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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난 봄꽃의 시계

황충주 칼럼

우리나라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가 있고 그중 많은 사람이 봄을 기다리고 좋아한다. 그 이유는 겨울의 춥고 가지만 앙상하던 삭막한 풍경을 꽃으로, 또는 연한 연두색의 잎으로 우리를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봄은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시작을 알리는 첫 계절이다. 봄꽃 중 매화는 가장 일찍 피는 꽃이다. 봄이 왔음을 알린다고 해 ‘봄의 전령사’라고도 불린다. 매화를 시작으로 일주일에서 열흘 간격으로 산수유, 그다음엔 진달래와 개나리가 하루 이틀 간격으로 피고 목련이 핀 다음 벚꽃이 만개하는 식이다. 봄꽃들의 개화시기는 자연이 우리에게 반복하여 보여주는 익숙한 순서이다.


그러나, 2026년 올해는 유난히 꽃 피는 순서가 뒤죽박죽이었다. 통상 매화는 2월께 꽃망울을 틔워 3월에 만발한다고 알려졌지만, 이 시점이 빨라졌다. 이런 여파로 서울의 벚꽃은 유난히 이른 3월 29일 최근 30년 평균보다 열흘 앞당겨 피었다. 평년에는 2주 가까이 벌어졌던 서울과 제주의 개화 시점이 올해는 단 하루로 좁혀졌다. 반면 제주도는 벚꽃 개화가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벚꽃 없는 벚꽃 축제’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진해군항제가 3월 27일 개막했는데 서울 개화 시점과 이틀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남쪽에서부터 서서히 올라오던 벚꽃 개화일도 그 간격이 점점 짧아져, 벚꽃이 전국에서 거의 동시에 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벚꽃만이 아니라 서울에서 벚꽃이 필 무렵 목련, 개나리, 진달래꽃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뒤죽박죽으로 피는 봄꽃은 예전처럼 일정한 순서로 피지 않고, 이른 개화, 늦은 개화가 뒤섞여 봄꽃의 시계가 어긋난 것이다. 식물은 일정 온도 이상의 온도가 쌓여야 꽃이 피는데, 올해 3월 기온이 급격히 오르면서 꽃 종류와 지역에 상관없이 꽃이 피는 ‘적산온도’에 한꺼번에 도달했다. 한파로 펴야 할 꽃들이 지연되고, 그다음에 피어야 하는 꽃들은 갑자기 따뜻해진 날씨로 인해서 한꺼번에 피는 ‘압축 개화’ 현상이 나타났다. 뒤죽박죽 개화에 이어 4월 초에는 서울에 19년 만에 눈이 내릴 정도로 춥다가, 하순에는 초여름 같은 더위로 변덕을 부렸다.


우리는 자연의 리듬에 기대어 시간을 살아왔다. 그런 점에서 봄꽃의 개화 순서는 단순한 질서이지만 자연의 보이지 않는 순리다. 하지만 기온 상승과 이상기후는 이 구조를 서서히 흔들고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은 꽃 피는 시기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단지 봄꽃 축제의 시기를 정하는 데만 어려움을 주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다.


‘총, 균, 쇠’의 저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세계지역의 발전과 격차를 인종이나 문화의 우열이 아니라, 환경적 조건의 차이라고 설명한다. 대륙의 방향, 작물과 가축의 분포, 병원균의 확산 가능성 등은 문명의 형성과 확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간의 역사는 인간 내부의 능력보다, 인간이 놓인 자연환경에 의해 크게 규정된다는 ‘환경 결정성’의 시각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의 기후변화 역시 단순한 생태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이것은 미래의 인간 사회를 재편할 새로운 환경 조건의 형성 과정이다. 특정 지역의 기후가 급격히 변하면 농업 생산성이 달라지고, 이는 경제 구조와 인구 이동, 나아가 정치적 긴장으로 인해 전쟁까지 일으킬 수 있다. 저자가 환경을 과거의 문명 격차를 설명했다면, 기후변화는 미래의 새로운 격차를 만들어내는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저자가 분석한 환경은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배경에 가까웠다면 오늘날의 기후변화는 상당 부분 인간 활동의 결과다. 산업화 이후의 온실가스 배출은 기후를 변화시키고, 그로 인해 생태계의 질서가 파괴되고 있다. 이는 환경이 더 이상 외부 조건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변형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4월 22일 미국 과학매체 Science News는 기후위기로 인한 열과 가뭄이 자연환경에서 항생제 내성 증가와 관련이 있다고 보도했다. Nature 연구에 따르면, 기온 상승은 토양 미생물 군집 내 항생제 내성 유전자 비율을 높이는 경향을 보였다. 2009년부터 2020년까지 초지 실험구 온도를 주변보다 약 3도 높게 유지한 뒤 토양을 분석한 결과, 가열된 환경에서 항생제 내성 유전자 비율이 약 25% 더 높게 나타났다. 기후조건 변화가 치료할 수 없는 세균까지 키워 우리 삶과 건강에 더 깊이 침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폭염, 홍수, 가뭄 등 극한기후가 감염병 확산 조건을 만들고, 그 결과 사람과 가축에서 항생제 사용이 늘어나면서 내성 발생이 가속될 수 있다. 홍수는 오염된 물을 통해 내성균을 확산하게 하고, 가뭄은 위생 환경을 악화시켜 감염 위험을 높일 수 있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기후 스트레스’는 식량 불안정과 영양 부족을 유발해 면역력을 약화하고, 의료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이 경우 감염이 더 오래 지속되거나 치료가 어려워지면서 항생제 의존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의 교란은 더 이상 자연의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개화 시기의 혼란, 생물다양성의 감소, 서식지의 이동은 곧 인간의 삶과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 증가, 감염병의 확산, 대기오염 악화 등은 이미 의료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료계의 역할은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기후 변화 속에서 의료는 질병의 결과를 다루는 기술적 영역을 넘어, 환경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겉보기에는 치과 진료는 기후 위기와 가장 거리가 먼 분야처럼 보인다. 그러나 구강건강 역시 환경 변화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폭염으로 인한 탈수는 타액 분비 감소를 통해 충치와 구강건조증의 위험을 높이고 스트레스의 증가는 이갈이, 턱관절 장애와 코골이 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 식생활의 변화 또한 구강질환의 양상을 바꾸며, 이는 기후변화가 구강에 미치는 영향들 가운데 하나다. 이런 의미에서 치과는 단순한 치료의 공간을 넘어, 변화하는 환경이 인간의 신체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주는지를 가늠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 자연의 리듬이 흔들릴 때, 결국 구강 환경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해결할 대책과 역량이 필요하다.


여기에 일회용 재료의 사용, 에너지 집약적인 장비, 감염 관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 등은 치과 진료가 결코 자연환경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과연 치유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부담을 자연에 전가하고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지구의 온난화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히 비정상적으로 더워지고 추워지는 문제가 아니라, 생태계의 시간, 공간, 관계 자체를 바꾸는 변화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의 변화는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 인간 생존과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꽃의 개화 시기가 어긋나고, 종의 분포가 이동하며, 먹이망이 흔들리는 현상들은 자연 내부의 교란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인간이 자연과 맺어온 관계의 균열을 드러낸다. 기후변화 속에서 무너지는 봄의 시간표에서, 이런 변화가 어떻게 갈 것인지, 아직은 누구도 예측하고 대책을 세우기 쉽지 않다. 그래서 어느 해보다 백화난만한 봄이지만 마냥 즐길 수만은 없는 이유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