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중심 보건의료, People-centered Care

2021.12.29 15:21:56

시론

올해 9월 부로 필자가 이곳 대학의 교수로서 활동한 지 만 10년이 넘었다. 필자는 대학 부임 후 예방치과학을 계속 강의해왔고, 공중구강보건학은 같은 교실 김진범 교수님께서 담당해오셨다. 하지만, 김진범 교수님의 정년퇴직에 따라, 이번 학기 처음으로 공중구강보건학 수업을 떠맡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해당 교과목의 부담감이 상당히 컸다. 치의학의 한 분야로서 공중구강보건학, 예방치과학과의 차별성, 의학 안에서 발전해온 전통적인 보건학의 주요 개념과 최신의 보건학 지식들을 사이에서, 매주 1시간, 14주의 강의 기간에 무엇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2019년 필자를 포함한 각 대학의 전공 교수들이 공저한 공중구강보건학(대한나래출판사) 교과서가 있기에 안심하기도 했지만, 치의학 중심 내용 구성과 부족한 컨텐츠로 인해, [예방의학과 공중보건학 4판, 대한예방의학회 편, 2021.3] 교과서와 때마침 발간된 강릉원주대학교 예방치학교실 정세환 교수께서 집필한 [사람중심의 구강건강관리. 2021.8] 교재를 많이 참고하였다.

 

매주 수업을 앞두고 긴장과 스트레스가 컸지만, 이 수업을 통해 가장 많이 배운 사람은 수강 학생이 아닌 필자였다. 매주 수업 주제 관련 자료를 수집, 정리하면서 그러한 내용을 이제야 인지한 내 자신이 부끄러우면서도 다행스럽기도 했다. 부디, 이 과목 수강생들이 필자의 첫 번째 공중구강보건학 수업을 통해 치의학을 넘어 타 보건의료분야에 대한 이해와 개인과 사회의 건강 증진을 위한 치과의사로서 나름의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필자의 공중구강보건학 교육내용 중, 이 글을 읽는 치과계 종사자들에게 중요한 내용 하나만을 꼽으라면, 단연코 [사람중심 보건의료, People-centered Care]이다. 최근 들어 자주 회자되는 [환자중심 보건의료]는 익숙한 분들이 많겠지만, [사람중심]이란 표현은 필자가 느꼈던 것처럼 생소하지 않을까 싶다.

 

필자가 [사람중심의 구강건강관리]라는 교재 이름을 접했을 때도 어떤 개념적, 학문적 의미라기보다는 최근의 사회 트렌드에 맞는 작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중구강보건학 전반에 걸친 수업 준비과정 동안 계속 언급된 [사람중심 보건의료]는 전세계적으로 급격히 변화하는 보건의료환경 하에서, 각 나라가 지속가능한 사회의 발전과 구성원들의 건강증진을 위해 꼭 추구해야만 하는 당위성 있는 전세계적인 보건의료체계 개혁의 방향이자 아젠다임을 알 수 있었다. [환자중심 보건의료]가 진료실 안에서의 개념이라면, [사람중심 보건의료]는 진료실을 넘어 가족, 지역사회, 국가까지 포괄하는 거시적인 보건의료체계를 지향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2017년 1월, People at the Centre라는 주제로 개최된 OECD 정책포럼을 통해 각국의 보건장관은 의료제도와 서비스의 중심은 사람이 되어야 하며, 의료서비스에 대한 환자의 경험(Experiece)과 의료에 대한 욕구(Needs)를 근거로 보건의료시스템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합의하였다. 이후, [사람중심 보건의료]의 개념은 WHO의 활동을 통해 구체화 되었다.

 

초고령사회, 돌봄을 포함한 보건의료서비스 수요 증가, 보건의료 관련 기술 발달, 개인 간 건강수준과 서비스 요구도의 차이 등, 급격한 보건의료환경 변화는 우리 사회의 보건의료서비스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안정을 위해서는 보건의료서비스의 효율적이고 형평성 있는 공급과 자원의 배분이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재원 마련과 관리의 책임이 있는 정부, 의료서비스 공급자와, 이를 이용하는 국민 모두가 만족하면서, 사회의 공공재원인 개인이 건강하게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질병과 치료 위주의 공급자 중심의 사후 지불보상체계에서 새로운 [사람중심 보건의료]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중심 보건의료]란 건강과 질병의 경험에 대해 누구보다 전문가인 서비스 이용자(환자)의 건강요구도에 부응하고, 보건전문가들이 환자, 가족, 사회의 구성원(사람)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며, 개별 질환 관리 중심이 아닌 다양한 질환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지역사회가 구성원의 건강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고 공통의 건강결정요인을 관리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보건의료체계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사람중심 보건의료]는 개인 맞춤형 보건의료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


진료의 계획 수립과 의사결정 과정에서 전문가는 의학적 정보를 환자와 가족, 더 나아가 사회와 충분히 제공하고 함께 결정함으로써 진료 자원의 낭비를 줄이고, 환자의 협조도와 진료의 효율을 높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보다 건강을 추구하는 사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의 발전된 ICT 기술은 [사람중심 보건의료] 체계를 가능하게 하는 또다른 원동력이다.

 

[사람중심 보건의료]가 의료서비스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의 보건의료체계의 개혁 방향이라는 점에서 의료계의 동의와 협조가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개혁 방향은 공공재인 개인의 건강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건강한 개인이 지속 가능한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며, 지역사회 안에서 일차의료(primary health care) 중심의 건강관리 수요를 확대하고 의료접근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기존의 한정된 보건의료수요와 재원에 의존한 현재의 보건의료시스템 하에서는 공급자는 무한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사람중심 보건의료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며, 일차의료 및 예방과 건강관리 중심의 수가체계 개편과 함께, 의료계의 아젠더가 될 필요가 있다. 현재 추진 중인 건강보험 아동치과주치의시범사업이 좋은 선례가 되어 치과계가 보건의료체계의 혁신을 선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WHO: What is people-centered care?(https://www.youtube.com/watch?v=pj-AvTOdk2Q&t=7s) 동영상의 후반부 멘트가 인상적이다. It means shifting away from asking ‘what is the matter with you?’ to ‘what matters to you?’ [사람중심] 보건의료체계 하에서 치과의사는 환자에게 ‘무엇이 문제인가?’ 보다는 ‘무엇이 중요한가?’를 우선적으로 묻게 될 것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승화 부산대 치전원 예방과사회치의학교실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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