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oth-on-a-Chip을 향해서(Time Maketh Me 시간이 나를 만든다)

  • 등록 2015.06.23 11:5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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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Essay-제2038번째

치과대학에 진학하기 전 나는 도전적으로 나노바이오멤스라는 연구실에서 랩온어칩 (lab-on-a-chip)을 연구했었다. 랩온어칩 또는 uTAS(Micro Total Analysis System)는 미세유동 (microfluidics)에 기반을 두어 만들어진 소형기기를 일컫는다. 이것은 말 그대로 연구실을 작은 칩에 올려놓은 것과 같아서 칩 위에서 액체 샘플 등을 분석하는 분야로 생물학, 의학, 치의학, 법의학 등 그 활용분야도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나는 현장에서 병원균 검출이 가능한 소자를 만드는 데 매진하였다.

Pre-dentistry를 마치고 바로 치대에 지원하지 않은 이유는 이런 엔지니어 쪽의 리서치 분야가 치과의사가 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고, 또한 20대 초반에는 급할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다. 그때만 해도 용기와 패기가 충만하던 시기였던 것… 당시 H1N1 influenza와 광우병이 사회적 이슈였기 때문에 나도 병원균 검출이 가능한 랩온어칩을 만들어 치대에 진학하면 임상적용 가능한 연구에 이바지 하고 싶었다. 그것은 아무것도 모르기에 가질 수 있는(?) 거창한 꿈같은 것이었다. 언젠가 미래에 치과의사가 되면 랩온어칩에서 발전한 나만의 “tooth-on-a-chip”(*body-on-a-chip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보고 본인이 지은 단어)을 개발하겠다는 다짐도 했었다.

하지만 상상했던 것과 달리 연구실 생활이란 것은 녹록지가 않았다. 어두운 클린룸 안에서 더운 방진복을 입고 벌이는 전쟁… 하루 종일 칩 제작을 반복해도 새벽을 맞이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그렇게 얻은 얇은 칩 사이 본딩이 순식간에 깨지고, 마지막으로 검출한 박테리아의 농도가 맞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분노와 좌절만이 반복되었다.

결국 꿈은 온데간데없고 ‘과연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커져만 갔다. 내 자신의 선택에 대한 의문부호와 불안감이 교차하며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내가 만든 랩온어칩, Analytical Chemistry, 2012, 84:4928?4934)
‘Good things take time’이란 뜻은 졸업하면서야 깨달은 것 같다. 입학한 지 꼬박 2년을 다 채우던 달에 가까스로 쓴 논문을 투고하고 편찬이 돼서야 결실을 위해서는 꾸준한 시간이란 재료가 필요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성취의 기쁨도 잠시, 같은 해 치대에 입학해 보니 이제까지의 경험들이 왁스업, 조직학, 와이어링, 기공, 치아프렙에등 치과의사란 직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또다시 절망하고 말았다. 오히려 하루라도 빨리 치과대학에 들어오지 않고 시간을 낭비했다는 자책에 휩싸이고 말았던 것. 그때는 인터스텔라처럼 블랙홀 속 5차원 세계에서 당시 연구실에 서있는 나에게 갈 수만 있다면 책장을 두드려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Q-U-I-T!

그러던 어느 날 미국립아카데미 회보에 실린 한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다. 스타트랙이라는 유명한 미국 SF영화에는 메코이 박사의 트리코더라는 외계인 질병을 감별하는 소형 진단기기가 등장하는데 이 트리코더가 실제 상용화가 된다면 가장 먼저 사용하게 될 직업군은 치과의사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는 것이다. 오래전 마음속에 접어놓고 소심하게 포기했던 생각들이 다시 솟구쳤다. 내가 예전에 꿈꾸던 “tooth-on-a-chip”을 만들어서 타액 샘플로 체어사이드에서 환자들의 전신질환 검진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처럼 메르스(MERS)라는 무서운 바이러스가 국가 전체를 뒤흔들 때 더욱 치의학에 필요한 생각이라고 느껴졌다.

배우고 경험한 것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곳은 매우 한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공들여 고민하고 연구한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나의 기억과 몸속에 고스란히 남아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치대 진학 이후 방학 때마다 동남아 의료봉사에 참여할 용기를 낸 것도, 아직도 잘 하지는 못하지만 조금이라도 연구에 흥미를 가지고 학생 연구팀에 참가한 것도 모두 그 때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한 선택들이다. 지금의 나는 완전하지 않다. 여전히 미숙한 면이 있고,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자기 확신이 결여된 순간들을 맞이하기도 한다. 수많은 경험과 시행착오가 축적되어 얻어진 결론은 결국 현재를 열심히 사는 것, 그것이 미래를 풍요롭게 사는 핵심이 아닐까 싶다.
결국 “tooth-on-a-chip”이 의미 그대로 당장 만들어질 순 없을 것이다. 허나 그 꿈을 꾸며 노력한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여러 가지 형태로 성취감을 생성시키고, 성장해 가는 느낌을 주며 나의 직업적인 정신을 깊게 만들어 주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공간을 초월한 미래의 내가 책장 너머에서 나를 보고 있다면 ‘Quit’이 아닌 ‘Keep-It-Up’ 이라고, “포기하지 말고 계속 열심히 해!”라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도록 매일을 열정으로 가득 채울 것이다.
 이찬주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3학년

이찬주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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