다. 내 허리춤밖에 오지 않는 조그만 키의 병아리들은 버스 바닥을 가득 채우고는, 뭐가 잔뜩 신이 났는지 짹짹거리는 고주파 소리로 버스의 나머지 공간도 가득 채웠다. 두 정거장이 지나 다시 꼬마손님들이 함성과 함께 썰물처럼 빠져나갈 때, 나머지 세 사람의 혼도 같이 빠져나갔으나, 텅 빈 적막이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없었다. 동시에 우리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들이 늘 힘들고 수시로 머리가 아팠던 이유를 비로소 짐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에는 한 학급의 학생이 70명도 넘었으니 말이다.


나의 첫 담임 선생님은 은퇴를 몇 년 앞두고 계신 나이 지긋한 여자분으로 푸근한 인상만큼이나 너그러운 인품이셨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는 마냥 신나서 빽빽 소리질러대는 70여명의 천둥벌거숭이들을 화내지도 않고 둥글게 잘 양육하셨을 리가 없다. 나는 딱히 주목받을 것도 없는 무존재감의 학생이었다. 학교생활에 얼마나 감이 없었는지, 연락장에 적어가는 숫자가 무엇인지도 몰라 한 학기 내내 단 한 번도 숙제를 해가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부드러운 손길이 기억나는 걸 보면, 학생들을 참 예뻐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선생님을 기억하는 것은 자애로움이 아닌 냉정함 때문이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하루 종일 일으키는 장난이며 소란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지치시는 것도 모든 민원을 접수해서 처리할 수 없음에 이해는 간다. 그렇지만 나는 벌써 몇 주째 옆자리 짝에게 시달림을 받고 있었고, 달리는 차 앞에 책가방을 내던지는 짓을 당한 다음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증거가 차고 넘쳤으므로 당연히 짝을 바꾸어달라는 요청 정도는 들어주실 줄 알았는데,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시비가 있는 것은 무조건 둘 다 잘못이라는 것이다. 짝이 괴롭혔다고는 해도 거기에 내가 반응하였기 때문에 다툼이 일어난 것이라며, 참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또한 반 친구들은 모두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데 원만하게 어울리지 못하면 잘못이라며, 세상에 힘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때마다 선생님한테 이를 수는 없으니 내가 참고 둥글게 지내는 것이 가장 올바른 해결책이라고 꾸지람하셨다. 억울했지만 다시 짝이 바뀌는 순번까지 괴롭힘을 참는 수밖에 없었다.


인생은 각자도생이라는 씁쓸한 진리를 덕분에 일찍 깨우쳤지만, 나이가 들어 가만히 따져보니 조기교육 효과의 이득은 차치하고서라도 과연 그런 태도가 교육자로서 올바른 것인가는 의문이 들었다. 초등학교 교육은 대단한 학문적 지식을 배운다기보다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기본적인 소양을 배우는 곳일 텐데,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햇병아리에게 인생은 약육강식이니 잘잘못은 덮어두고 둥글둥글 원만하게 사는 것이 현명하다는 조언이 적절한 것일까. 어린 아이들의 잘못을 놓고 크게 체벌을 할 수는 없겠지만, 교실 안의 유일한 중재자이자 심판의 역할을 할 어른에게 옳고 그름을 배우지 못하면 어디에서 올바름을 배워야 하는 것일까.


그런 외면의 교육의 결과물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모로 가도 서울이라는 마음가짐과 반칙왕 같은 빌런의 편재가 아닐까.


몇 달에 걸쳐 여러 회원들이 마음을 썼던 일련의 선거가 끝났다. 표차이가 치열했던 만큼 아쉬운 마음이 남는 것은 당연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애석한 것은 당락이나 표 차이가 아니라, 옳고 그름은 중요치 않고 조용히 덮어주는 것이 현명하다는 식의 주장이다. 그러나 수차례의 선거를 지켜보면, 내부 규정에 명확히 없는 것은 외삽을 하여 자기 뜻대로 어림짐작하고 외부 규정을 끌어다 소송하며 시빗거리를 만드는 일은 지양해야 함이 분명하나, 내부 규정에 명확히 있는 사항을 일부러 어긴 것에 대해서는 맞고 틀림을 가리어 회원에게 전달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우리 회원들의 도덕적 눈높이는 설마하니 공식적인 선거문자에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고 믿을 정도로 고상한데, 중재의 소임을 맡은 이들은 거짓을 일삼든 규정을 무시하든 소송쟁이 으름장은 피곤하니 대충 눈감고 둥글게 덮자는 입장이니, 이것이 회원의 권한을 위임받은 책임자로서 올바른 처신인지 의문이 든다.


우리 회 내부의 싸움이나 우리 일을 밖으로 끌고 나가 소송으로 이어지는 일이 제발 끝났으면 하는 것이 진정한 바람이다. 우리 회원들 모두가 지긋지긋한 마음일 것이다. 회원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조직이 되길 바라는 것은 초짜의 유치한 꿈일 뿐인 것일까. 앞선 소송 선례는 이미 부메랑이 되었다.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 예상되는 회원들의 손해를 그저 참아내기만 해야 하는지 억울하고 애석한 마음뿐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