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time~ 기억, 삶의 데자뷰~

  • 등록 2014.11.14 11:5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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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Essay 제1979번째

집근처에 오랜 친구가 산다. 흔히 말하는 베프. 이 친구가 아들, 딸 둘인데 우리 애들과 학년, 그리고 터울도 똑같다. 근데 애들이 먼저 얼굴을 서로 텄다, 학원에서.

물론 그전에 가족모임을 여러 번 해서 서로 얼굴을 알고 지내던 사이였지만, 본격적으로 같은 학원에 다니면서 아빠들만큼 서로 친해졌다. 학원이란 게 워낙 늦게 마쳐 평일에는 보통 아빠들이 데리러 가지만 평소 공사다망한(?) 본인의 스케줄로 친구가 대부분 애들을 데리러 갔다.

어느날 친구와 둘이서 술 한 잔 하는 중에 친구가 “재호야, 너무 신기하다. 어제 원우랑 건희(친구아들)랑 학원 끝나고 배고프다고 편의점에 데리고 가서 애들 사주고 난 밖에서 기다리는데, 둘이서 희희낙락 만두에 오뎅에 김밥을 앞에 두고 그리 즐겁게 먹는 모습이 마치 수십년 전 우리가 신촌의 어느 편의점에서 시험기간에 잠깐 나와 야식 먹는 모습과 너무도 똑같더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기억의 데자뷰, 대물림.

거창하게 이야기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래, 지 아들, 내 아들인데, 둘 사이 하는 행동과 맘이 많이 닮았겠지’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 켠 어쩌면 한 가족 내에서도 시간의 역사는 항상 되풀이 되고, 어느새 우리가 잊고 지냈던 기억 저편, 한 켠의 추억은 어느 순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바로 우리 주위에서 되풀이 되곤한다.

첫 번째 사진은 내가 갓 돌을 앞둘 때의 가족사진이다. 물론 천사 같은 어린아이가 본인이다. 저때가 1970년. 위로 누나, 형이 있고 막내로 태어나 온갖 사랑과 구박(?)을 다 받고 컸다. 우리 아버님이 저때 30대 중반, 우리 어머니가 20대 후반이었으니 두 분 얼마나 혈기왕성하고 꿈 많은 젊은 시절이었겠나(어렸을때 밥 달라고 칭얼댄 기억이 없는 너무나 순한 애기였다.)

두 번째 사진은 두 분의 결혼 46주년 리마인드 웨딩 사진이다. 아버님 희수에 어머님 고희 잔치를 같이 준비하던 차에 막내아들의 강력한 요구로 리마인드 웨딩 사진을 강행했다. 벌써 5년 전의 일이지만, 너무 잘한 일 같다. 지금도 가끔 이사진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세 번째 사진은 그때 찍은 우리 가족 전체사진이다(필자는 아랫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형이 오래전 캐나다로 이민을 가셔서 가족 모두가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정말 힘들어 이때다 싶어 다들 꽃단장 하고 3대가 한자리에서 기억될만한 작품을 만들었다. 46년 전 시작된 선남선녀의 만남, 결혼이 이제 3대, 14명의 대가족을 이루었다(3대중엔 손녀가 한명도 없다. ㅠㅠ)

물론 이 사진도 5년 전으로 지금 현재 그 3대째 사내애들 6명은 어느새 청년이 다들 되었다. 이젠 힘으로는 정말 못 당한다.

어릴 적 막내라 유난히 부모님의 모임, 행사에 많이 따라다녔다. 가서는 남진의 ‘저 푸른 초원위에’ 노래를 신명나게 부르고 어른들께 용돈을 꽤나 탔던 기억이 많다.

그 당시 아버지의 뒷모습은 태산보다 넓어 보였다. 막내아들의 조막손을 꽉 진 채 데리고 다니실 때면 ‘우리 아버지는 평소 산삼을 드시는구나, 뭔 힘이 이리 세셔’하는 생각을 늘 하곤 했다.

