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따뜻한 지역에 머물던 철새가 시베리아로 날아가기 전
중간 기착지로 선택하는 곳이 한반도입니다.
그중 가창오리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개체의 95% 정도가
우리나라에서 월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낮 동안에는 천적을 피해서 너른 강 가운데에 무리를 지어 쉬다가,
밤이 되면 먹이활동을 위해 떼 지어 근처 낱알 등 모이가 많은 곳으로 이동을 합니다.
그래서 월동하는 곳 근처에는 너른 평야가 있어야 합니다.
시베리아 지역은 너무 넓어서 가창오리가 무리지어 있는 것을 보기 힘들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몇 십만 마리가 함께 모여 겨울을 보냅니다.
낮 동안에는 소규모의 가창오리들이 척후병으로 먹을거리를 찾아 주변을 살핍니다.
석양 무렵에는 그 많은 새떼가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장관을 보여줍니다.
대장 새를 따라 이리저리 날면서 만들어내는 각종 형상들이 또 기막히게 멋집니다.
사진가들은 가창오리 군무를 담기 위해 시즌이 되면 서식지로 달려갑니다.
군무는 대개 해가 진 후에 시작하기 때문에,
석양 노을이 약간 남아있는 짧은 시간동안만 가능해서 또렷하게 촬영하기가 쉽지 않고,
어떤 때는 군무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훌쩍 떠나버리는 경우도 많아서,
가창오리의 군무는 운이 좋아야 보고 담을 수 있습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처음 가창오리 출사를 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맑은 하늘에 갑자기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과 귀가 멍할 정도의 쉼 없는 소리들에 얼어붙어,
한동안 카메라 셔터를 제대로 누르지 못했던 기억.
머리 위 하늘을 온통 까만 점으로 채우며 이리저리 춤을 추던 모습은
지금도 전율을 느낄 만큼 압도적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가창오리 한 마리 한 마리로는 힘센 천적에 대적하기 힘들고,
먹이활동도 수월하지 않게 되어 생존을 보장받기 힘듭니다.
공동체가 되어 하나로 뭉쳤을 때에만
발휘하는 힘의 크기는 어마어마하여 감히 위협해올 존재가 없으며,
따라서 그들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무리를 만들고 함께 춤을 추며 그 세를 과시합니다.
한진규
치협 공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