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10 (일)

  • 맑음동두천 8.8℃
  • 맑음강릉 18.2℃
  • 맑음서울 12.1℃
  • 맑음대전 12.0℃
  • 맑음대구 13.3℃
  • 맑음울산 13.2℃
  • 맑음광주 12.9℃
  • 맑음부산 14.7℃
  • 맑음고창 8.6℃
  • 맑음제주 13.6℃
  • 맑음강화 10.0℃
  • 맑음보은 8.9℃
  • 맑음금산 9.0℃
  • 맑음강진군 9.8℃
  • 맑음경주시 10.2℃
  • 맑음거제 11.9℃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예언과 희망: 탄허(呑虛) 스님

임철중 칼럼

장모님은 여걸이셨다(金貞姬; 1929-2020). 여고시절에는 청주 시내를 말을 타고 달리기도 했다고 한다. 탄허 스님이 법명 벽안(法名: 碧眼)을 주실 만한 미모에 사업수완 또한 만만치 않았고, 여신도 회장과 불교신문사 사장을 역임하셨다. 진잠에 큰 절을 세울 꿈을 품었던 스님은, 대전에 오면 처가에서 점심공양을 하셨는데, 장모는 “큰 스님이 오시니 귀한 말씀 좀 듣자.” 전화를 했다. 불경번역으로 한문 실력이 걸출한 학승이라는 명성과 예지 능력은 익히 잘 알려져 있고, “허공을 삼킨다.”는 법명이 예사롭지 않아, 달려가 몇 차례 뵌 적이 있다. 눈매가 부리부리하고 탄탄한 씨름선수 몸매에 말수는 뜸하여, “역시 뜬금없는 스님의 알 수 없는 방언?”이라는 건방진 생각에, 더 자주 뵙고 듣지 못한 젊은 시절의 오만이 후회로 남아 있다.


흘리듯 지나가는 말씀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머지않아 우리나라에 여성 대통령이 나오고, 그 전후에 일본열도가 바다에 잠기며, 곧 이어 세계가 조공(朝貢)을 바치러 온다는 얘기였다. 그때만 해도 너무 황당무계하다고 웃어 넘겼는데, 30년이 채 못 되어 박근혜대통령이 나오고 도후쿠 지방이 쓰나미에 잠기더니, K-컬처를 동경하는 세계의 젊은이들이 한국을 찾아 몰려온다. 스님의 예언은 실현되고 있는 중이다.

 

고교 동기생이 카톡으로 전한 ‘국제 언론이 지켜본 대한민국 71년의 기록’을 감명 깊게 읽었다. 1953년 김일성의 남침으로 전국이 폐허가 되어 원조로 연명하던 GNP $67의 대한민국이, 2024년 7월 현재 597배인 $4만까지 성장한 71년간의 외국 언론기록을 정리하여, 아무리 간추려도 A4 용지 여덟 쪽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이다.


전 세계가 한국자동차를 타고 한국스마트폰을 쓰면서 한국드라마를 보고 한국음악을 듣는 시대가 온 것이다. 2024년 8월 월 스트리트 저널이 분석한 성공의 비결은:

 

1. 교육; 굶어도 학교를 짓는다(56-60년; 학교 3247 개교); 이승만 대통령의 예지; 천연자원 빈곤을 인적자원 양성으로 극복. 1959; 문맹률을 78%에서 22%로 낮춤.
2. 속도; 계획 즉시 실행하고 문제 생기면 밤새워 해결.
3. 완벽주의; 대충은 없다.
4. 위기극복 능력; 6·25전쟁 오일쇼크 IMF 금융위기 코로나의 5대 위기를 기회로.
5. 국민적 단합; IMF 때 금 모으기, 월드컵 당시 거리응원, 코로나 방역의 성공.
6. 끊임없는 도전정신; 반도체성공- 다음세대 준비. K팝 성공- 다음 그룹 키우기.


필자의 눈에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빠졌으니, 그것은 바로 ‘희망의 제시(提示)’다.

 

한류가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드라마 겨울연가와 대장금이다. 겨울연가에서 준상은 시력을 포기하면서 유진을 향한 사랑을 지켜, 일본 아줌마들의 심금을 울렸다.


신의(神醫) 장금이의 신비한 한의학에서 신약개발 가능성을, 수라간에서는 미슐랭 별을 뛰어넘는 감성의 맛을 꿈꾼다.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을 가리켜, LA Times는 영어가 더 이상 세계영화의 언어가 아니며, 문화 권력은 이동하고 있다고 극찬하였다. 좀비영화는 전체주의 국가가 저지르는 집단 살해범죄의 패러디라더니, 결국 3류 잔혹영화(Mutilation & Mayhem)로 전락하고 있는데, 코리언이 만들면 문법이 다르다. 부산행에서 소녀와 아줌마가 국군을 향해 노래하며 걷는 평화로운 모습과, 좀비 딸에서 끝없는 부성애(Paternal Love)가 항체 발견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본다. ‘싸이의 퓨전세계’라는 칼럼에서 ‘We’re the One’을 들어, “넘어질 수는 있어도 쓰러질 수는 없어.”라는 대목을 인용한 바가 있다 (Life: 2006. 10). 넘어져도 타의에 의해 무너지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2009년 대전무역회관에서 ‘김장훈·싸이의 완타치’ 공연을 보며, 고삐 쥐고 말달리며 줄 던지는 박력만점의 말 춤에 절로 따라 추었다. ‘싸이 열풍’이라는 칼럼에서는, “K팝과 김기덕 영화 신경숙 소설에 싸이 열풍은, 경제기적·민주화 성공에 이어서 문화예술 성취까지, 대한민국 ‘선진국 멤버십’의 3박자가 완성되고 있다.”로 글을 맺었다(2012. 12). 최초로 조회수 10억을 돌파한 BTS의 아미열풍은, 미국 대통령과 UN 사무총장도 따라 춤추게 만든 싸이의 ‘강남 스타일’에서 예견된 사고(?)였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천문학적 부채로 차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정치권과 평생 집 장만 못하리라는 현실에 실망한 세계의 MZ 세대가, 수많은 역경을 뚫고 달리는 K-시리즈의 응원에 호응하고 있는 현상, 이것이 바로 한류열풍의 정의가 아닐까?

 

장모님이 병풍을 부탁하면 스님은, “표구나 잘 해놔.”하셨다. 먹을 갈아드리면 텅 빈 여덟 폭 병풍 앞에 우뚝 서서, 말 그대로 일필휘지(一筆揮之), 붓을 휘두른다.


그래서 한 폭 한 폭마다 테두리장식을 뚫고 날카롭게 삐쳐 나온 획들이 날렵하다.
팬데믹에 중상을 입은 자영업의 회복은 더디고, 대기업은 건설경기 폭락과 미국 발 관세 공황에 시달리는 와중에, 전 세계가 불황과 전쟁의 공포에 휩쓸리고 있다.


치과계도 안팎으로 이런저런 악재가 널렸다. Economist紙는 다음 산업혁명에서도 한국이 선두에 설 가능성을 높게 점친다. 세계의 Torch Bearer로서 긍지와 희망의 끈을 늦추지 말자. 기증하려던 병풍도 아들 녀석에게 물려주어야겠다.

 

*시점이 2024년이므로 방위산업(防産)·오징어 게임·캐데헌의 3종 신기(神器)는 빠졌습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