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망의 대상이 되고있는 다른 어떤 전문직에 비교해도 유례가 없을 만큼 오랜 세월이
요구되는 수학과정과 어렵고도 엄격한 학업에 응할 수 있는 우수한 두뇌,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경제적인 뒷받침까지 가능한 엘리트만이 의사가 될 수 있다.
의학을 전공하는 한 대학생의 고백을 들어보자. “저는 지금 모든 학습에 뒤떨어졌습니다.
따라갈 가망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유급이란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이 학생은,
그러나 실제로 다른 학생들보다 성적이 뒤떨어졌던 것은 아니었다.
유급이란 심오하고 방대한 양의 학업을 철저하고도 충실하게 수행시키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의사라면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만한 대학생활의 스트레스였다.
그러나 최근 의대생들뿐 아니라 전공의까지 자진유급이란 극한의 선택을 마다하지 않고
정부와 대립하게된 근원은 무엇인가?
실로 과거 오랜 세월동안 열악한 생활 환경으로부터 야기된 넘치는 의료 수요와 희소성에
의지한 의료인들은 특권 의식이란 헤게모니에 젖어, 안이하고 배타적이며 보수적인
이익집단을 이룸으로써 일반 사회와의 유기적인 협조와 타협에 등한했다.
한편 고가의 의료혜택으로부터 소원했던 서민들이 저렴하고 가까운 이웃 약국이나 효능이
불확실한 대체의학을 선호하게 되면서 의료와 투약의 본질을 혼동했으며, 그 틈새에서
과대광고와 덤핑이란 무기로 무장한 제약회사들만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러한 관행을 묻어둔 채 양질의 진료를 저렴하고 균등하게 제공한다는 기치아래 출범했던
의료보험은, 저수가 정책을 기본으로 채택함으로써 의료기관의 경영압박과 함께 전 의료계가
감시되고 통제되는 후유증을 낳았다.
그리고 준비가 부족했던 의약분업의 강행으로 인하여 의료기관에서만 처방전 발행이 충실히
이행되고 있을 뿐 일부 약국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임의조제, 대체조제, 끼워팔기 등이
만연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작할 때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나중엔 모조리 풀어야 한다.
이와 같이 의약분업에 연관된 문제점들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의료인력의 과잉배출,
의료시장의 과다경쟁, 의료인들을 기술인력 취급하는 관료주의적인 관행의 개선, 의보 수가의
현실화와 의료인에 대한 직업상의 재해보장 및 노후대책, 의료분쟁 조정법 등을
확립함으로써 안정되고 보람있는 진료권을 보장하고 장래의 비전과 직업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시켜 이들을 학업과 진료에 복귀토록 조치해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명심할 한가지는 ‘의료기관이란 최초로 호흡을 하고 일평생의 건강을
지켜주며 마지막 숨을 거두는 장소’ 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