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약(誓約)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명예와 책임을 걸고 공동체 앞에서 의무를 선언하는 행위이며, 인간 사회를 지탱해 온 가장 오래된 윤리적 장치 가운데 하나다. 사람들은 서로의 서약을 믿음으로써 협력할 수 있었고, 공동체는 그러한 신뢰 위에서 질서를 유지해 왔다. 법과 제도가 아무리 정교해도 공동체가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서로의 말과 책임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서약은 바로 그 신뢰의 출발점이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약속을 지키는 일을 인간이 따라야 할 절대적 도덕 의무라고 보았다. 누구나 자신의 필요에 따라 약속을 깨뜨릴 수 있다면, 결국 ‘약속’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사회계약론자들 또한 서약을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 원리로 이해했다. 인간 사회는 강제력만으로 온전히 유지되지 않는다. 서로가 최소한의 약속은 지킬 것이라는 믿음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는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최근 제34대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장단 선거 이후 이어지고 있는 혼란은 서약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낙선 후보 측이 직무정지가처분과 당선무효소송 등을 연이어 제기하면서 협회는 회장 직무대행 체제라는 비상 회무 상황에
약전골목 초입에 올망졸망 맛집이 몰려있었다. 오전 11시 ‘소문난 육개장’ 앞, 두 여인이 대야를 두고 마주 앉는다. 고부간 수다를 떨어가며 잘 삶아진 양지머리를 결 따라 자디잘게 찢는다. 무심결에 발길 따라 들어가 주문을 하니까, 첫술에 “아, 이건 어머니 손맛(Mom’s Touch)!”,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예로부터 “극한극서에는 원행을 피하고 안방 방사도 삼가라.”(極寒極暑 遠行 房事) 했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소중한 몸을 알뜰히 보전하라는 뜻이다. 기공소가 없던 시절에 점심에는 치과직원만 대여섯이니, 부뚜막에는 크고 작은 가마솥 세 개에 국수 삶는 풍로가 따로 있었다. 어머님은 한여름 한겨울 주말에는 보양(補養)식을 빠뜨리지 않으셨다. 직업상 분진(粉塵)을 마시는 치과 식구들에게, 수육에 새우젓을 곁들이거나 고기가 넉넉한 육개장을 끓여 내셨다. 잘게 찢은 양지머리에 대파를 겅중겅중 잘라 함께 육수에 투하, 대파가 살짝 익을 만큼 한 번 더 끓인다. 맛깔 나는 육수에는 질긴 고기를 써야하므로, 잘게 찢어 한 번 더 우려내면, 육향이 그윽해지고 살도 연하다. 고기 맛 돋우는 고사리는 많으면 제 맛만 내세우니까 살짝 데쳐서 두어 꼬집만, 머리 따낸 식감
인간은 눈에 보이는 세상을 ‘실재’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머리 위로 펼쳐진 푸른 하늘, 발밑의 단단한 땅, 그리고 쉬지 않고 흐르는 시간은 의심할 여지없는 진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이론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 1956.5.3.~)는 그의 저서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Reality is not what it seems)』를 통해 우리가 감각하는 이 모든 평온한 풍경이 사실은 거대한 ‘환상’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원자론에서 시작해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인 루프 양자 중력 이론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쌓아 올린 지식의 지도를 펼쳐 보이며 세상의 진짜 민낯을 드러낸다. 매주 수요일 몇 명이 줌 화상을 통해, 영어책으로 읽기 시작(2025.8.13.)해 31회만에(2026.5.6.) 독파하였다. 로벨리는 주로 양자 중력 분야를 연구하며 루프 양자 중력(loop quantum gravity, LQG) 이론을 창시한 인물 중 하나로, 과학사와 과학 철학 분야에서도 활동하며 관계론적 양자 역학(relational quantum mechanics)과 열적 시간(thermal time)의 개념을 정립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가 있고 그중 많은 사람이 봄을 기다리고 좋아한다. 그 이유는 겨울의 춥고 가지만 앙상하던 삭막한 풍경을 꽃으로, 또는 연한 연두색의 잎으로 우리를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봄은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시작을 알리는 첫 계절이다. 봄꽃 중 매화는 가장 일찍 피는 꽃이다. 봄이 왔음을 알린다고 해 ‘봄의 전령사’라고도 불린다. 매화를 시작으로 일주일에서 열흘 간격으로 산수유, 그다음엔 진달래와 개나리가 하루 이틀 간격으로 피고 목련이 핀 다음 벚꽃이 만개하는 식이다. 봄꽃들의 개화시기는 자연이 우리에게 반복하여 보여주는 익숙한 순서이다. 그러나, 2026년 올해는 유난히 꽃 피는 순서가 뒤죽박죽이었다. 통상 매화는 2월께 꽃망울을 틔워 3월에 만발한다고 알려졌지만, 이 시점이 빨라졌다. 이런 여파로 서울의 벚꽃은 유난히 이른 3월 29일 최근 30년 평균보다 열흘 앞당겨 피었다. 평년에는 2주 가까이 벌어졌던 서울과 제주의 개화 시점이 올해는 단 하루로 좁혀졌다. 반면 제주도는 벚꽃 개화가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벚꽃 없는 벚꽃 축제’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진해군항제가 3월 27일 개막했는데 서울 개화 시점과 이틀 차이
