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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에 옷 젖듯이

스펙트럼

“그동안 좀 어떠셨어요?”

 

환자를 마주하고 가볍게 시작하는 말. 그러면서도 동시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말이다. 그간 많이 아팠을지, 잘못되진 않았을지. 수술이 끝난 뒤부터 은은하게 내 머리를 어지럽히는 뿌연 생각들이 있다. 벌써 치주과 수련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되면서 조금씩 내 케이스가 생겨가는 중이다. 처음 환자를 봤을 때보다는 이런 잔잔한 두려움이 조금은 나아졌나 싶기도 하지만, 여전히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다.

 

교수님 진료를 어시스트하며 바로 옆에서 지켜본 시간이 몇 년인데, 그 진료 현장에 있을 때는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보였다. 어떤 기구를 준비해야 하는지, 다음에는 어떤 과정이 이어지는지, 교수님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옆에서 보고 있으면 크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충분히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새삼 느낀다.

 

막상 내 환자를 보게 되니 모든 과정이 산 넘어 산이다.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 판단하고, 여러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GTR을 할거라면 GTR이 무엇인지 아는 것만으로는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수술을 시작하며 메스를 잡는 순간부터 어떤 incision을 줘야 하는지, 그 이유는 뭔지, 모든 선택에 따라오는 결과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요즘은 진료를 하나 하고 나면 그날의 장면들을 자꾸 되돌아보게 된다. ‘아까 그렇게 하는 게 맞았을까?’,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내가 놓친 부분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진료가 끝났다고 해서 정말 끝난 것이 아닌 셈이다. 환자와 헤어진 뒤에도 머릿속에서는 그 진료가 계속 이어진다.

 

그러면서 교수님의 진료 중 자연스럽게 지나쳤던 것들이 이제는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왜 이 환자에게는 이 방법을 선택하는지,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보는지, 치료 후 어떤 점을 확인해야 하는지 하나씩 생각하게 된다. 나에게 아직은 그 과정이 매끄럽지 않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어시스트 하며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음이 감사한 나날들이다.

 

오늘 했던 진료에서 하나를 배우고, 어제 했던 실수에서 하나를 배우고, 세미나를 통해 하나를 더 배운다. 그렇게 하루하루는 아주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변화는 너무 작아서 그 순간에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처음 환자를 보았던 때를 떠올리면, 아주 조금은 앞으로 나아와 있다는 것을 느낀다.

 

아직도 환자를 볼 때 긴장하고, 치료를 앞두고 걱정하고, 진료가 끝난 뒤에도 잘한 것보다 부족했던 부분을 먼저 떠올린다. 어쩌면 수련이 끝날 때까지 이런 마음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있어도 한 단계씩 해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처음에는 비가 오는지도 모를 만큼 작은 변화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면 옷이 흠뻑 젖어 있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조금씩 젖어들고 싶다. 매일의 진료와 고민, 실수와 배움이 쌓여 언젠가는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기를 기대한다.

 

아직은 환자에게 “그동안 좀 어떠셨어요?”라고 묻는 그 짧은 말에도 마음이 두근거리지만, 언젠가는 그 질문을 조금 더 편안하게 건넬 수 있기를. 그리고 그때의 나는 지금의 이 두려움과 고민을 떠올리며, 그 시간들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고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