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매일 수많은 변수와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갑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예기치 못한 의료사고, 혹은 조직을 뒤흔드는 돌발적인 악재, 갑작스런 건강이상 등 비즈니스 현장과 개인의 삶에는 언제나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불시에 닥쳐옵니다. 거센 풍파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중심을 잡고 위기를 극복해야 할까요?
그 답을 찾기 위해 2천 년 전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습니다. 노예 출신으로 온갖 역경을 겪었던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집약한 책 “엥케이리디온(Enchiridion)”을 남겼습니다. 그리스어로 ‘손안에 쥐는 것’, 즉 위급할 때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작은 단검’이나 ‘휴대용 지침서’를 뜻하는 이 책은 사변적인 이론서가 아니라 거친 현실을 헤쳐 나가기 위한 가장 실천적인 생존의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에픽테토스는 “엥케이리디온”의 첫 문장에서 삶을 관통하는 가장 본질적인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세상에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과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물이나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해 우리가 품는 ‘판단’입니다.”
이미 터져버린 사건, 외부의 시장 환경, 타인의 평판은 우리가 바꿀 수 없는 ‘통제 밖’의 영역입니다. 반면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태도로 대응할 것인가는 온전히 ‘통제 안’에 있는 우리의 몫입니다. 위기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위기를 실패로 규정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을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주체적인 선택입니다.
이러한 스토아적 통찰이 현대 경영에서 가장 극적으로 발현된 사례가 바로 2016년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7 발화 사태’입니다.
출시 초기 큰 호평을 받던 전략 스마트폰이 전 세계에서 잇따라 폭발하며 조기 단종과 전량 리콜이라는 사상 초유의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수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손실과 함께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 “브랜드 신뢰의 완전한 붕괴”라는 냉혹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배터리가 물리적으로 발화했다는 사실 자체는 이미 벌어진 일이었고 기업의 통제를 벗어난 영역이었습니다. 여기서 삼성이 마주한 본질적인 갈림길은 바로 ‘판단’이었습니다. 원인을 축소하거나 특정 부품사에 책임을 전가하며 조용히 넘어가려는 방어적 판단을 할 것인가, 아니면 문제를 가감 없이 인정하고 체질을 완전히 바꾸는 쇄신의 기회로 삼을 것인가의 갈림길이었습니다.
삼성은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글로벌 공인 시험기관들을 통해 제조 공정의 모든 결함을 투명하게 공개했고, 8-Point 배터리 안전성 검사 체계를 구축하며 외부 전문가 자문단을 상설화했습니다. 발화 사건은 통제할 수 없었지만, 그에 대한 해석과 대응은 삼성의 통제 안에 있었습니다. 위기를 ‘신뢰로 다시 세울 기회’로 판단한 덕분에, 뼈아픈 실패의 경험은 훗날 스마트폰과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독보적인 안전성 경쟁력이라는 귀중한 자산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판단의 역사는 1982년 미국 존슨앤드존슨(Johnson & Johnson)의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누군가 시중에 유통되던 타이레놀 캡슐에 청산가리를 주입해 무고한 시민들이 사망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제조 과정의 결함이 아닌 외부 범죄자의 악의적인 테러였기에,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 기업의 직접적인 책임은 없었습니다.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라며 책임을 부인하고 통제 불능의 불운을 탓하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시 경영진은 사건의 원인이 아닌 ‘고객의 생명과 안전’이라는 통제 가능한 가치에 집중했습니다. 전국에 유통된 3,100만 병의 타이레놀을 전량 회수해 폐기했고, 대중에게 복용 중단을 신속히 알렸습니다. 나아가 외부 이물질 침입을 원천 차단하는 ‘3중 안전 밀봉 포장’을 세계 최초로 도입하며 업계의 표준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악의적인 범죄라는 불가항력의 재앙 앞에서도 ‘정직과 안전’이라는 적극적인 판단을 내린 결과, 타이레놀은 단기간에 시장 점유율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가장 신뢰받는 의약품 브랜드의 대명사로 남게 되었습니다.
기술과 시장의 급격한 패러다임 변화 앞에서도 이러한 원리는 똑같이 작동합니다. 2000년대 초, 온라인 DVD 대여 사업으로 성장하던 넷플릭스는 닷컴 버블 붕괴와 거대 경쟁사 블록버스터의 압박으로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했습니다. 심지어 블록버스터에 5,000만 달러에 회사를 매각하려다 굴욕적인 거절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자금난과 거대 기업의 공세는 스타트업이 당장 통제하기 어려운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거절당한 수모에 갇혀 좌절하는 대신, 미래 미디어 소비 방식의 변화라는 본질적인 흐름을 읽는 데 집중했습니다. DVD 배송이라는 기존의 성공 방정식에 연연하지 않고 스트리밍 기술과 알고리즘 추천 시스템 개발에 과감히 사활을 걸었습니다.
‘거대 기업의 위협’이라는 외부 사건을 파멸의 신호가 아닌 ‘비즈니스 모델을 근본적으로 혁신할 신호’로 판단한 결과, 넷플릭스는 몰락한 블록버스터를 넘어 글로벌 미디어 생태계를 재편하는 엔터테인먼트 제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배터리가 폭발하고, 악의적인 위협에 노출되며, 거대한 시장의 변화가 우리를 압박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과 개인을 무너뜨리는 것은 언제나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해석하고 마주하는 우리의 그릇된 판단과 방어적인 태도입니다.
에픽테토스가 품속에 지니라고 조언했던 “엥케이리디온”이라는 작은 단검은, 불안과 분노로 흐려진 우리의 시야를 가르고 본질을 직시하게 만드는 뚜렷한 판단력을 뜻합니다.
중국 속담에 풍향이 바뀔 때 어떤 이는 담을 쌓고, 어떤 사람은 풍차를 만들어 돌린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마윈은 위기를 제로로 만들려는 것이 가장 큰 위기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풀기 어려운 위기와 혼란이 놓여 있다면 잠시 멈추어 서서 자문해 볼 때입니다. 우리는 바꿀 수 없는 과거와 통제 밖의 환경을 탓하며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지금 이 순간 내가 통제하고,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와 혁신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이 결국 우리 자신의 삶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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