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고에서 AI에게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목적, 참고자료(레퍼런스), 원하는 형식, 그리고 맥락을 분명히 제시해야 하며, 이것을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고 한다고 했다. 이를 확장하여 직원들과의 업무 지시에서도 목적과 형식과 맥락, 제한점을 갖춰 지시하면, 막연히 “알아서 해봐요”라고 던졌을 때보다 결과물의 질과 행동의 결과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음을 나누었다.
하지만 우리는 명확한 “지시”가 잘 작동하지 않는 때를 마주하게 된다. ‘문제가 터졌을 때’이다.
진료를 마친 직원 한 명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 번이 두 번째로 원장이 진료보조가 필요한 때 자취를 감춘 것이다. 업무 순서를 바꿔 다른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처음 발생하여 지시할 때 목적과 순서, 참고할 매뉴얼까지 다 챙겨줬는데도 같은 실수가 반복된 것이다. “왜 또 이럽니까”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이 순간 명확한 지시를 한 번 더 반복하는 건 해법이 아니었다. 필요한 건 더 정교한 프롬프트가 아니라, 감정을 내려놓고 진짜 원인을 찾는 질문이었다. “지금 손이 필요했는데 어느 지점에서 순서가 바뀌었는지 얘기해 줄 수 있어요?”라고 묻자, 팀장에게 배운 방식과 필자가 지시한 방식이 애초에 달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전에 했던 지시를 더 정교하게 다듬어 강조만 했다면 결코 찾지 못했을 원인이었다.
여기서 리더십에 두 가지 다른 언어가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를 배정할 때는 프롬프트처럼 명확한 지시가 정답이다. 그러나 실수와 갈등, 즉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알아내야 하는 문제 해결의 국면에서는 질문이 필요하다. 답을 이미 정해둔 지시가 오히려 진실을 덮어버린다.
젊은 직원들과 일하는 진료실에서 유독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여기서 찾아 볼 수 있다. 공정함과 이유를 중시하는 MZ세대 스태프들은 원인 규명 없이 반복되는 지시나 다그침에 ‘조용한 침묵’이나 ‘갑작스러운 퇴사’로 응수한다. 지시가 잘못되서가 아니라, 지시할 상황이 아닌데 지시했기 때문이다.
조직심리학자 에드거 샤인은 저서 <리더의 질문법>에서 조직 내 관계를 4단계로 나눈다. 1단계는 지배와 억압에 가까운 관계, 2단계는 서로를 직함과 역할로만 대하는 형식적 관계, 3단계는 상대를 온전한 인격체로 인정하는 개인적 신뢰관계, 4단계는 가족처럼 정서적으로 밀착된 관계다. 대다수 병원 조직은 2단계, 즉 지시와 이행만 오가는 역할 중심 관계에 머물러 있다. 리더가 지향할 지점은 4단계의 밀착이 아니라, 신뢰가 형성되는 3단계다. 그리고 3단계로의 이동을 만드는 도구가 바로 겸손한 질문(Humble Inquiry)이다.
겸손한 질문은 답을 이미 정해두고 상대를 확인하는 질문이 아니다. 원장 자신이 현장을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감정을 잠시 내려놓은 채 상대의 경험에 순수한 호기심으로 다가가는 질문이다. 문제 해결 국면에서 이 태도를 지키는 리더는, 화를 참는 게 아니라 원인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질문을 택한 것이다. 그것이 품격 있는 리더십이다.
진료실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세 가지 질문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문제가 터졌을 때 단언 대신 ‘상황 관찰 질문’으로 시작한다.
“지금 뭐하는 거에요. 왜 이렇게 정신이 없습니까?”가 아니라 “지금 진행에서 각자 어느 지점이 힘들었는지 말해줄래요?”라고 물으면, 병목이 어디였는지가 직원의 입으로 스스로 드러난다.
둘째, 해결책을 던지기 전에 ‘현장의 지혜’를 먼저 구한다.
“상담 과정에서 내가 놓치고 있는 어려움이 뭘까요?”라는 질문은, 직원을 단순 실행자가 아니라 문제 해결의 주체로 인정하는 신호다.
셋째, 피드백은 ‘평가’가 아니라 ‘맥락 확인’으로 마무리한다.
“아까 그렇게 설명한 데는 이유가 있었어요?”라고 물으면, 직원 스스로 자신의 의도와 미숙했던 지점을 정리하게 되고, 방어적으로 반응할 이유가 사라진다.
물론 명백한 규정 위반이나 안전 문제 앞에서는 질문이 아니라 분명한 지시가 필요하다. 겸손한 질문은 매뉴얼로 다 잡히지 않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가 걸린 지점에서 힘을 발휘하는 도구다.
AI나 자동화 도구에는 목적과 레퍼런스와 형식을 갖춘 정교한 프롬프트를 던져야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 사람에게 업무를 맡길 때도 이 원칙은 유효하다. 그러나 문제가 터진 순간, 감정을 걷어내고 진짜 원인을 찾아야 하는 그 국면에서만큼은, 지시가 아니라 “겸손한 질문”이 답이다. 그 전환을 아는 것, 그것이 지금 이 시대 리더에게 요구되는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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