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씨엠립으로 진료 봉사를 다녀왔습니다. 처음 병원에서 좋은 기회를 제안받고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막상 출발이 가까워져 오니 걱정이 앞섰습니다. 주된 걱정 가운데 하나는 현지에 대한 이해도, 즉 현지의 상황을 너무 모르고 막연하게 출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현지의 기후, 치안, 물가 등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충분히 확인이 가능하지만, 여행이 아닌 진료 봉사를 목적으로 제가 사전에 알고자 했던 현지의 구강건강 관련 정보는 확인이 불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개개인의 구강건강상태가 심각하여 수복과 발치를 끊임없이 할 것이라는 막연한 수준의 정보에, 그만한 각오를 다지며 출국길에 올랐습니다. 새벽 두 시에 강릉에서 집결하여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 하노이를 경유해 씨엠립에 이르는 여정은 말 그대로 멀고도 험했지만, 건기에 해당하는 현지의 저녁 날씨는 제법 괜찮았습니다. 한국에서 사용하던 휴대폰에 현지 통신사 유심칩을 끼워보니 인터넷도 무척 빨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휴대폰 앱으로 이용 가능한 콜택시와 음식 배달 대행까지 각종 생활 편의 서비스가 무척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되고 있었습니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이 다들 비슷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 정도면 구강
지귀(志鬼) 이야기를 아시나요? 저는 경주하면 지귀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적어도 저에게 경주는 불국사도 석굴암도 아닌 지귀의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지귀는 선덕여왕을 한 번 본 뒤 반해 버려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으며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선덕여왕을 부르다가, 그만 미쳐 버리고 만 친구입니다. 어느날은 지귀가 영묘사의 탑 아래 선덕여왕을 기다리다가 지쳐 잠이 들게 됩니다. 지나다 그 모습을 본 선덕여왕은 그런 지귀가 가련해 팔목에 감았던 금팔찌를 뽑아서 지귀의 가슴 위에 놓은 다음 발길을 옮기었습니다. 여왕이 지나간 뒤에 비로소 잠이 깬 지귀는 가슴 위에 놓인 여왕의 금팔찌를 보고는 너무 좋아 껴안고 어찌할 줄을 몰라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사모의 마음이 너무 커져 불씨가 되어 가슴 속을 활활 태우더니, 어느새 온몸이 불덩이가 되고, 결국에는 불귀신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그런 지귀가 세상을 떠돌아 다니자 온 세상이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선덕여왕은 다른 백성들이 다치지 않게 주문을 짓게 됩니다. ‘지귀가 마음에 불이 나(志鬼心中火) 몸을 태워 화귀가 되었네.(燒身變火神) 마땅히 창해 밖에 내쫓아(流移滄海外) 다시는 돌보지 않겠노라.(不見
김동석 원장 ·치의학박사 ·춘천예치과 대표원장 <세상을 읽어주는 의사의 책갈피>, <이짱>, <어린이 이짱>, <치과영어 A to Z>, <치과를 읽다>, <성공병원의 비밀노트> 저자 도끼를 잡아본 적이 있었습니다. 학생 때 산골의 민박집에서 땔감을 자르는 걸 보고 따라 했던 기억입니다. 그것 말고는 살면서 도끼를 잡아볼 일이 있을 턱이 없지요. 나무를 베는 평범한 도구인 도끼가 가지는 이미지는 사실 폭력적이고 파괴적입니다. 학생 때 친구를 포함해서 살면서 주변에 ‘도끼’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을 여럿 만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도끼는 뭔가를 파괴하는 의미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변신』 『소송』 『성』 『시골 의사』 등으로 유명한 카프카는 20세기 현대문학에서 중요한 실존주의 작가로 평가됩니다. 제가 카프카의 책을 읽은 이유는 우연히 알게 된 카프카의 글 때문이었습니다.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쓴 편지에 이런 말이 쓰여 있습니다. ‘나는 우리를 깨물고 찌르는 그런 책들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만 해.’ 이 문장으로 인해 그저 카프카를 좋아하게
