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와 “나는 충분해” 사이

2024.04.24 14:54:20

Relay Essay 제2602번째

대학을 졸업하고 구강악안면외과 수련을 받았지만, 사실 생명을 다룬다는 생각은 없었다. 수련을 마치고 갓 부임한 대학병원에서 이제 스승의 지도 없이 홀로 환자를 보던 지난 일이 생각난다. 전공의 수련기관이 아니었던 병원이었기 때문에, 야간에 응급실 호출을 받는 일이 잦았다.

 

그 날도 퇴근 후 밤 11시 경 쯤 콜을 받고 응급실에 나와 안면부 열상환자 수술을 마치고 새벽 1시경 쯤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병원에서 다시 오라는 연락을 받아 차를 돌려 돌아왔는데, 전신에 손상을 입은 30대 후반의 교통사고 환자가 이미 흉부외과 교수와 외과 교수에 의해 전신마취 수술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에게 연락한 이유는 안면부에서의 끊임없는 출혈 때문이었다. 상악골이 분리된 상태로 구강과 코에서 출혈이 지속되고 있었다. 신속히 스크럽을 진행하고 출혈을 막기 위해 수술에 동참했다.

 

수혈이 지속되고 있었지만, 그대로 밖으로 나오는 것 같았다. 석션의 속도가 출혈의 속도를 쫓아가지 못했다. 어찌할 바를 모르며, 약 20~30분 정도 시간이 경과된 듯했다. 갑자기 아래쪽에서 수술을 하던 흉부외과 교수의 음성에 약간 정신이 돌아왔다. “양교수, 이제 그만하세요.” 그렇게 그날의 Table Death의 경험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사인이 안면부 외상만은 아니었으나, 수술 도중 환자의 죽음은 내 인생에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이제는 전공의도 옆에 있고, 주니어 교수도 있어 젊은 시절처럼 병원의 콜을 받고 나오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러나 그날의 기억은 죽음은 정말 찰나와도 같으며 누구에게나 아주 쉽게 올 수 있음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불확실한 세상의 여러 가지 중에 가장 확실한 명제는 “사람은 죽는다”는 것이다. 내 연구실에 들어가면 바로 정면에 “메멘토 모리”라는 글귀를 적어 놓았다. 고대 로마 시대, 원정에서 승리한 장군들이 개선 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고 한다. 이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며, 승리에 만족하지 말고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경고를 담고 있다. “메멘토 모리”는 우리에게 죽음을 기억하라는 경고이다. 성공과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갈망으로 삶을 허비하지 말고, 현재를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은 나의 노력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며, 수많은 도움과 행운들로 만들어진 것이고, 언제든 한 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는 것들임을 인식해야 한다.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을 때 인간의 이 원천적인 결말을 인식하면, 세상의 어려운 일들이 단순해진다.

 

하지만 “메멘토 모리”만을 맹목적으로 따른다면 우울하고 삶이 수동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 밑에 “나는 충분해”라는 문구를 더 적어 놓았다. 영국 심리치료사 마리사 피어는 인간에게 가장 해로운 영향을 끼친 것은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나는 충분해’라는 말은 인간에게 주어진 한정된 자원과 능력을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만족해야 함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며, 계획한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 수용과 자기 존중의 시작을 의미한다.

 

“메멘토 모리”와 “나는 충분해”를 삶을 살아가는데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잊지 않고 되풀이하고 있다. 너무 즐거워하지도, 어려워하지도, 힘들어하지도, 슬퍼하지도 않게 말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의료인들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죽음의 그늘 아래에서도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에게 충분한 존재임을 믿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매일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평정과 자신감을 줄 것이다. 나 자신의 업적과 능력을 과대평가하지 않으면서도,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는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고 스스로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다른 이들을, 특히 환자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치과의사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하면서도,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돌보는 것도 중요하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평정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죽는 그날까지….

양병은 한림대성심병원 구강악안면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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