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존경하는 김용운 원장님께서 은퇴하셨습니다.
지난 5월,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인천광역시 중구(현재 제물포구) 내동 206번지에 있었던 ‘김용운치과’ 글자 간판이 사라지고 그 자국만이 남아 있는 것을 봤습니다.
김용운 원장님께서는 1968년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셨습니다. 이후 1971년 경기도 인천시 중구 내동 206번지에 치과를 개원하시고, 평생 56년간을 한 결 같이 지역 사회 주민들의 구강 보건 향상과 구강병 진료를 성심성의껏 하셨습니다.
저는 1990년 4월 20일 인천 중구 내동 209번지에다가 이규원치과를 개원하였습니다.
김용운 원장님 치과에서 50m 떨어진 곳에 개원한 저는 김용운 원장님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인접 치과였습니다.
1990년 5월 초로 기억이 나는데, 인천광역시 중구치과의사회 총무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중구치과의사회 월례회 모임에 나가서 신규 개원의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때 제 나이는 28세, 김용운 원장님 연세는 47세셨습니다. 지금 제 나이는 64세, 김용운 원장님 연세는 83세입니다.
그렇게 인연이 돼 김용운 원장님은 선배 치과의사로서 많은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다보니 36년이라는 세월이 어느새 흐르는 물처럼 훌쩍 지났습니다.
저는 1999년 인천치과의사회에서 매월 발행하는 인치회보를 제작하는 일을 하면서, 인천치과의사회에서 보관하고 있었던 사진들을 정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1976년 10월 27일 오후 7시 30분 제물포구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인천치과의사회 1976년도 2차 학술 집담회에서 국소 마취를 주제로 김용운 원장님께서 강의하시는 귀한 사진 한 장을 저는 아직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습니다.
김용운 원장님께서는 인천치과의사회에서 여러 임원을 맡으시면서 회무에 큰 도움을 주신 분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1978년~80년 총무이사, 1980년~81년 보험이사, 1981년~82년 총무이사, 1982년~84년 총무이사, 1984년~86년 학술이사, 1986년~1988년 학술이사, 1988년~1990년 감사, 1990년~93년 제3부회장, 1993년~96년 제1부회장, 1996년~99년 대의원총회 부의장, 2002년~2005년 대의원총회 의장을 하셨습니다. 거의 30년간을 인천치과의사회 임원을 역임하여 열정적으로 회무에 임하셨습니다.
올해 8월이었습니다. 무더운 여름 우연히 동인천 지하상가를 걷다가 김용운 원장님께서 왼손에는 우산,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시는 뒷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얼른 앞으로 뛰어가서 인사를 올리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한시(漢詩)입니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부수호란행).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는,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마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김용운 원장님
행동은 항상 후배의 모범이 되셨고, 진료를 함에 있어서는 돈보다는 환자를 먼저 생각하셨고, 20년이나 차이가 나는 신출내기 원장인 저에게는 인생의 선배님으로서 많은 좋은 말씀을 해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못 한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부디 건강히 오래오래 사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김용운 원장님 치과에서 제일 가까운 이규원 치과 원장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