현행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장단 선거제도에 대해 이제는 보다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창립 이래 오랜 기간 유지되어 온 대의원 간선제는 제30대 협회장 선거를 기점으로 직선제로 전환되었고, 그 과정에서 분명 얻은 성과도 있었으나 동시에 결코 가볍지 않은 부작용 역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직선제의 도입 취지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의 근간으로 풀뿌리 참여, 그리고 회원 주권의 실현이라는 명제는 이론적으로 충분히 타당하다. 회원 각자가 직접 협회장과 부회장을 선출함으로써 ‘주권은 회원에게 있다’는 원칙을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으며, 후보자들 또한 회원의 요구를 더욱 민감하게 반영하게 되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이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일반 정치와 달리 치과계는 공통의 이해와 목표를 공유하는 직역 단체다. 이로 인해 후보자들이 제시하는 정책과 사업 방향은 대체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어느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협회의 기본적인 방향성이 급격히 달라지기는 어렵다. 이는 직선제가 전제하는 ‘정책 선택에 기반한 투표’가 실제로는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임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회원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의 현장에서 마주한 질문입니다. 필자도 작년에 환갑이 지났으니, 올해 만으로 예순하나라는 적지 않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30여 년 전인 1993년, 서른도 안된 젊은 나이에 처음 치과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의 나이 차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때로는 필자보다 연배가 높은 직원과 손발을 맞추며 병원을 일구기도 했으니,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아득한 세월입니다. 강산이 세 번 변하는 시간 동안 병원을 지키며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소위 ‘세대차이’ 혹은 ‘시대차이’라 불리는 조직 내 문화의 충돌입니다. 현재 우리 병원을 지탱하는 젊은 직원들은 필자에게 거의 딸뻘 되는 나이입니다.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때로는 웃고 때로는 부딪히는 과정에서, 최근 필자는 직업 윤리와 프로 의식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진료 시간의 주인은 누구인가? 사건의 발단은 단순했습니다. 진료 시간 중에 스마트폰을 보거나, 진료중일 때 다른 공간에서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입니다. 원장으로서 엄중히 지적했을 때 대다수 직원은 잘못을 시인했지만, 한 직원의 항변은 필자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할 일이
돈, 명예, 건강은 인간 삶을 지탱하는 세 가지 축이지만 서로의 조건을 제한하기도 하고 상호 보완적인 측면도 있다고 생각된다. 어느 하나가 우선이 될 수가 없고 구조적 순환과 긴장 관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3가지 모두가 중요하지만 필자는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아마도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나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건강은 돈과 명예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고 신체적, 정신적인 건강이 유지가 되어야 소득을 올릴 수 있으며 사회적 활동을 통해 명예를 축적 시킬 수 있다고 본다. 돈과 명예를 잃더라도 노력 여하에 따라 회복이 가능하지만 건강은 일정 수준을 넘으면 회복하기가 어렵다. 건강은 돈과 명예를 위한 전제 조건이다. 두 번째로 돈은 건강과 명예를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소득은 휴식과 여가를 가능하게 하며 그로 인해 건강을 유지 시킬 수 있고 명예를 획득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돈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 지나친 욕심을 부리면 과로와 스트레스를 초래하여 건강을 잃기도 하고 명예마저 훼손할 수 있다.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둘 다 파괴될 수 있다. 세 번째 명예는 개인의 성취로 인해 사회가
