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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수필(851)>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박금출(서울 종로구 박금출치과원장)

그동안 힘들게만 생각해 왔던 시집살이를 이제는 동요처럼 즐겁게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아주머니의 이야기처럼 우연한 기회에 작은 것들 속에서 삶의 깨달음이 찾아올 수도 있다. 요즘 세상에 드물게도 4대가 한 집에 산다는, 결혼 생활 35년 된 부부가 있었다. 그 부부는 우연히도 같은 시기에 풍치가 와서 틀니를 하게 되었다. 틀니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부부는 잠시 망설이다가 내게 이런 부탁을 했다. 약속이나 한 듯이 거의 동시에 말했다. “이왕이면 같은 날 이를 해 넣어 주세요” 부부가 결혼을 햐여 35년을 살았지만, 같은 날 태어나서 같은 날 죽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부부는 이왕이면 틀니라도 같은 날에 했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건 것이다. 살아오는 동안 서로간에 굳건한 사랑으로 연결된 부부가 아니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요청이었다. 치료받으러 다니는 동안 대기실에 앉아 진료를 기다리던 중에 우연히 흘러나오던 동요를 들으면서 아주머니는 마치 전율하는 듯한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 “원장님도 동요를 좋아하세요?” “예, 좋아해서 자주 듣는 편입니다.” “아까 대기실에서 동요를 듣다 보니 그동안 나 자신의 잃어버린 세월이 되살아났어요. 어린 시절에 KBS 합창단원이었던 언니와 함께 동요 부르기를 무척 좋아했었거든요” “진료 중에 어린 시절에 따라 부르던 동요나 가곡을 듣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맑아지고 신선한 에너지로 재충전되더군요” 그럴 때면 잠시나마 내 자신이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되곤 한다. 마음이 투명하고 티 없이 맑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되면, 때묻은 내 마음 속의 슬픔과 고통, 욕심까지도 정수기처럼 정화되는 효과가 있었다. 다음 번에 오실 때 좋아하는 동요나 가곡을 적어 오거나 KBS 합창단원이었던 언니와 같이 테이프에 녹음해 오라는 숙제를 내 드렸다. 아주머니는 숙제와 함께 그때의 감동을 이렇게 적어 보내 왔다. 문득 고교시절 교문 시간에 외워둔 옛 시조가 생각이 나서 적어 보았다. 마치 나 자신이 흙으로 묻혀 있다가 옥으로 발견된 것처럼 가슴이 부풀고 뛴다. 고명하신 원장 선생님과 대화가 통한다는 사실에 새삼 자부심을 느낀다. 나 자신을 잃고 시집살이로 살아온 지 35년, 아직도 시부모님 밑에서 며느리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나이지만, 이제는 육십 줄에 들어 망가지는 치아이지만 우연한 기회에 운 좋게도 박금출 치과를 찾게 되었다. 원장 선생님은 마치 세상 사람들의 치아를 고쳐주기 위한 사명감을 갖고 태어난 분 같다. 별명을 ‘이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이를 너무 사랑하니까 지루하게 기다릴 때 은은히 들려오는 동요를 들으면 소름이 끼치도록 전율을 느끼며 동심의 세계로 빠져든다. 나도 모르게 옛날을 회상하면서 원장 선생님과 취미가 같아 통한다는 것이 너무 기뻤다. 요사이는 매일 일하고 청소할 때에도 동요를 흥얼거리며 기쁜 마음으로 산다. 음악을 너무 좋아했지만 좋아하는 데서 끝나버린 나 자신을 생각하며 조용히 나의 머리 속에 삽입되어 있는 동요, 가곡을 생각해 본다. 동요를 따라 부르거나 듣노라면 어린 시절 추억으로 빠져들곤 한다. 그동안 힘들게만 생각해 왔던 시집살이를 이제는 동요처럼 즐겁게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아주머니의 이야기처럼 우연한 기회에 작은 것들 속에서 삶의 깨달음이 찾아올 수도 있다. 그 부부는 틀니를 기고 살아갈 걱정보다는 같은 날 틀니를 하고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기쁨을 찾는 착한 심성을 가진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직 인생이 무엇이라고 정의내리기에는 많이 부족한 경륜이지만,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