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20년만에 여자 동창을 만났을 때. 바라다 본 그녀의 얼굴에 지울 수 없는 중년의 흔적이 각인 되어 있을 때. 그 ‘세월의 덧없음’이 결국 자신에게로 향할 때.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 글은 독일 출생의 수필가 안톤 시나크(Anton Schnack, 1892-1961)의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첫 문장이다. 중학교 때 교과서에서 읽었던 이 글은 어릴 적보다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며 중년이 되어 가는 나이에 읽으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몇 해고 몇 해고 지난 후,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가 발견될 때, 그곳에 씌었으되,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의 그런 행동이 내게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가져오게 했는지...” 대체 내 그러한 행동이란 무엇이었던가? 어떤 거짓말? 아니면 또 다른 내 어리석은 처신? 이제는 그 많은 잘못들을 기억 속에서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때문에 애를 태우신 것이다.
그의 이력을 읽다가 생존 연도의 표시를 보니 (1892-1961)로 써 있는 것을 본다. 그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에 돌아가신 것이다. 그 사실이 더 우리를 슬프게 한다.
디즈니 만화 ‘라이온 킹’의 인상적인 주제가에 실린 ‘The circle of life’를 실감한다. 다음의 글은 어떤가.
옛친구를 만날 때... 공동 묘지를 지나갈 때. 거기서 문득 ‘여기 열 다섯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난 소녀 클라라는 누워 있음’이라 쓴 묘비를 읽을 때... 아, 그 소녀는 어렸을 적 단짝 동무 중의 한 사람...
안톤 시나크를 슬프게 한 것은 대부분 지금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가 미처 쓰지 않았던 슬픔에는 또 어떤 것이 있을까. 현대인, 특히 우리에게 더 다가오는 슬픔이 있을까.
예컨대, 살아 계신 부모님의 묘지를 미리 마련하고 내려오다 햇살 밝은 양지의 흙이 눈에 들어 올 때. 진료를 마치고 손을 씻다 문득 거울에 비친 얼굴에 나이를 실감할 때. 눈가의 주름과 흰머리를 감출 길이 없을 때.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결혼에, 개업에 정신없이 살다가 문득 20년만에 여자 동창을 만났을 때. 바라다 본 그녀의 얼굴에 지울 수 없는 중년의 흔적이 각인 되어 있을 때. 그 ‘세월의 덧없음’이 결국 자신에게로 향할 때.
또한 몸담고 있는 직업에서 느끼는 사소한 실망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실력 없는 교수님이 이십년 전에 준비한 강의 노트를 읽을 때. 읽다가 하필 두 페이지를 넘겨 문맥이 전혀 맞지를 않을 때. 외국에서 갓 수련을 마친 의사가 진료의 달인처럼 동료 의사들에게 강의를 하고 다닐 때.
학창 시절 성실한 학생이었던 친구가 엉망으로 진료를 하며 돈을 벌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릴 때. 증명되지 않은 치료법으로 환자들을 진료하는 사람들을 볼 때. 치과의사의 수입이 알고 보니 의사 전체 그룹 중에서 하위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아직도 선생님은 우리의 수입이 상위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우리가 잘 산다고 생각하다가 우리보다 훨씬 돈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 그 사람이 하필 건물의 주인이라 임대료를 대폭 올릴 때. 하여 치과의사의 삶이 때로는 너무도 단조롭고 힘든 작업과 계약의 반복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 때. 이 모든 것이 대체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orthodani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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