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고도 염정소녀

2022.07.13 13:49:17

시론

차마고도에 다녀온 적이 있다. 오래전부터 태고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불교의 나라, 티벳 지역의 신비에 대해 막연한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TV에 방영된 티벳 지역의 차마고도 천연염정에 대한 시사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고산지대의 황톳물이 흐르는 란창강의 좌, 우편으로 빽빽이 형성된 염전의 모습과 거기서 소금을 일구는 티벳 소녀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수십만 년 전에 바다였다가 융기된 그곳은 지금도 지층 아래에서 지하수가 솟아나듯 소금물이 끊임없이 작은 샘을 이루며 흘러나오고 앞으로도 계속 흘러나올 거라고 한다. 옌징이라는 지명도 염정(소금우물)의 중국식 발음이다. 그 염정의 소금물을 담은 물통을 어깨에 메고 미끄러질 듯 좁은 밭둑길가의 염전에 쏟아 부어서 소금을 일구는 방식인데, 바닷가의 염전에서 백설 같은 소금을 캐듯, 천연염정에서 캐는 소금은 상염정(강 건너편)의 백염과 하염정에서의 황토색 소금물에서 정제해 깨끗한 창호지에 수를 놓은 도화처럼 맑은 도화염(홍염)을 수확한다. 두 손으로 소금을 움켜쥐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을 보고 눈물 글썽이며 동경한 적도 있었다. 태양, 바람, 여인들의 눈물과 땀으로 이뤄진 애환의 삶, “저 소녀를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라는 꿈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

 

그러던 차, 차마고도 여행제의를 하는 한 친구가 있어서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염정소녀를 만날 생각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가자 티벳으로!, 차마고도로!” 속으로 외치며 여행을 하게 되었다.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가 않다. 기회가 왔을 때, 마음먹었을 때 결행하는 거야. 뭉그적거리며 고민하다 놓치는 수없는 후회와 아쉬움,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고 시간을 내지 못해서임을 깨달았다. 얽매여 있는 삶에서 탈피하면 우리가 겪지 못한 끝없이 넓은 세상에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것은 여행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희열과 충만감이라 생각한다. 비록 관광위주의 일정이었지만 눈앞의 설경과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풍광들이 이전에 체험하지 못한 신선의 세계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만 했다. 이전의 다른 탐구가들도 그랬겠지만 계곡을 이루는 암벽사이에 드러난 지층의 색과 모양, 밀도 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순간순간들이 그냥 보고 지나기엔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마음 한켠으로 오랜 동안 동경해오던 티벳 소녀를 떠올리면서 지금쯤 그 소녀도 가정을 이뤄서 예쁜 딸을 낳았으면 부모가 그랬듯이 딸에게도 염전을 가르치며 염전소녀로 키우고 있겠지? 문명의 혜택을 누리기 힘든 인적 드문 그곳에서 자연인으로 살아가고 있겠지? 그렇게 사는 것이 오히려 문명세계에서 사는 것보다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고 나만의 상상의 나래를 폈다. 끝없는 인간의 탐욕에 만족을 모르고 서로 경쟁하듯 살아야 하고 오히려 잘사는 나라 사람들의 불만족지수가 더 높다고 하니 우리의 삶이 갈수록 삭막해지는 듯하다. 그 모든 것을 잠시라도 떨치고자 여행길에 오른 우리에게 히말라야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계곡 사이로 괴성을 지르며 굽이치는 장강의 저 물줄기가 꿈에 그리던 저 멀리 염정소녀가 살고 있는 곳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곁에서 호흡하는 숨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가까이 느껴졌다. 그 소녀가 일군 도화염을 조랑말에 실어 저 히말라야 산맥의 골짜기 길을 힘겹게 오르내리며 삶의 애환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을 소박하고 순수한 눈망울이 다시 떠오르곤 했다. 하지만 안타까운 현실은, 사람의 통행도 어렵고 기간도, 시기도, 일정을 잡기엔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웠다. 넓디넓은 중국대륙의 오지, 깊은 골짜기엔 아직도 문명의 간섭을 받지 않고 살아가는 민족도 많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너무나 많지만 현실적으로 여행하기엔 아직 원활하지가 않다. 언젠가 다시 찾아 볼 거라 기약하며 그때서야 내 큰 포부를 펼치리라 다짐하며 심호흡 한 번 하고 두 손 높이 치켜들고 팔을 뻗어 보았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는 우리, 늘상 갇혀만 살다가 뛰쳐나와 넓은 세상을 바라본다. 할 일이 아직도 많은 걸 깨닫는 오늘이 있음에 이 순간이 소중하고 살아 숨 쉬고 있음을 감사드린다.

 

차마고도 천년 염정(鹽井)

순결의 땅 티벳 차마고도 천 년을 이어온 염전. 소박한 꿈 갈망하며 어깨에 걸친 찰랑이는 염수통. 한줌의 소금을 위해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린다. 여인의 일로 전통이 되어 감내해야 하는 애환의 땅. 운명이라 여기며 받아들인 건들건들 외줄 나무계단을 오르내리며 천직이라 여기며 가족 부양만을 생각한다. 저미는 삶 쓸어 담을 때마다 피어오르는 옅은 미소. 눈물과 땀으로 일군 도화염. 무거워도 좋다 많을수록 고통은 저 멀리. 희망의 염전을 내려다본다.

 

평생 가족과 사회를 위한 사명감이라 자위하지만 좁은 울타리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나 자신이 자꾸만 작게만 느껴진다. 아직 할 일이 많고 시간이 자꾸 더 빨리 흘러만 간다. 새로운 꿈을 꾸며 가보지 않는 길을 걷기 위해 오늘도 명상을 하고 상상 속을 거닐기도 하며 닫혀 있는 문을 하나씩 하나씩 열어보고자 한다. 우선 창문을 열고 자연이 숨 쉬는 바깥 공기를 들이마신다. 창가의 나뭇잎, 망울 터뜨리는 백합과 교감해보면서...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광렬 이광렬치과의원 원장
Copyright @2013 치의신보 Corp. All rights reserved.



주소 서울시 성동구 광나루로 257(송정동) 대한치과의사협회 회관 3층 | 등록번호 : 서울,아52234 | 등록일자 : 2019.03.25 | 발행인 박태근 | 편집인 한진규 | 대표전화 02-2024-9200 FAX 02-468-4653 | 편집국 02-2024-9210 광고관리국 02-2024-9290 Copyright © 치의신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