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교수님은 별로 쓰실 일도 없으시잖아요.
그러니 외모나 점잖게 잘 가꾸시는게...
외모냐 기능이냐,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우리가 살다보면 선택을 결심해야 할 일이 많다. 선택에는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고, 판단에는
자신이 쌓아올린 지식과 겪어온 경험 그리고 무언지 모르게 이끌리는 감정이 바탕이 되어서
마음을 정하게 된다.
순간의 선택이 때로는 평생을 후회하게 하거나 행복하게 하기도 하므로 우리는 선택을 할 때
신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하거나, 또는 자신이 선택되었다는 것은 대체로 좋은 것, 기쁜
것 그리고 무엇을 얻게 되었다는 만족일 수 있겠으나, 반대로 생각하면 선택한 것 이외에는
다른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뜻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자신이 치과의사가 되었다고 주위에서 축하해 준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수많은 좋은 직업을
다 포기한 것이고, 좋은 배필을 한사람 얻었다면, 이 세상의 자신의 배필 후보로 찍을 수
있는 수많은 이성을 포기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릴 때 가졌던 꿈을 이룩해 나가는 것이 인생의 삶이라면, 이룩한 것 이외에는 점차 포기해
나가는 것 또한 인생이라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 선택의 만족과 함께 포기의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얼마 전에 어느 대학원생이 이상한 약을 하나 선물로 가져왔다. 나의 뒷머리가 자꾸
빠져나가는 걸 내가 안타까워함이 안쓰러웠던지 신종 개발된 발모제라고 했다. 자기 동생이
약사인데 의약분업 실시 직전에 얼른 부탁해서 두 달치 용량을 빼내온 것인데 한 두 달 매일
복용하면 솜털부터 나온다고 자신한다.
그런데 이 약은 본래 전립선 비대를 막아주는 치료제로 개발된 것인데 부작용으로 몸에 털이
나고 머리에도 털이 나와서 이제는 아예 발모제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니
사람에 따라서는 전립선 기능이 저하되고 때에 따라서는 성기능 약화도 초래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까지 더 덧붙였다.
마누라가 들었으면 펄쩍 뛸 말인데도 그 친구는 태연스럽게 말한다. "이제 교수님은 별로
쓰실 일도 없으시잖아요. 그러니 외모나 점잖게 잘 가꾸시는게..."
외모냐 기능이냐,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혼자 결정하기에는 너무 답답하여 주위 의국원들과 치위생사들에게 하나씩 의견을
들어보았다. 너라면, 너의 애인이라면 어떤걸 택하겠느냐고, 그랬더니 대체로 젊은 층은
기능을 선택하였고, 장년기 이후 층은 외모를 선택한다.
몇 일을 고민하다가 결국 나도 복용하기로 했다. 그동안 수종의 바르는 약을 써보았지만
머리카락은 안 나고 손가락에만 털이 나는 것 같아 중단한 경험이 있는 터라 이번에는 먹는
약의 약효를 위한 인체 실험의 대상으로 자원하게 된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충치예방으로 평생을 바칠 것이 아니라 탈모예방 연구로 진작에
선택하였으면 지금쯤은 아마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인류에게 기쁨을 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인생의 후회가 되기도 했다.
약의 복용이 끝날 무렵으로 그 친구의 학위논문심사 날짜를 일단 정해놓고 오늘도 한 알씩
먹어본다. 불현듯 이러다가 머리카락도 나지 않고 기능만 저하된다면 어떡하나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나의 선택이 올바르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그 친구가 무사히 박사학위를 받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