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용문시장 인근. 한때 활기가 넘쳤지만, 현재는 재개발과 상권 변화의 한가운데 놓인 이곳에 최근까지 60년 넘게 진료를 이어온 한 치과의원이 있다.
지난 1962년 용문시장 입구 2층의 작은 공간에서 치과를 연 최봉섭 원장은 63년이 흐른 2025년에 이르러서야 기나긴 개원의로서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1957년 졸업 후 군 복무를 마치고 곧바로 개원에 나섰던 최 원장은 “그때는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됐고, 마트도 없어서 용문시장이 제일 활성화돼 있었다”며 “시장 입구라 목이 좋았고, 마침 2층이 비어 있어 여기서 시작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당시 용문시장은 용산 일대 대표 상권이었다. 철도관사와 공작창도 있어 사람이 많이 모이던 곳이었다. 이후 세월이 지나고 상권은 예전 같지 않게 됐지만, 최 원장의 치과는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최 원장은 “인근에 대형마트, 백화점이 들어서며 상권이 죽었지만, 우리는 그전부터 이름이 나 있었으니까 여기 오는 사람은 다 안다”고 밝혔다.
최 원장의 치과는 처음부터 큰 규모는 아니었다. 2층의 작은 공간에서 시작해 필요할 때마다 옆 점포를 하나씩 넓혀 갔다. 다만 무리하게 키우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최 원장은 “치과는 너무 크게 할 필요 없고, 40~70평 정도면 충분하다고 봤다”며 “말년에는 두 동을 합쳐 약 50평 규모로 운영하며 더 이상의 확장은 필요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 실패 감추지 말고 마주해야
이처럼 오랫동안 개원을 이어온 비결을 묻자 최 원장은 거듭 “없다”고 했다. 다만 감당할 수 있는 크기에서 오래 버티고, 자리를 옮기지 않고, 환자와 관계를 쌓는 ‘정도’(正道)를 강조했다.
최 원장은 “어떻게 60년 동안 한자리에서 했냐고들 묻는데, 불편한 사람을 성심성의껏 고쳐주면 되는 것”이라며 “환자는 시비하려고 오는 게 아니라 불편해서 오는 것이다. 절대 싸우지 말아야 한다. 어디가 불편한지 듣고 해결해 주면 원상 복귀된다”고 말했다.
실패를 대하는 태도 역시 같은 맥락이다. 최 원장은 진료 중 문제가 생겼을 때 숨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 연수 시절 유명 치과들이 실패 사례와 극복 과정을 따로 정리한 ‘실패집’을 보고 큰 인상을 받았다고도 했다. 최 원장은 “실패한 걸 묻어두면 평생 발목 잡힌다. 교수에게도, 선배에게도, 동료에게도 물어서 해결해야 한다”며 “내가 안 되면 종합병원에 보내고, 필요한 경우 비용도 부담할 수 있어야 한다. 나도 실패를 안 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숨기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환자 못지않게 직원과의 관계도 중요하다고 짚었다. 최 원장은 “직원하고도 관계가 불편하면 안 된다”며 “치과도 경기를 타다 보니 늘 잘 될 수만은 없지만, 수입이 적더라도 조금씩이라도 급여를 꼬박꼬박 올려줬고, 그렇게 20년씩 함께 일한 직원도 있었다”고 밝혔다.
# “믿고 다시 찾도록 진료 책임져야”
개원가의 저수가 경쟁에 대해서도 최 원장은 “너무 싸게 받을 필요는 없고 받을 만큼 받아야 한다. 대신 충실하게 해주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져야 한다”며 “무슨 일이 있으면 다시 오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환자가 믿고 다시 찾는다”고 말했다.
최 원장이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키는 동안 로타리클럽 활동, 봉사 등 지역사회와 인연도 자연스레 넓어졌다. 치과는 최 원장에게 생업의 공간이면서도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였다. 현재도 최 원장은 한때 치과였던 이곳에 매일 출근해 개인 공간으로 쓰고 있다.
끝으로 최 원장은 치과의사의 본분을 ‘사람을 고쳐주는 기술’과 ‘봉사’에서 찾았다. 63년의 개원이 남긴 것은 거창한 성공담이 아닌 환자 앞에서 지켜야 할 기본 자세였다.
최 원장은 “치과의사 일이라는 게 결국 하나부터 열까지 봉사다. 오래 했다고 특별한 왕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환자가 불편하면 들어주고, 내가 부족하면 물어보고, 안 되면 더 잘하는 곳으로 보내고, 그렇게 하루하루 정도를 지킨 것뿐”이라며 “치과는 크게 하는 것보다 오래 믿고 찾아올 수 있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 60년 넘게 한 자리에서 배운 것도 결국 그거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