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수필(782)>
나는 가짜 김영삼이다
김영삼(전북치대 예방치과학교실)

  • 등록 2000.11.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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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김영삼이다. 쭉 그랬었다. 가끔씩 친구들이 농담을 할 때 김영삼은 나쁜사람이라고 욕을 하며 놀리고는, 내가 화를 내면 진짜 김영삼한테 그랬다고 하곤 했다. 유치한 농담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그 사람이 진짜 김영삼이면 나는 가짜 김영삼인가? 아니 내가 가짜란 말인가? 물론 친구들이 단어를 잘못 선택한 거다. 대통령 김영삼이라든지, 나이든 김영삼이라든지 여러 가지로 다르게 표현했어야 했다. 이름이 김영삼이라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워서 좋지만, 정말 손해본 일이 너무 많다. 어느 집단에서건 조용히 있을 수가 없다. 나는 정읍에서 태어나서 전주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그 동안 너무도 힘들게 살았다. 예전에 나는 남들이 이름가지고 놀리면 ‘아마 당신은 전라도에서 김영삼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를 겁니다.’ 라고 대꾸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세월엔가 이젠 대한민국 어디가나 살기가 힘들게 되었다. 북한에도 못 간다. 어차피 전라도에서 ‘김영삼 치과’는 좀 힘들 것 같고 거제도에다 ‘멸치치과’나 차리려고 했는데.. 정말 그나마도 힘들게 되었다. 난 하여간 그 사람이 정말 싫다. 내 아이디는 항상 a18032 이다. 남들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a18 하고 032를 띄어서 읽으라고 한다. 학생들에게 내 이메일 주소를 적어 줄 때는 항상 하는 말이 있다. ‘특별히 적어두거나 외울 필요 없죠? 그냥 나 없을 때 쭉 하던 말이잖아!’ 라고.... 홈페이지 주소도 a18032.com 이다. 내 홈페이지엔 요즘 들어 김영삼이라는 이름을 찾다가 잘못 들어온 사람들이 많다. 자신도 김영삼이라고 밝히는 사람도 있었고, 연락 안되던 친구가 김영삼 홈페이지를 찾다가 들어와서 연락이 된 친구도 있다. 어떤 사람은 김영삼의 홈페이지가 너무 재밌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다가 잘못 왔다며, 김영삼이 찰리 채플린 다음으로 재미있는 사람이고 했다. 이제는 좀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날 처음 보는 사람들은 항상 놀린다. 이름 특이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예과시절에도 대리출석 한번 못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도 내 이름을 대출해주지는 않았다. 은행에서나 병원에 접수해놓고 나서 항상 카운터 옆에 붙어있다. 내 차례가 된 것 같으면 이름을 못 부르게 미리 저라고 이야기한다. 깜박 잊어서 간호원이나 은행원이 ‘김영삼씨!’ 라고 부르면 사람들이 누군가하고 한번씩 둘러본다. 그러면 난 남들처럼 ‘김영삼이가 누구야’ 하는 제스처를 하며 사람들의 시선이 제자리를 찾아갈 때쯤 해서 한 템포 늦춰 일어난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카운터에 다가선다. 가끔은 남들이 왜 이름을 김영삼이라고 지었냐고 물어본다. 우리 아버지가 혹시 김영삼을 좋아해서 그런 거냐고 묻는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김영삼을 정말 싫어하신다. 우리 아버지가 내 이름을 김영삼이라고 지은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나는 광산 김씨 37대 손으로 영자 돌림이다. 우리 아버지는 그냥 세 번째 났다고 영삼이라고 지으셨다. 첫째인 우리형은 쌀 2가마니를 주고 작명소에서 그럴싸하게 영서(永西)라고 이름을 지으셨다. 둘째인 우리누나에게는 쌀 2가마니는 너무 아까우셨는지 2000원 짜리 이름짓는 책을 하나 사셔서 지숙(智淑)이라고 전형적인 참한 여자이름을 지으셨다. 셋째가 나다. 이젠 이름짓는 것이 지겨우셨는지 그냥 세 번째 낳았으니까 영삼이라고 하셨다. 난 그래도 어렸을 때 내 이름이 김영삼인지 몰랐었다. 모두 ‘영샘이’라고 불렀다. 전라도에서 많이 발생하는 ‘ㅣ’모음 역행동화 현상이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들어갔더니 선생님이 나보고 ‘김영삼’이란다. 난 영샘인데. 학교에 처음간 날 돌아와서 내 이름이 정말 김영삼인지 할아버지에게 물으려고 할아버지를 찾았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날 먼저 보시고는 ‘영샘이 핵교 댕겨왔냐’ 라고 말씀하셨다. 난 할아버지에게 더 이상 물을 필요도 없이 내 이름은 ‘영샘이’임을 확신했다. 나중에 ‘핵교’가 아니라 ‘학교’이고 ‘댕기다’가 아니라 ‘다니다’라는 표현이 표준말임을 알아가면서 나의 의문은 풀려갔다. 이제 차라리 ‘영샘이’라는 이름으로 바꿀까보다. 내 이름 이야기를 하다보면 한도 끝도 없으니 여기서 그만둔다. 기회가 되는 사람은 내 홈페이지에 와봤으면 좋겠다. 특별히 적지도 외우지도 않아도 되는 주소니까.....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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