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수많은 이들이 스마트워치의 걸음 수 수치를 확인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하루 만보 걷기’는 이제 현대인들에게 건강한 삶을 상징하는 가장 대중적이고 상식적인 건강 수칙으로 자리 잡았다. 10,000이라는 숫자를 채우기 위해 저녁 시간을 내어 개천가를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노력 속에는 신체 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간절한 욕구가 담겨 있다. 그러나 매일 전신 운동과 걸음 수에는 이토록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우리가 매일 세 번, 일생 동안 수없이 반복하는 또 다른 필수적인 신체 활동인 ‘씹는 행위(저작)’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음식을 입에 넣고 씹는 행위는 단순한 영양 섭취의 전반 단계에 머물지 않는다. 섭식 과정에서 한 번 음식을 입에 넣었을 때 약 30회 가량 충분히 씹고 삼키는 습관은 인간의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경이로울 정도의 다각적 건강 이점을 제공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바쁜 일상과 패스트푸드 중심의 식문화는 우리로 하여금 씹는 즐거움과 그 중요성을 잊게 만들었고, 급하게 삼키는 그릇된 식습관을 만성화시켰다.
저작의 가치는 생애주기별로 관찰할 때 더욱 명확해진다. 우선 성장기 어린이에게 올바른 저작 습관은 두경부 구조의 정상적인 발달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음식을 충분히 씹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적절한 기계적 자극은 턱뼈의 정상적인 성장을 유도하고, 치열이 올바르게 자리 잡을 수 있는 공간적 기반을 제공한다. 반대로 충분히 씹지 않고 음식을 넘기는 습관은 턱관절과 악골 발달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충분한 저작 없이 급하게 음식을 섭취하는 습관은 소화 효소가 충분히 섞이지 않아 만성 소화장애를 유발하며, 뇌의 포만감이 작용하기도 전에 과도한 음식물을 섭취하게 만들어 아동 및 성인 비만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어쩌면 이제는 저작 습관도 ‘측정’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스마트워치와 만보계를 통해 하루에 몇 걸음을 걸었는지 확인하고, 부족하면 더 걷는다. 그렇다면 하루 세 끼 식사에서 내가 몇 번이나 씹었는지, 제대로 씹고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최근에는 저작근의 움직임을 디지털 센서로 측정하여 씹는 횟수와 패턴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술도 등장하고 있다. ‘만보계’가 걷는 습관을 숫자로 보여주었다면, 이제는 ‘디지털 저작계’를 통해 씹는 습관 역시 측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성장기 어린이에게 이러한 기술은 단순한 측정 도구를 넘어, 올바른 저작 습관을 스스로 익히게 하는 새로운 구강건강 교육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이러한 저작의 생리학적·교육적 중요성을 일찍이 간파한 일본에서는 초등학교를 비롯해 중·고등학교 등 공교육 현장에서 전방위적인 ‘30번 씹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오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 저작 습관 관련 교육 활동을 선도해 온 야스토미 카즈코 교수는 대한턱관절협회가 주최한 학술 행사에서 ‘일본 초등학교 어린이 씹기 식습관 교육 시범강의’를 통해 어린 시절 형성된 올바른 저작 습관이 평생의 구강 및 전신 건강을 좌우한다는 점을 인상 깊게 강조한 바 있다. 이는 구강 보건 교육이 단순히 ‘양치질 잘하기’에 그쳐서는 안 되며, ‘어떻게 씹을 것인가’라는 행동의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저작의 중요성은 생의 후반부인 노년기에서도 매우 크게 다가온다. 최근 학계 연구들에 따르면, 원활한 저작 활동은 뇌 자극을 돕고 혈류 순환을 촉진하여 노년기 인지 기능 유지와 치매 예방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반대로 구치부 치아의 상실이나 관련 근육 약화로 인해 저작 능력이 떨어지면, 충분한 영양 섭취가 어려워지고 전반적인 전신 건강 관리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 즉, 잘 씹는 능력을 유지하는 것은 노년기 삶의 질과 활력을 지키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치과의사는 단순히 병든 치아를 치료하고 메우는 기술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치과 의료진의 진정한 역할은 구강악안면 영역의 기능적 조화를 복원하고, 환자가 평생에 걸쳐 올바른 저작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삶의 질 관리자’에 있다. 오늘 하루 만보를 걸으며 몸의 건강을 챙겼다면, 이제는 매일의 식사 자리에서 우리의 치아와 턱이 만들어내는 ‘30번의 울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다. 걸음 수를 측정하고 관리하듯, 저작 횟수와 저작 패턴도 측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치과계가 앞장서서 저작 습관의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고 대국민 캠페인과 교육으로 이끌어낼 때, 비로소 치과의사로서의 사회적 소명과 진료 영역의 가치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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