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와 동명이인이신 외과의사 선교사님과의 인연으로 올해도 작년에 이어서 아프리카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를 방문할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최빈국(GDP $900) 중 하나인 마다가스카르는 1960년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지만 아직 국제화를 경험하지 못해 대부분의 학문분야에서 크게 낙후 되어있는 상태이다. 작년 방문 때 우리나라로 하면 부산격인 제2도시 마장가에 위치한 하나뿐인 치과대학에서 강연을 하며 이곳 치과의 실상을 이해할 수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는 우리과 전공의들, 치과위생사와 함께 의료봉사를 다녀오게 되었다.
의료봉사지역은 수도인 안타나나리보에서 서북쪽으로 차로 6시간 떨어진 봉글라바라는 도시이고 이곳 병원과 선교사님과의 오랜 협력관계로 웰인터내셔날과 연세의료원 의료진으로 구성된 수술팀, 일반진료팀, 그리고 치과팀 약 35명이 방문하게 되었다.
치과의료 수준을 살펴보면 인구가 2500만 명이 넘는 이 나라에 치과대학은 한 곳뿐이고 매년 치과의사 졸업생이 20여명, 나라 전체의 치과의사 수도 800여명밖에 되질 않는다. 따라서 어디를 가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치과치료를 받기 힘든 상황이고 치과 수준 자체도 상당히 뒤쳐진 상태여서 인구의 대부분이 치과환자라는 말까지 나오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이기에 무료진료를 받기 위해 하루가 꼬박 걸려 걸어오고 전날 도착해서 병원 앞에서 잠을 자는 사람도 꽤 많이 목격되었다.
구강암이 구강저에서 시작되어 입안을 가득 메우고 골괴사가 일어나 얼굴에 구멍이 생긴 환자를 보고 이곳의 의료 실태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후진국에서 흔히 나타나는 잘못된 미신 때문에 치근단 농양으로 얼굴에 심한 부종이 있던 환자도 임신기간 동안 참다가 출산 후 찾아와서 농양을 빼고 발치한 경우도 있었다. 이미 진료를 받기 전에 아픈 치아가 한 두개가 아니어서 몇 개를 뽑아달라고 할 지 마음을 정하고 온 환자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었던 우리 봉사팀의 진료 의무는 한계를 넘어가게 되었다. 전기도 공급되지 않는 환경에서 발전기에 의존하여 매일 100여명의 환자를 봐야 했지만 모두 기쁜 마음으로 진료에 임했고 환자와 말이 원활하게 소통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최선으로 치료해 줄 때 서로간의 인류애를 느낄 수 있었다.
매일 아침 진료를 시작하기 전 병원 앞에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는 수백 명의 환자들에게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찬양을 현지어로 불러주며 다같이 두 손 들고 축복 해주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살아온 환경과 삶의 방식은 많이 달랐지만 그들도 우리가 흘러 보내려고 했던 그 사랑을 느꼈으리라 믿는다.
이번 의료봉사의 특이점은 KOICA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현지의사 10여명을 의료봉사지로 데리고 가 그들이 지방 요점지역으로 파송됐을 때 꼭 필요로 하는 탈장수술 등의 간단한 수술들을 직접 실습할 수 있게 해주면서 필수의료인력을 양성해 가는 부분이었다. 치과팀도 현지 치과의사와의 협진을 통해 얼마간의 의료기술의 전달이 있었지만 조직적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어서 아쉬웠다. 다음에 기회를 만들어 이곳 현지 치과의사들에 대한 필수적 치과술기에 대한 교육 및 실습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과 계획이다.
일정의 마지막 날 필자를 포함해 많은 수의 의료진이 탈진 상태로 힘들게 수도로 복귀 하였는데 모처럼 시간을 내어서 여우원숭이 등을 보기 위해 동물원을 찾았다. 선교팀원들은 언제 힘들었냐는 모습으로 밝게 웃으며 장난치고 농담하며 그 시간을 맘껏 즐길 수 있었고 모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감사한 회복과 교제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안타나나리보 시내 고급식당을 찾은 우리는 프랑스식 요리를 맛볼 수 있었는데 어디를 가나 좋은 호텔이나 식당은 모두 백인들로 가득했고 길을 나오면 넘쳐나는 구걸을 하는 현지 어린이들의 모습에 식민지의 잔재가 아직 이 나라를 힘들게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누구나 할 수 있었고 모두가 이 나라의 국민들이 이 나라의 모든 것들을 누리는 진정한 주인이 되는 날이 오길 기원하게 되었다. 사역을 잘 마치고 떠나지만 수술 및 치료받은 많은 환자들의 회복을 하나님께 맡겨 드리고 이 나라의 발전을 기원하며 다음 방문을 기약하며 귀국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