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규모의 학술대회를 준비하다 보면 종종 해외 연자의 접대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우리 학술대회에 참석해준 연자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 체류하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하는 것은 우리 정서상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는 개인에 대한 예우인 동시에 우리 학회와 대한민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환대의 정도가 좀 지나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특히 서구권의 저명한 연자를 초청할 때 이런 모습이 보이는데, 극단적인 예이지만 공항에서부터 전담 인력이 영접하고, 수행원이 동행하며, 비즈니스 항공료와 높은 연자료에 더해 각종 선물과 관광 일정까지 마련한다. 분명 학술적 교류를 위해 초청한 손님임에도 정작 학문적 논의보다는 의전과 접대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모습은 무언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당연히 학회의 재정 부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예로부터 손님을 잘 접대해야 한다는 문화와 학회에 이전부터 내려온 관행을 따르는 것이고, 또 어떤 상황에서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 점을 감안한다고 하여도 같은 분야에 몸담고 있는 해외 동료를 맞이하는 데 반드시 그 정도의 접대가 필요한지는 여전히 궁금증을 자아낸다. 정성 어린 환대를 받는 사람은 당연히 기분이 좋을 것이고, 그러한 접대를 해준 사람에게 특별한 기억과 좋은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친 의전이 언제나 긍정적인 관계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고, 동양의 겸양과 접대의 문화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자칫 자신을 지나치게 과대평가 하게 되거나, 향후에도 대접해준 사람에게 서열의식 같은 것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그간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아무리 국제적으로 명망 있는 연자라 하더라도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다른 연자들과 동등한 조건의 대우를 받는다. 서구권 학회의 경우 강연이나 좌장을 맡으면 등록비를 면제받는 정도이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손님 접대 문화가 강한 일본이나 대만 등에서는 여기에 만찬과, 소정의 연자료가 더해지기도 한다.
연자에게도 학술대회는 자신의 성과를 홍보하고 자신의 지명도를 높이는 기회가 된다. 따라서 해외 연자의 초청은 주최 측만 이익을 얻고 연자는 일방적으로 수고를 감수하는 일이 아니다. 충분히 서로에게 득이 되는 기회인만큼, 우리가 무리해 가며 지나친 접대로 그 만남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과거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던 때에는 해외의 저명한 인사를 초청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나라에 관심도 없었을 것이고, 방문의 실익도 별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주최자의 입장에선 궁여지책의 방법으로 각별한 예우조건을 통해 이를 성사시킴으로 선진 지식을 배우고 국제적인 인맥을 형성할 수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후학의 한 사람으로서 어려운 시기 이러한 노력을 해오신 선배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고, 특히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싶어하는 인기 국가 중에 하나가 되었다. 의료분야에서는 우리 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국제학술지에 하루가 멀다 하고 발표되고 있고, 국내에서 개발된 수술법과 치료 기술을 배우기 위해 기존의 선진국을 포함한 많은 외국의 의료진이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더 이상 해외 연자의 명성에 기대어 우리의 수준을 증명해야 하는 단계는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구시대적인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면 이제는 냉정하게 돌아볼 때가 되었다. 서구권의 해외 연자라는 이유만으로 국내 연자보다 지나치게 우대하거나, 학문적 기여와 관계없이 과도한 의전을 제공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묵묵히 분야를 지켜 오며 더 훌륭한 업적의 국내 연구자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줄 수도 있다. 올해 4월 필자가 회장으로서 구강악안면외과학회 종합학술대회를 치르면서 이러한 생각을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국제본부학회, 유럽본부학회, 독일학회의 회장들을 비롯해 자매결연 관계인 일본과 대만의 회장 및 연자들, 미국과 네덜란드의 연자들이 참석했다. 결과적으로 예년보다 많은 해외 주요 인사와 연자가 함께 했지만, 국내 연자와 비교한 추가 예우는 호텔 3박, 아시아권의 경우 2박을 제공하는 정도였다. 스스로 먼저 참석을 희망했던 연자에게는 별도의 연자료도 지급하지 않았다.
물론 이전부터 쌓아 온 친분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하였겠지만, 초청에 앞서 그런 조건으로도 참석할 수 있는지 문의하였고, 모두 기꺼이 오겠다고 하였다. 인도와 태국의 회장도 자비로 참석할 의사를 전해 왔으나, 프로그램의 자리가 한정되어 아쉽게도 정중히 사양해야 했다.
특히 독일 회장은 전임강사(Oberarzt) 두 명의 강연을 추가로 부탁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향후 교수직에 지원할 때 주요한 스펙으로 이용하기 위함이라 하였다. 이 친구들에게는 호텔조차 제공하지 못하였는데 기꺼이 참석하였고 이는 한국에서의 초청연자 이력이 그들에게 주요경력이 될 수 있는 충분한 동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해외손님들 상당수는 학회 일주일 전에 내한하여 스스로의 비용과 계획으로 한옥체험 등 한국관광을 즐겼으며, 모두 매우 만족한 듯하였다. 필자가 추가로 한 일이라곤 만찬 후 한 방에 모아놓고 친구로서 즐겁게 한국의 다양한 소맥제조법(?)을 가르쳐 준 것이 전부였다. 얼마 전 유럽 학회에서 그 멤버들을 다시 만났을 때 이구동성으로, 좋았던 한국여행의 경험과 내게 배운 한국 소맥법을 다른 동료들과 즐기고 있다고 밝은 얼굴로 얘기하여 주었다.
이렇듯 이제는 과거와 달라진 우리의 인지도와 위상덕에 굳이 특별한 접대가 없더라도 만족스런 한국 방문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이게 일생 같은 분야에 종사라고 있는 동료로서 더욱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해외 동료를 대하는 태도는 그들의 학문적 권위를 대하는 태도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서구권 연자의 접대 문화 개선에 그치지 않는다. 이제 우리 스스로가 어떤 위치와 자세에서 세계를 상대하고 교류할 것인가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인 고민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한 예로 아마 아직도 많은 의국에서 전공의들이 저널리딩(journal reading)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쉬운(?) 관행이었지만 아주 오래전에는 영어로 쓰인 해외저널의 내용이라면, 의심없이 절대 진리로 간주하려던 때도 있었다. 현재 웬만한 한국의 교수들의 연구역량은 주저자로서 SCI논문 십 수편 이상의 발표는 기본으로 하고 있는 만큼 이제는 학술에서도 관행적 사대주의(?)는 버리고, 우리가 세계를 리드해 나가겠다는 보다 주체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의학의 발전은 기존 지식을 충실히 습득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오늘날의 발달된 의료기술 역시 과거 누군가가 당시의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길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서구의 유명학자가 주장한 이론이라고 해서 비판 없이 따르는 한 우리는 그 발전에 주역이 될 수 없다. 이제 우리도 당당한 세계 리더그룹의 일원으로서 기존 지식을 참고하고 존중하되, 비판적인 시각으로 그 한계에 대해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 그 결과 많은 후배들이 자신만의 이론과 더 나은 해답을 제시하면서 당당히 세계와 교류할 수 있는 기백을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서구권 손님들에게 지나친 접대와 이유 없이 움츠리는 모습을 보이는 한 이를 본 후배들이 이런 기백을 갖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부디 우리 모두 해외의 동료들에게 친절하기만 한 호구가 아닌 당당한 친구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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