장모님은 여걸이셨다(金貞姬; 1929-2020). 여고시절에는 청주 시내를 말을 타고 달리기도 했다고 한다. 탄허 스님이 법명 벽안(法名: 碧眼)을 주실 만한 미모에 사업수완 또한 만만치 않았고, 여신도 회장과 불교신문사 사장을 역임하셨다. 진잠에 큰 절을 세울 꿈을 품었던 스님은, 대전에 오면 처가에서 점심공양을 하셨는데, 장모는 “큰 스님이 오시니 귀한 말씀 좀 듣자.” 전화를 했다. 불경번역으로 한문 실력이 걸출한 학승이라는 명성과 예지 능력은 익히 잘 알려져 있고, “허공을 삼킨다.”는 법명이 예사롭지 않아, 달려가 몇 차례 뵌 적이 있다. 눈매가 부리부리하고 탄탄한 씨름선수 몸매에 말수는 뜸하여, “역시 뜬금없는 스님의 알 수 없는 방언?”이라는 건방진 생각에, 더 자주 뵙고 듣지 못한 젊은 시절의 오만이 후회로 남아 있다. 흘리듯 지나가는 말씀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머지않아 우리나라에 여성 대통령이 나오고, 그 전후에 일본열도가 바다에 잠기며, 곧 이어 세계가 조공(朝貢)을 바치러 온다는 얘기였다. 그때만 해도 너무 황당무계하다고 웃어 넘겼는데, 30년이 채 못 되어 박근혜대통령이 나오고 도후쿠 지방이 쓰나미에 잠기더니, K-컬처를 동경하는 세계의
요즘은 스트리밍 음원을 주로 이용하니 그렇지 않지만, 레코드나 CD음반을 틀면 곡과 곡 사이에 잠깐 조용한 간격이 있다. 어릴 적에는 음악이 계속 이어지지 않는 이 빈틈이 아쉬웠다. 특히나 재생시간이 정해진 카세트 테이프에 이 곡 간격이 용량을 차지하는 것이 아까워, 초시계를 들고 수신호를 해 가며 음악을 꽉꽉 채워 녹음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는 곡 간격의 적막이 주는 여운을 즐길 수 있게 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어른이 되어 삶이 복잡해지기 시작한 때문은 아닐까. 적막이 주는 평화를 극단적으로 체험하게 된 탓인지도 모르겠다. 매일 아침 학교에 가기 위해 타곤 하던 옛150번 버스는 서울 서북부에서 출발해 중심가를 지나 한강대교를 건넌 다음 봉천고개를 넘어 경유해 서남권으로 주행하는 긴 노선이었다. 한강을 건넌 뒤에는 한동안 소강상태를 보이다 고개를 넘어갈 무렵부터 다시 손님이 차곤 했다. 그날은 시내에서 밀려 차가 연달아 지나갔는지, 중앙대 학생들이 우르르 내리고 나니 버스 안엔 나와 다른 손님 한분 그리고 기사님만 남았다. 평소와 다른 고요함도 잠시, 다음 정거장에서 엄청난 소리와 함께 초등학생들이 물밀 듯이 버스에 들이닥쳤다. 내 허리춤밖에 오
우리는 평생 ‘나’라는 존재를 중심에 두고 세상을 살아간다. 나의 생각, 나의 감정, 나의 소유물과 나의 미래는 우리 삶을 지탱하는 가장 견고한 기둥처럼 보인다. 아침에 눈을 떠 밤에 잠들 때까지, 우리는 ‘나’라는 일인칭 주인공이 이끄는 삶의 서사를 한 치의 의심없이 받아들인다. 하지만 인지 신경심리학자 크리스 나이바우어(Chris Niebauer)는 그의 저서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원제, No Self, No Problem: How Neuropsychology Is Catching Up to Buddhism)』를 통해 이 믿음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그는 최신 뇌과학 연구와 수천 년 전 동양 철학의 통찰을 결합하여, 우리가 ‘나’라고 믿는 존재가 사실은 좌뇌가 만들어낸 교묘한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충격적인 진실을 폭로한다. 나이바우어는 톨레도 대학교(University of Toledo)에서 인지 신경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인간 두뇌의 좌뇌와 우뇌 차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해 온 학자다. 현재 펜실베이니아주 슬리퍼리 록 대학교(Slippery Rock University)의 교수로 재직하며 의식, 마음챙김, 좌우뇌의 차이, 그리고 인공
겨울의 추운 날씨 속에서 언제 따뜻한 봄이 올까 생각했지만 3월 5일은 24절기 중 세 번째인 경칩이었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초봄의 시작 기준이 되는 절기로 알려져 있다. 우수와 춘분 사이에 들어 있는 경칩은 글자 그대로 땅속에 들어가서 동면을 하던 동물들이 깨어나서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무렵이 된다. 만물이 약동하며 새로운 생명이 생기며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땅속에서 깨어난다는 뜻으로 한국에선 그중에서도 개구리가 유난히 강조된다. 물론 한기는 여전히 남아 있으며, 겨울이 물러가 완연한 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최소 춘분은 지나야 한다. 경칩부터 춘분 전까지,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녹고 한파가 사라진 시점인 것은 맞지만, 꽃샘추위가 찾아와 쌀쌀한 날씨를 보이기 때문에 간혹 “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도 얼어 죽겠다”라는 이야기도 종종 나온다. 꽃샘추위의 경우 한겨울 한파처럼 기온이 급강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추위 전에는 포근했다가 갑자기 추워져서 기온 차이가 심해지기 때문에 이 시기에 체감상 느껴지는 추위가 더 세다. 이러면서 날씨가 따뜻해져 초목의 싹이 돋기 시작한다. 찬바람으로 시작된 겨울도 이제 봄바람으로 마무리돼 가고 있다. 모든 것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