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무문

  • 등록 2016.02.12 13:2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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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트럼

‘명량’이라는 영화를 보셨는지? 왜나라에서 물살이 쎈 쿠루지마 해협에서 주로 해적질을 하던 쿠루지마를 섭외하여 명량으로 출전하던 토도 다카도라의 배의 깃발에 씌여져 있던 네 글자가 있었으니 바로 ‘대도무문’(大道無門)이다.

정유재란에 다시 부산포에 쳐들어와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을 크게 쳐 부순 후 이제는 330척의 배를 가지고 서해 쪽으로 마치 문, 즉 가로막는 적이 없는 것처럼 빠르게 북상해 육군과 연합해 조선과 명나라를 멋지게 쳐부수겠다는 의지를 네 글자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영화라서 왜나라 무인의 무식함을 은근히 비웃기 위한 설정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토도가 정말 그랬다면 원래 뜻을 몰랐거나 아니면 일부러 무시한 것이 되어 버리는 것으로, 나름 대단한 호연지기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대도라는 것은 쳐들어 올 명분이 없는 전쟁을 시작하여 수많은 양민을 학살하는 것이고 무문이라는 것은 조선의 해군은 마치 문이 없는 것처럼 뚫릴 것이라는 뜻이니 이 얼마나 아전인수 격의 이치에 맞지 않는 해석인가?

얼마 전 돌아가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좌우명이 ‘대도무문’이라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이 말을 바른 도리에는 거칠 것이 없다, 즉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정도(正道)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뜻으로, 누구나 그 길을 걸으면 숨기거나 잔재주를 부릴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 말을 치과의사의 입장에서 성찰해 보았다. 환자를 치료할 때 치료의 정도를 지키고 있다면 말 그대로 숨기거나 잔재주를 부릴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내가 환자에게 혹 숨기는 내용이 있고 떳떳하지 못하다면 그건 내가 치료의 정도를 가고 있지 않다는 것으로 깨닫고 돌이켜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내가 치료의 어려운 국면에 부딪혀 잔재주를 부리고 있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정도를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의 경험에 따르면 정진 뿐 이라고 생각한다. 치과의사도 사람이기에 100% 치료에 성공할 수는 없다는 한계가 있으므로 모자라는 부분을 배우고 그 배운 내용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분석하여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계속 익혀나간다면 점점 정도에 가까워지리라 생각된다.

임상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마무리하고 나왔을 때, 환자의 어려움이 해결된 때 경제논리를 초월하는 기쁨을 누리는 순간이 있다. 이러한 기쁨의 기억들이 치료에 있어 좌절의 순간들을 극복하고 오롯한 치과의사를 빚어내는 게 아닐까?

한편 이 말은 원래 송나라 때 선승 혜개의 말을 그 제자가 쓴 책인 ‘무문관’에 나오는 구절이다. 수행의 이치를 화두로 담은 이 책에는 ‘대도에는 문이 없으나 갈래 길이 천이로다 이 빗장을 뚫고 나가면 하늘과 땅을 홀로 걸으리’ 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에서 차용한 문구로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도(道)라는 것은 우리의 감각, 감정과 생각을 넘어서는 것으로서 우주의 운행 원리 비슷한 것이라고 한다. 노자의 도덕경에 이 도를 깊이 사유하여 깨닫고 이것이다 하고 생각하는 순간 그 도는 도가 아닌 것으로 변화된다고, 그러므로 규정지을 수가 없는 것이 도라고 한 것을 배운 적이 있다.

예를 들어 보면 도라는 것은 그릇이 움푹 패여 있어 물을 담을 수 있는 원리나 바퀴의 살이 꽃힐 공간이 있을 때 거기에 바퀴살을 꽃아 차가 굴러가게 할 수 있는 원리 쯤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도가 바로 그 것이라고 규정짓는 순간 그 것은 도의 일부분만을 말하는 것으로서 도의 본질은 될 수 없다는 기묘한 말이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큰 도에 문이 있다는 자체가 더 이상할 수도 있겠다.

또한 ‘대도에는 문이 없으나 갈래 길이 천이로다’라는 구절을 생각해 본다면 ‘천’이라는 숫자는 많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큰 도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 찾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것을 또 치과에 대입해 보면 대도라는 것은 환자를 가장 잘 치료할 수 있는 원리라고 생각하고 갈래 길이 찾기 어렵다는 것은 치과 특성상 있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치료방법을 골라 환자에게 가장 알맞은 치료계획을 세우기가 어렵다는 의미가 된다. 손기술은 치과의사의 중요한 덕목이나 그만큼 중요한 것은 의사의 본분인 making decision임을 생각할 때 좀 더 진단과 치료계획에 중점을 둔 진료를 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정말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이 배움의 길이요, 항상 배움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치과의사가 됨이 참으로 감사하다.

예전에 길을 가다가 ‘도를 아십니까?’ 붙잡는 사람에게 ‘보험 하나 드실래요?’라고 말하면 그 자리에서 해결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그런데 새삼 내가 죽어서 돌아갈 우주와 그 운행의 섭리에 대해 관심이 가는 건 아마 시간의 흐름 덕분이 아닐까?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안나 서울 로고스치과의원 원장

이안나 서울 로고스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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