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야간진료

2024.05.22 16:44:02

스펙트럼

저는 첫 개원부터 지금까지 야간진료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야간진료가 필요할 만큼 환자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야간진료 시간이 아니면 내원하기 어려운 환자분들이 계셔서 진료팀 절반을 퇴근시키고, 남은 인원과 함께 야간 진료에 임하고 있습니다.

 

2008년, 개원 초년차 시절, 두 명의 치과위생사를 고용해서 치과를 운영했던 때가 생각이 납니다. 그 당시에는 치과들이 대부분 주6일 근무제를 적용했습니다. 치과위생사를 한 명만 고용하든, 두 명을 고용하든, 세 명을 고용하든 주6일 모든 날 동안 인원의 증감 없이 꾸준히 함께 일할 수가 있었습니다. 평일 진료 시간을 아침 9시반부터 저녁 7시로, 야간진료는 저녁 9시까지로 세팅했었는데 군말 없이 늦게까지 기다리다 퇴근했던 치과위생사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야간진료 시간이 되면 창 밖으로 보이는 저녁 풍경의 운치, 낮 동안의 열기가 식어진 진료실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체어 세 개만으로 개원했던, 첫 개원지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환자도 많지 않고 어시스트 할 직원도 많지 않으니 낮의 진료보다 더 꼼꼼하게 진료가 이루어집니다. 평소에는 직원에게 넘기던 일도 제가 마무리를 하곤 합니다. 그렇게 야간진료 시간이 끝나면 도시의 밤을 즐기는 사람들, 차가운 밤공기를 마주하며 퇴근을 합니다.


여담이지만, 그러고 보면 치과가 꼭 커야 할 이유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치과가 작아도 전신마취가 필요한 진료가 아니라면 대부분 이루어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되돌아보면 치과가 지금보다 작을 때 진료를 더 잘 했던 것 같습니다. 하루 평균 내원 환자 수도 지금보다 적었고 직원 수도 적었기 때문에 원장인 제가 환자와 접촉하고 대화하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가끔 진료 과정을 DSLR로 찍어 정리해놓은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보며 그 시절에 ‘이런 큰 케이스를 어떻게 했을까’ 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도 야간진료를 하며 체어 세 개짜리 치과의 원장처럼 되어봅니다. 세계적인 대가들이 한 두 개의 체어만 놓고 월드클래스의 진료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봅니다. 환자분들의 큰 치과 선호 경향, 직원 수가 적어서 겪게 되는 어려움 등을 생각하면 할 수 있는 만큼 치과의 크기를 조금씩 키워가는 것이 현실에 부합하는 일이지만, 피로에도 불구하고 야간진료 때 더 좋은 진료를 하는 것을 보면 치과의 크기를 키워가는 것이 능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야간진료를 하고, 일주일 중 가장 피곤한 얼굴로 퇴근하는 직원들을 배웅하고 원장실에 앉아 오늘의 예약표를 들여다봅니다. 벌이로 치면 직원들 야간 수당 주고 나면 남는 게 없을 때가 많지만 야간진료가 없으면 우리 치과에 다니실 수 없는 환자분들을 생각하며 야간진료를 계속 이어가 봅니다. 직원들의 급여가 오르면서 야간진료를 하는 것이 경영에 있어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늦은 저녁까지 진료 보조 업무를 하는 것이 직원들에게 부담인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치과위생사의 근무여건이 점점 더 좋아지다 보면 야간진료도 언젠가는 구시대의 유물처럼 사라져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힘을 내서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봅니다. 야간진료 시간이 조금은 지치는 시간일 수 있지만 사실 환자분들도 조금 지친 상태로 들어오시는 시간이기 때문에 늦은 저녁, 한적한 치과 공간에서, 조용히 흐르는 진료실 음악을 들으며, 차분한 심정 가운데 평소엔 좀처럼 찾지 못하던 환자분과의 접점을 만나기도 합니다. 저도 다른 병원의 야간진료를 이용하며 이 시간에 치료를 받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귀한 저녁 시간 환자분들께 내어주며 필요를 채워드리다 보면, 세계적인 대가는 아니어도 환자분의 마음을 알아주는 명의는 될 수 있지 않을까요.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곽재혁 좋은이웃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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