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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시론]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밤에 난다

월요시론

신 순 희 <본지 집필위원>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밤에 난다

 

모든 사물을 선명하게 비추던 한낮의 태양빛이 지나가고 어둠이 내리면, 암흑의 두려움 속에 우리의 눈동자는 잠시 떨리지만, 바로 그 순간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날갯짓을 시작한다. 헤겔의 법철학 서문에 나오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우리안의 사유와 깨달음을 상징한다. 어둠을 꿰뚫는 부엉이의 눈은, 한 낮의 눈이 미처 보지 못한 사물의 본질, 두 눈을 멀쩡히 뜨고도 못 보았던 숨은 것들을 보고 드러낸다. 육신의 눈은 비록 어둠에 가려 헤매일지라도 정신의 혜안은 어둠속에서 오히려 날카롭게 날아오를 수 있다.


멀쩡한 두 눈이 보지 못하는 것들은 의외로 많다. 전화기를 처음 발명한 벨에게 당시의 저명한 인사는 “놀라운 발명품이지만, 세상에 누가 이런 쓸데없는 물건을 쓰겠소?”라고 말했고, 역사상 가장 훌륭한 명연설로 평가받는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에 대해 당시 언론들은 ‘미국인을 수치스럽게 만든 연설’이라 혹평했다고 한다. 동시대의 진주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런 우매함은 언제나 그렇듯 남의 일이 아니며 지금의 우리사회 또한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에서 경제관련 전망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로 31살의 한 청년이 허위사실 유포죄로 검찰에 구속되었다가 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청년을 향해 겨우 전문대나 졸업한 무직자라며 인신공격성 폄훼를 일삼던 언론과, 마치 그가 없었더라면 정부의 신뢰성 추락이나 금융위기가 오지도 않았을 양하며 분개하던 정부 관료들은, 왜 많은 국민들이 소위 잘나가는 명문대 출신 전문가들로 꽉 찬 언론과 정부보다 그의 말에 더 귀 기울였는지 스스로 대답하지 못하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 오로지 자신의 논리와 분노에만 집착해 눈이 먼 결과이다.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던 그 청년은 이제 더 이상 한국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21세기 대한민국이 잃은 것은 단지 한 명의 인터넷 논객이 아니다. 앞으로는 그 누구든 인터넷에 글을 쓸 때 혹 그 글이 권력에 거슬린다면 갑작스러운 체포와 구속을 당할 수도 있음을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한달 전, 시골마을 봉하의 부엉이 바위 위에서 1년 반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셨던 분을 우리는 잃었다. 내란을 일으키고 광주를 학살하고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빼돌리고 외환위기를 초래해 나라를 말아먹은 전직 대통령들의 기억이 그득한 우리가, 그들의 너무나 태연한 모습도 참아내던 우리가 처음으로 가져 본, 퇴임 후 고향의 촌부로 돌아가 이웃과 스스럼없이 막걸리를 기울이며 농사를 짓던 전직 대통령을 그만 잃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가질 수 있었던 새로운 가치와 공존의 역사까지도 함께 잃어버렸다.


대다수 국민들이 가슴을 치며 슬퍼하고 있는 사이 광장은 봉쇄되고 분향소는 철거되고 자칭 보수논객들은 “서거 아니고 자살이네 실족사네” 하며 끝모를 악의마저 드러냈다. 자유민주주의는 그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자유와 책임을 부여한다. 인터넷 논객에게는 ‘책임’을, 전직대통령의 죽음 앞에 막말을 일삼는 이들에게는 ‘자유’를 선택적으로 선사하지는 않는다. 대통령이기에 앞서 한 가족의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던 고인의 죽음 앞에 애도조차 할 줄 모른다면, 멀쩡한 두 눈으로 그 많은 국민들의 눈물이 정녕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동체의 일원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것일 뿐이다.


사람도, 광장도, 민주주의도 잃어버리기 전에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지 못하고, 잃고 난 후에야 깨닫는다. 서거한 대통령이 지금 겪는 모욕으로 살아서 겪었을 이전의 모욕을 짐작하며 이제 와서 속울음으로 ‘지못미’(지켜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를 외쳐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마는 뒤늦은 깨달음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내린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다고 했던가. 언젠가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의 의미가 명확해 질 때, 짙은 어둠 속에서도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높이 날아오르는 그때에는, 인터넷 논객을 구속하지 않고도 시장의 신뢰를 얻는 정부가 있기를, 전직 대통령을 벼랑 끝으로 밀지 않고도 안정된 지지기반을 갖는 대통령이 있기를, 그래서 오늘 우리가 잃어버린 많은 소중한 가치가 성숙한 민주주의로 가는 고통스러운 절차였다고 기억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