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은 이정표, 세로로 주렁주렁 매달린 신호등, 정말 뚱뚱한 사람들, 모두가 영어로 말하는
것으로 난 이미 이국의 문화에 묻혀있는 듯 했다. 학교에서 제공한 아파트에 사시는
교수님집에 들어서자 역시 바닥은 모두 카펫이다. 거실과 주방이 있는 1층, 빛이 들어오는
지하, 침실과 욕실이 있는 2층, 우리나라 주택과는 다른, 보다 실용적인 것처럼 보이는 그
곳이 내가 이국만리에서 유일하게 편안한 잠을 청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내가 가져온 짐들
속에는 고춧가루 1년 분이 있었다. 그걸 받아들고 좋아하시는 사모님의 얼굴과는 비교가
안되게 담배를 가져온 나에게 가슴 밑바닥에서 나오는 미소를 주신 분은 교수님이었다 국산
담배 This 10보루... 빠듯한 생활을 하면서 1보루에 100달러나 하는 담배를 사서 피우는 일이
무척이나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기내식으로 속이 편치 않았던 나에게 모처럼 김치에 먹는
찌개 백반의 메뉴는 꿀맛이었다. 한국사람이 미국에 가면 평소 한국에서 먹는 김치량의 3배
정도를 먹는다며 고춧가루가 넉넉해진 것에 너무너무 행복해 하셨다. 이모저모로 로체스터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3500여명 학교 아파트 내에도 MBA과정의 한국사람들도 있었고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모양이다. 저녁먹고 잠시 농구를 하러 나온 사이 터키에서 온 MBA과정의
청년을 만났다. 제법 영어로 한참동안 얘기했는데 생각해보니 아주 짧은 대화외엔 나를
표현하거나 내 생각을 이야기하지 못한 단순한 내용의 영어였다. 미국에 처음와서
YES/NO하기도 힘들었다는 교수님의 말이 위안이 되기도 했지만...시차적응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난 단잠을 자고 말았다.
로체스터는 미국의 북부에 있어 캐나다와 호수를 사이에 둔 국경도시이기도 하다. 추석이
얼마남지 않은 때라 그곳은 무척이나 쌀쌀해야 했는데 내가 오고 나서 날씨가 너무 좋다며
교수님 가족과 2시간 반 거리의 버팔로 나들이를 나섰다. 세계 3대 폭포의 하나인
나이아가라 폭포! 우비를 입고 배로 폭포 바로 앞까지 가보고서야 천지연, 천제연 폭포가
얼마나 작은 폭포인지 알 수 있었다. 우비를 입고도 갑자기 내린 소나기를 맞은 듯 바지며
신발이 다 젖은 관광객들중에 유난히 인도사람들이 많음을 느꼈다. 장애인을 생각하는
편의시설뿐 아니라 주차라인의 넉넉함에서 부유하고 넉넉한 나라임을 느끼게 한다. 넓은
도로, 유료 고속도로 상하선 사이의 넓은 잔디밭과 숲...도심도로 및 국도와 고속도로를
관련된 숫자로 표시해 쉽게 지도를 보고 찾아가도록 만든 도로망... 추월선엔 항상 추월하는
차들만이 들어갔다 추월 후엔 다시 주행선을 지키는 모든 차량들... 운전자의 반 이상은
노령층인 것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강한 인상으로 자릴 잡는다.
연구소에서 만난 중국인 교수, 그리고 한국인 교수, 실험실을 열심히 드나드는
대학원생들에게 나는 철저히 방문객이었다. 친절한 인사와 반절은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로
버텨(?)가며 GENE을 연구하는 연구실에서 인터넷으로 국내 의료계 파업의 뉴스들을 보면서
연구소와 병원, 학교 구내서점들을 호기심을 가지고 돌아보았다. 병원장이 세미나 참석차
병원을 비워 인터뷰까지는 몇일의 여유(?)가 생겼다. 구내 치과대학중 구강생물학 연구소가
제법 모습을 갖춘 우리 모교의 실험실에 비하면 실험의 규모를 떠나 모든 실험장비들이
연구만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환경이라고 표현하는게 적절하겠다. 와보고 싶은 나라에서
살고 싶은 나라로 나는 맘을 바꾸고 있었다.
솔직한 나라, 적절한 친절과 개인의 생활을 침해하지 않는 배려가 전반에 걸쳐 깔려있는
나라, 같은 테이블에서 각자의 도시락을 먹으며 같은 Topic을 얘기하는 사람들... 정이 넘치는
그러나 사람들을 목적을 가지고 만나고 자신의 능력보다는 상대와의 친분으로 해결하려는
중개문화가 팽배한 우리나라에서만 살아온 나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닐 수 밖에 없었다.
병원장 인터뷰, 치과대학과 병원을 돌아본 일, 그 곳에서 만나 한국 치과의사들, 미국
수련의들, 근처의 호수에 있는 비치에서 먹었던 아이스크림, 인디언 마을을 개척하여 도시를
세운 기록 박물관, 스쿨버스 할머니 기사, 탁구를 쳤던 의대생들, 커피한잔을 사주신 지금은
국내 모 대학에 와 계실 박모 교수님, 노벨상에 빛나는 연구소에서 실험을 돕던 일, 교수님
가족과의 추석날 한국식당을 찾아간 일, 돌아오는 길의 뉴왁 국제공항, 공항에서 본
대한항공의 위상, 미국을 같이 떠나온 한국 관광객들, 비행기 안에서 만난 72년도에 노무자로
미국에 간 할아버지, 미국에서 접한 국내 소식의 시각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환전해간
달러를 도로 가져오게 만들었다. 검소하게 살면
관리자
Copyright @2013 치의신보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