‘설’이라는 이름을 찾기까지는 꽤 여러 번의 곡절이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한민족의 정신을 훼손하기 위해 음력 설날이 폐지되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도 상당 기간을 1월 1일을 설로 정했습니다. 이중과세 방지정책을 유지하기 위함이란 명목으로 ‘민속의 날’로 불리기도 했으며, 양력 1월 1일은 ‘신정’, 음력 1월 1일은 ‘구정’이라 폄하되었습니다. 설의 어원을 찾아보면, 1년이면 한 살, 2년이면 두 살 등 나이를 헤아리는 ‘살’이 ‘설’로 바뀌었다는 것과 ‘설다’, ‘낯설다’와 같이 새로운 것을 표현하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설은 그 이름이야 어떻건 간에 한 해의 시작 첫날에 모두 모여 조상님들께 감사하는 차례를 지내고, 가족 식구들과 마을 사람들이 서로에게 세배하고, 흰 떡국과 여러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덕담을 주고받고, 행복을 기원하는 날입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지금은 ‘설’이 민족의 명절로 제자리를 찾았습니다만, “새해”의 기준은 여전히 1월 1일과 ‘설’ 둘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 기준이나 낭비적 요인 어쩌고 하는 말들과는 상관없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
이승만의 토지개혁은 김일성의 ‘폭풍작전’으로부터 대한민국을 구해낸 신의 한 수다. 공산 독재냐 자유 민주냐 개념조차 생소한 국민에게, 최소한 꼭 지켜야 할 ‘내 것’을 쥐여 준 것이다. 일찍이 레닌은, “농민은 땅에 대한 집착으로 진정한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다. 적당히 이용하고 버려라”하지 않았던가? 충청도는 다른 곡창지대와 달리 지주·소작농관계보다 자작농이 더 많았다. 소작농은 당장 눈앞의 마름 눈에 들어야지, 뼈 빠지게 일하는 건 한양에 계신 지주의 배나 불리는 일이다. 흉년이 들면 지주는 곳간을 풀어 소작농의 생계를 도와준다. 일종의 농기구(農器具) 관리다. 직업이라는 개념에서 ‘도덕적 해이’가 기생하기에 딱 좋은 상황이다. 자작농은 다르다. 쌀 한 톨 한 톨이 내 재산이니 피땀을 쏟는다. 가뭄이 심하면 기우제를 지낸다. “검은 구름이 몰리는 걸 보닝께 오늘 니얄 한 줄금 허것는 디?” “예끼, 이 사람아.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누가 안 디야?” 6·25 전쟁 중에 가장 혁혁한 전과를 올린 명장은 임부택 소장이다(1919-2001). 장군의 7연대는 개전 첫날부터 춘천·홍천 지구에서 북괴군 2개 사단을 괴멸시키며 유일하게 3일을 버텨, 국군은 전열
물건 가격이 9900원으로 끝나는 광고를 우리는 자주 접하게 된다. 마트나 창고형 할인매장에서 프로모션이라는 미명 하에 덤핑처리를 하기 위해 자주 이용되는 방법이다. 쏟아 붓는다는 뜻의 Dump(ing)이란 다른 물건보다 일부러 싸게 팔아 시장을 점유하려고 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매력적인 가격에 현혹되어 물건을 구매하게 되고 기업은 이윤 창출과 더불어 인지도 상승에 따른 시장 점유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된다. 반면 경쟁에서 밀린 동종업계는 자구책을 찾아 나서려고 상품의 질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좇는데 급급할 것이다. 더 높은 수익을 단기간에 올릴 수 있는 방법을 무조건 선택하는 것은 장기적인 비전에 오히려 나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것이 자명하지만 그들은 선택한다.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포털사이트에 경쟁하듯 깜박거리는 *9만원 임플란트 광고를 볼 때면 눈살이 찌푸려지는데, 이 광고를 보고 온 환자들에게 *9만원이 안되는 이유를 설명하며 가격 흥정을 하고 있자면 치과의사로서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실상 임플란트 한 개를 심는 데 재료비는 20% 정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치과의사가 폭리를 취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치과 임플란트 건강보험은 박근혜 정부에서 2014년에 처음 도입되고,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2015년, 2016년 점차 그 연령을 확대하였다. 2018년에 본인부담률을 50%에서 30%로 인하한 것을 끝으로 5년간 변경 없이 현재에 이르렀다. 따라서 국민의 구강건강 향상을 위해 지금이 2개만 보험적용 해주던 임플란트를 4개까지 확대 적용할 가장 적절한 시점이라고 본다. 정상적인 성인의 자연치아 개수는 28개이며, 효율적으로 음식물을 씹기 위한 최소의 치아 개수는 24개이다. 치아가 결손되어 임플란트를 할 경우에는 치조골이 튼튼해야 굵고 긴 임플란트를 심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치조골이 튼튼할 때는 돈과 시간이 없고, 돈과 시간이 있을 때는 이미 치조골이 다 없어져서 굵고 긴 튼튼한 임플란트를 심을 수 없게 된다. 또 치아 결손을 방치하다가 치조골 흡수가 다 되어버린 후에 임플란트를 심는 경우에는 임플란트 수명이 짧게 되어 기존에 심었던 임플란트를 뽑고 다시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2020년 기준 국민건강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만 70세 이상 인구가 보유한 자연치아 수는 평균 16.4개 수준이다. 생존을 위한 최소 자연치아 개수인 20개 이상 치아 보유율은
