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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의 대화 그리고 AI와의 대화

오은성 칼럼

“요즘 젊은이들과 왜 이렇게 말이 안 통할까?” 이 생각을 안 해본 기성세대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필자는 최근 인공지능을 좀더 심도 있게 사용하게 되면서, 인공지능을 다루는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몇 가지 개념을 접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내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알아서 알아듣기를 바라는 사람인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오케스트레이션, 하네스 엔지니어링 — AI 시스템을 설계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쓰는 이 용어들은, 사실 “서로 다른 존재가 협업하도록 만드는 기술”에 관한 것이다. 그 핵심은 상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내는 신호를 다시 설계하는 데 있다. 세 가지 용어를 짧게 풀어보고, ‘업무’와 ‘관계’ 두 층위로 나누어 진료실 협업을 들여다보자.

 

세 가지 개념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AI에게 작업을 시킬 때 입력하는 지시문을 정교하게 다듬는 작업이다. 같은 요청이라도 목적과 형식, 제약조건을 구체적으로 적어주면 결과물의 질이 크게 달라진다. 즉, ‘무엇을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결과를 좌우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오케스트레이션
여러 AI(또는 여러 역할을 맡은 프로그램)가 하나의 일을 나누어 처리할 때, 누가 어떤 순서로 무엇을 받아 무엇을 넘기는지를 설계하는 일이다. 한 사람이 모든 일을 잘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 역할이 어긋나지 않게 흐름과 경로를 짜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하네스 엔지니어링
AI가 일하는 ‘작업 환경 전체’를 설계하는 일이다.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쳤을 때 그 결과를 다시 작업자에게 피드백으로 돌려주어 다음 시도를 개선하게 만드는 구조, 오류가 생겼을 때 이를 감지하고 보완하는 장치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모델(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환경과 피드백 방식을 바꾸는 것’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세 가지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이것이다.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AI를 다루는 사람들이 먼저 점검하는 것은 ‘상대가 부족하다’가 아니라 ‘내가 전달한 지시, 내가 설계한 흐름, 내가 만든 환경’이다. 이 관점을 진료실로 옮겨보자.

 

업무의 층위 — 프롬프트: 무엇을, 왜, 어떻게
좋은 프롬프트는 결과만 요구하지 않는다. 의도(왜)와 제약(어떻게)을 함께 담는다. “이거 정리해 주세요”라는 지시와, “오후 상담 때 쓸 거라 치료계획서 한 장으로 정리해 주세요”라는 지시는 받는 사람에게 완전히 다른 정보량을 전달한다. 후자는 판단의 근거를 함께 주고, 그 근거가 다음 번엔 같은 설명 없이도 비슷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토대가 된다.


기성세대 특히 개업한지 시간이 좀 된 원장들에게는 ‘왜’가 종종 당연한 전제로 깔려 있다. 오래 같이 일했으니 말 안 해도 알겠지 — 라는 감각이다. 그러나 그 ‘당연함’이 듣는 사람의 머릿속에 같은 데이터로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성실함이나 센스의 문제가 아니라, 맥락 데이터의 보유량 차이다. 의도와 제약을 말로 풀어주는 것은 상대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협업의 출발선을 맞추는 일이다.

 

업무의 층위 — 오케스트레이션: 채널과 타이밍의 설계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할 때, 누가 어떤 정보를 언제 어떤 경로로 받을지는 자연스럽게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설계되어야 한다. 급한 일은 구두로, 정리가 필요한 일은 메모나 메신저로 — 라는 규칙이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읽히는 것은 아니다.


진료 중 끼어드는 질문은 “지금 당장 중요하다”는 신호가 아니라 “무례하다”로 읽힐 수 있다. 이 신호 체계가 미리 합의되어 있지 않으면, 같은 행동이 한쪽에서는 “긴급함의 표현”으로, 다른 쪽에서는 “배려 없음”으로 읽히는 일이 반복된다. 채널과 타이밍을 미리 정해두는 것 — 이것이 오케스트레이션이다.

 

관계의 층위 — 하네스: 결과를 정보로 돌려주는 환경
하네스의 핵심은 결과를 처벌이 아니라 정보로 돌려주는 데 있다. 진료실에서 실수가 생겼을 때, 그 사실을 어떻게 돌려주느냐가 관계의 질을 결정한다.


“왜 이렇게 했어요?”는 과거를 향한 질문이고, 추궁의 형태를 띤다. “다음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는 미래를 향한 질문이고, 함께 풀어갈 문제의 형태를 띤다. 같은 사건에 대한 두 개의 다른 프레임은, 듣는 사람에게 “나는 평가받는 대상인가, 함께 문제를 푸는 동료인가”라는 정체성의 신호로 작동한다. 한 번의 실수를 ‘인성의 증거’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환경에서는, 다음 실수는 보고되지 않고 감춰진다.

 

관계의 데이터는 업무 안에서 쌓인다
흥미로운 것은, 관계는 관계 그 자체를 다루려는 노력(친해지려는 시도, 회식, 사적인 대화)보다, 업무 차원의 작은 설계들이 누적되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매번 의도를 설명해주는 사람, 채널을 존중해주는 사람, 실수를 추궁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전환해주는 사람 — 이런 패턴이 쌓여 “이 사람과 일하면 안전하다”는 신뢰가 된다. 반대로 업무에서의 작은 어긋남이 반복되면, 관계 차원에서 “저 사람과는 말이 안 통한다”는 결론으로 일반화된다.


이런 세대 간 인식의 어긋남은 단순한 성향 차이가 아니라, 각 세대가 성장기에 겪은 사회·문화적 경험이 서로 다른 가치관과 소통 방식을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점도 함께 짚어둘 만하다. 사회학자 칼 만하임은 한 세대가 형성기에 공유한 역사적·사회적 경험이 그 세대 고유의 의식과 세계관을 만든다고 보았다.

 

자기성찰의 자리
자기 경험이 만들어낸 틀에서 ‘이 친구는 너무 강한 직원’이나 ‘말 안들어주는 원장’은 그 자체로 문제가 아니다. AI 엔지니어들이 모델의 성능이 기대에 못 미칠 때 가장 먼저 점검하는 것은 모델 자체가 아니라 프롬프트와 시스템 설계다. 협업에서도 다르지 않다. 점검할 것은 이 세 가지다. 내가 보내는 지시에 의도와 제약이 담겨 있는가, 내가 설계한 채널과 타이밍이 상대에게도 같은 신호로 읽히는가, 그리고 실수가 돌아왔을 때 그것을 정보로 돌려주고 있는가.


이것은 책임을 누군가에게 떠넘기거나, 반대로 모든 잘못을 자신에게 돌리는 일이 아니다. 협업의 구조를 먼저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 먼저 점검하자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점검은, 33년차든 3년차든, 진료실의 모든 협업 관계에 똑같이 적용된다. 신호를 다시 설계하는 것 — 그것이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세대 차이’라는 이름의 거리를 좁히는, 가장 현실적인 시작점일 것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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