그러셨던 양반이 작년 평생 남들만 치료하는 의사였지, 본인은 감기로 주사한대 맞지 않으셨던 분이 심하게 아프셨다. 5개월 간의 입원생활에 대수술 2번, 의사의 직업병인 단순 허리 디스크로만 여기시고 가족 몰래 후배 병원에서 주사만 1년 넘게 맞으시다가 척추 깊은 곳에 고름이 생겨 감염된 것이다. 보통 척추감염은 신경외과, 정형외과 의사도 평생에 몇 번 보기 힘든 희귀 케이스라고 한다. 담당의사 말로는 조금만 시기가 늦었다면 하반신 마비까지 올 수도 있었다고 하니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하느님께 감사할 뿐이다. 자주 아픈 사람이야 주변에서 그러려니 하지만 평생 무쇠인줄 알았던 양반이 힘없이 침대 병상에 누워계시는 모습을 뵈니 정말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다행히 지금은 약간의 거동만 불편하시고, 의지가 워낙 강하신 분이라 열심히 재활하시고 걷고 잘 드셔서 많이 좋아지셨다. 이 자리를 빌려 걱정해주셨던 많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지난 3·1절 연휴 때 어머님 생신과 아버님 얼굴 뵈러 홀로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이젠 애들이 커서 그놈의 학원 때문에 어디 1박2일 여행은 꿈도 못꾼다(이놈의 대한민국 교육…).
그렇게 나오시지 말라고 얘기했는데도 어머니가 한손에 지팡이를 들고 힘겨운 걸음을 하시는 아버지를 부축하셔서 서울에서 내려오는 낼 모레면 쉰을 바라보는 막내아들을 마중 나와 계신다. 5개월 서울에서 투병생활 하시고 부산으로 다시 내려가신지 3주가 채 안됐는데 얼굴은 많이 좋아보이셔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집으로 오는 길에 아버지가 지난 반평생 한자리에서 진료하셨던 병원에 잠깐 들렀다. 정진문 외과. 당신께서는 회복되시고 나셔서 다시 환자를 보시길 원하셨으나 주변과 가족의 설득 아닌 설득으로 이번에 폐원신고 하셨다.

아버지의 땀과 눈물과 노력, 희망과 고민과 애환이 오롯이 배어있는 아버지의 삶의 역사적 현장.

보는 아들도 마음이 너무 짠한데 정작 당신께서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계실까 생각하니 다시금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당신들 얘기는 안하신다. 오로지 손자들 학교성적, 입학, 또 더 나아가 못 보실지도 모르는 손자들의 미래 얘기까지.

말이 아들이 생신 축하드리러 간 것이지 노모가 해주는 따신 밥에 잠만 실컷 자고 올라왔다. 그래도 막내가 내려와서 두 분이 많이 좋아하시는(물론 전적으로 내 생각이지만) 모습을 뵈니 더 시간 될 때마다 자주 뵙고 연락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물론 이 생각도 잠깐이겠지만)

다음날 역시나 운동 삼아 막내 배웅해주신다고 굳이 역까지 나오신다. 26년 전 서울로 대학 보낼 때 그때 그 모습으로. 그러나 이제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그 시절 서울로 가는 막내아들이 염려되어 손을 흔들던 두 분의 모습에서 이젠 두 분만 남겨두고 서울로 가야하는 염려와 걱정을 뒤로하고 어쩔 수 없이 가야하는 아들의 모습으로.

우리는 흔히들 얘기한다. 과거 없는 현재 없고, 현재 없는 미래란 없다고. 우리가 누리는 이 현재는 그 언젠가 미래의 우리를 위해 헌신하셨던 우리 부모님들의 미래였고, 우리가 아등바등 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아직 살아야하는 지금 이 순간은 우리 아이들이 과거라고 후에 치부될지도 모르지만 우리 사랑하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시간이라고. 그래서 한 가족의 시간의 역사도 되풀이되고, 또 되풀이되고, 우리 아들, 또 아들의 아들까지.
또 다시 수십년이 흐른 후 지금 아버지의 자리에 내가, 지금 내 자리에 우리 아이가 서 있을 것이다. 그때 지금 당신의 아픔은 잠시고, 아들을 향한 그 사랑은 변치 않으시는 우리 부모님의 모습으로 나 자신도 서 있길 간절히 기원한다.

이번에 아버지 퇴원기념으로 누님이 스마트폰을 사다 드렸다. 그런데 처음에는 적응하시더니 도통 카톡에 답장이 없으셨다. 노인한테는 아무래도 무리였나?

부산에 가서 1박 2일 한 일이라곤 열심히 두 분께 카톡 사용법을 강의하고 실전연습에 또 연습 해드렸다. 다행히 이젠 그 누구보다 카톡을 바로바로 확인하시고 문자까지 보내주신다. 이 또한 너무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좋은 글과 동영상이 있으면 바로바로 보내드릴 생각이다.

이젠 SNS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살아계시고 숨 쉬는 그 순간까지 두 분과의 기억, 추억을 공유할 것이다. 시간은 언제나 되돌아 반복된다. 우리 작은 가족관계에서도.
아픈, 슬픈 기억보다는 우리 마음 한 편 가슴 아려오는 행복했던 기억의 습작을 항상 그려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사랑하는 모두에게…. 

정재호 크리덴트치과의원 원장

정재호 크리덴트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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