5년 전에 치의신보에 Start with why란 칼럼으로 글을 썼었습니다. 그리고 why로 시작하지 않은 일이라도 이제라도 why를 찾아서 의미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글을 쓴 저도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해야될 일들에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까먹은채 그냥 하면서 살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위대한 기업이나 위대한 사람들은 매우 소수로만 존재합니다. 오늘은 왜, 의미, 이유를 중요시 여기는 MZ세대에 대해서 다뤄보겠습니다. 유튜브에 나온 ‘왜 MZ세대는 대기업 입사 후 3년 안에 퇴직을 많이하는가’라는 삼프로TV의 콘텐츠에서 MZ세대들은 과거의 산업화 세대와 달리 ‘왜, 의미, 이유’가 있어야만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흐름은 과거 시키면 그냥하는 식의 태도 보다 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라떼 얘기를 해보자면, 저는 82년생이고 학생과 전공의시절이었던 2000년대와 2010년대 중반까지를 돌이켜보면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특히 인턴 때를 생각하면 왜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피곤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회사 생활은 안해서 모르지만 대기업에서의 생활도 왜라는 것을 생각하기보다 시키는대로 빨리빨리 하는 것이 중요
소통이 절실한 2024년 새해가 밝았고, 한 달이 지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요구와 주장으로 가득하고 대답이 없는 불통의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보는데, 이와는 달리 전문가 집단인 우리 치과계가 보건의료계의 중심에서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주요 일간지를 비롯한 주요 일반 언론들은 정치적인 편향성으로 신뢰도가 하락되어 있으므로, 올바른 보도와 소통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양한 치과계 언론이 치과의사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뿐만 아니라, 보건의료계와 국민과의 소통의 창구로서 활약하기를 기대해 본다. 치과의사는 생명을 지키고 질병을 치료하는 의료행위 뿐만 아니라 사회 지도자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할 수 있도록 해야 하므로, 치과계 언론은 정치ㆍ사회 및 보건의료계의 소통의 중심이 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소통의 역할을 위해서, 치과계 언론이 국민에게 치과계 현실을 올바르게 전달해 주는 역할을 기대해 본다. 일반 언론들은 흥미나 사건 위주로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보건의료에 대한 올바른 시선으로 치과계 상황을 정
서울에 갈 때는 경복궁 근처를 자주 지나치는데, 한동안 토목공사를 하는지 복잡하더니 공사가 마무리된 뒤에도 길이 둥글게 휘어 지나가기가 낯설고 불편했다. 무슨 일인가 알아보니 광화문 앞 월대 때문이었다. 월대(月臺)란 전통 건축에서 건물의 격을 높이기 위해 터보다 높게 쌓아올린 기단이다. 궁궐에서는 정전과 침전에 위엄을 주기위해 월대를 쌓았고, 전각 앞 공간이 평평하게 확장되어 하례식 등 사람이 모이는 행사에 실제 활용가치도 높았다고 한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은 조선 초기부터 임금이 친히 나가 백성과 소통을 도모하던 공간으로, 이곳에도 월대가 축성되었다가 일제 때 전차 도로를 만들며 훼손하여 땅에 묻혔던 것을 금번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옛 왕정국가의 유물, 오래되지도 않고 19세기말에 재건된 것을 굳이 현대에 복구할 필요는 무엇일까. 제법 큰 비용과 상당한 불편도 감수하면서 말이다. 옛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의 해체와 경복궁 복원의 경우가 비슷하다고 보인다. 우리 땅에서 우리 국민의 혈세와 노고로 건축한, 조선총독부보다 대한민국 중앙청으로 쓰인 역사가 더 긴 근대 건축 유산을 굳이 부수지는 말자는 의견과 악의적으로 민족정기를 말살하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최근의 임플란트 덤핑 논란이나, 최근에 나온 임플란트 절대 하지 말라는 식의 책 같은 것을 보면 고민이 됩니다. 치과 치료, 싸게 해 주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냐는 생각도 들긴 하거든요. 윤리라면 저렴한 치료를 제공하는 걸 말하나요? 익명 최근 모 선생님께서 내신 ‘내부고발’ 위치의 책으로 인해 여러 선생님이 걱정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치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