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의 가족

2023.02.08 16:11:00

시론

아내가 새로 산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오늘 아내의 휴대폰을 신형으로 구매해 준 것은 근래에 필자가 지난 1년 중에 했던 일 중에 제일 잘한 일인 것 같다. 지문이나 사진 등록 과정이 새로운지 필자도 익숙하지 못한 분야를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한다. 지난 주말에는 오랜만에 여유가 생겨, 하루를 온전히 아내를 위해 보내기로 작정했었다. 얼마 전 아내에게 통화를 시도했는데 통화가 되지 않았다. 집에 와서 ‘이제는 남편 전화도 안 받느냐?’고 웃으며 물어보았더니, 아내는 당황하며 휴대폰을 확인하더니, 분명히 벨이 울리지 않았다고 하며 억울하다고 변명을 했다. 휴일 아침에 ‘아내가 남편보다 더 사랑’하는 트로트 가수 “임”모 가수의 노래를 10곡 정도 download하여 아내의 휴대폰에 넣어 주려고 노트북에 연결해 보니, 그간의 아내 휴대폰에 대한 오해가 다 풀어졌다. 아내의 휴대폰은 수년 전 모델로 Memory 용량이 작아 일단 프로그램 간 충돌이 예상되는 상황으로, 요즘 시대에 뒤떨어진(?) 사양을 갖고 있었다. 당장 나가자고 하여, 아내가 좋아하는 유명한 칼국수 집에 가서 점심도 사 주고, 돌아오는 길에 휴대폰 매장에 들러 아내 마음에 들만한 신형 휴대폰을 구매해 주었다.

 

12월이 되면 필자의 예방치과는 비교적 한가해진다. 계속관리 환자들도 12월 일정이 바빠서인지 다른 달로 예약 일정을 변경하기도 하고, 신환이 내원하는 비율도 줄어드는 것 같다. 그간 미루어 두었던 ‘가족’에 대한 진료를 해도 무난한 시기가 된다. 별로 환자가 오지 않는 월요일 오후에 아내를 불러 구강검사를 해보고 많이 당황하게 되었다. 수개월이 지난 듯한 임시충전재로 충전된 대구치가 임시충전재가 녹아나간 margin 부위를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언제인지도 모르게 결혼한 딸과 함께 온 아내를 함께 치료하다가 임시충전재로 충전하고 잊어버린 것 같다.

 

아내는 알게 모르게 항상 필자를 ‘인정’하고 ‘존경’까지 한다. ‘돈’과 무관하게 ‘학문’과 ‘예방치과 진료’에 매진할 수 있었던 추진력은 필자의 아내가 곁에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이런 아내에게 필자는 정말로 ‘게으른’ 남편, ‘무책임한’ 치과의사일 뿐이었다. 일주일을 ‘돈이 안 되는’ 예방치과 진료를 마치고, 별로 생산성도 높지 않은 ‘회의’라는 걸 마치고 돌아온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마음에서, 아내는 자신의 치아에 대한 ‘요구’는 생략하고 지내온 것이다. 당분간은 무조건 앞으로 2주에 한번씩 아내를 진료하기로 했다. 진료 후에는 다른 환자 진료 마칠 때까지 연구실에서 조금 기다리라고 하고, 함께 저녁 식사 후 집에 돌아오기로 했다. 치과대학 시절 실력도 뛰어나지 않은 필자에게 자신의 치아를 맡기며 진료받았던 아내였고, 그리 짧지 않았던 개원 기간동안 필자의 원장 직책 수행을 보필하면서, 필자와 고생을 함께 했고, 개원을 접으면서 필자의 공직 생활을 하는 것을 허락해 준 아내이기에, 지금에서야 필자로서는 그간의 누적된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개원하고 있던 시절, 필자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했던 고등학교, 대학교 선배인 “L” 선배가 미국에서의 2년이 넘는 ‘임플란트’수련을 마치고 귀국하여, 서울에서 개원한 이튿날 지병인 간암으로 쓰러져 하늘의 부름을 받고 돌아가셨다. 그 이후 필자는 ‘선배’들에게 많은 정을 주지 않는 버릇이 생긴 것 같다. 너무나 그 선배의 빈 자리가 크게 느껴져서인지도 모른다. 일에 바빠서라는 핑계로, 혹은 일부러 잊어버리려는 노력의 탓인지 모르게, L 선배의 기억을 가슴 한 편에 묻어두고 살고 있다가, 몇 년 전 고교, 대학 선배인 “Y”치과 원장님이 동창회 톡에 글을 올리셨는데, 그 내용을 확인하고 나서 하루종일 가슴이 먹먹했고, 눈물이 나는 걸 참지 못했다.

 

돌아가신 L 선배의 딸이, 부친의 선배인 “Y”치과에 찾아가 정기적으로 구강진료를 받다가, “Y”치과 원장님으로부터 구치부에 있는 레진충전물을 제거하고, 새로 충전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선배의 따님은 그 충전물 하나만 그냥 남겨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Y”치과 원장님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가신 부친이 치료해 준 흔적의 마지막 남은 부분이라 본인이 평생 간직하고 싶다고 말해, 진료실의 모두를 숙연하게 하였다고 하고, 결국 레진 충전물의 일부를 남기고 나머지 문제 되는 부분을 충전하셨다고 하며, 진료 후 “Y”치과 원장님의 마음도 먹먹하셨는지 동창회 톡에 글을 올리셨다고 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던 ‘L’ 선배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선배님의 가르침과 홀로 남은 형수님의 훈육이 따님을 잘 성장시키셨다고 생각이 들면서, 후배인 필자가 L 선배 생전에 받았던 ‘사랑’을 생각하면서, 종일 먹먹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우리 치과의사들은 ‘가족 사진’이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흔적은 우리 가족의 구강 내에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기 때문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영수 고대구로병원 치과 예방치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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