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調和)의 가치: 비빔밥 탐구

2022.08.24 14:26:12

시론

흔히 한국을 소개할 때 한국의 (전통)음식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 중의 하나가 비빔밥이다. 글로벌하게는 불고기와 함께 “밥 중에 제일 유명한 밥”으로 생각된다. 김밥도 있지만 일본 스시 혹은 마끼 등의 유사품이 많이 알려져 있어 비빔밥이 한국의 고유성과 함께 그 중 최고인 듯하다.

 

필자가 음식 평론가나 맛탐험가가 아니니 구체적이지도 않고 전문성을 포함하지도 않지만, 이런 비빔밥의 레시피와 형식은 한국인의 전통적 관습이나 국민성과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본다.

 

지역마다 환경마다 조금씩 다른 재료를 비빔밥에 사용하기도 하고, 실제로는 딱히 정해진 재료없이 당시에 갖고 있는 적절한 재료들을 사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옛날 궁중에서도 먹은 음식이라고는 하지만 평민들이 남은 밥과 반찬을 한번에 처리하기 위한 목적이 비빔밥의 근원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여러가지 나물들과 고명을 참기름 고추장 양념과 함께 비벼, 재료들의 특성이 조화되면서 맛을 더 좋게 느끼게 한다는 다소 사전적인 설명을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 비빔밥의 장점은 편의성과 효율성이 아닐까. TMI일수도 있지만, 오래전 필자가 재수생이던 시절, 학원 문앞의 분식집에서 일년내내 점심을 비빔밥으로 해결했다. 딱히 야채를 즐기지도 않는 편인데도 그랬던 것은, 주문 후 즉시 나오고 금방 먹을 수 있기에 시간절약을 위한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비빔밥을 비벼먹지 않고 밥따로 야채따로 먹기도 한다. 구성 재료 각 고유의 맛을 느끼기 위함이기도 하고, 찬 야채의 상쾌함(?)을 느끼기 위함이기도 하다. 어쩌면 골고루 비비기 귀찮음을 회피하거나, 배고픔에 비비는 시간마저 줄이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따로 먹으면 그 맛이 그맛인 콩나물, 고사리, 애호박, 당근, 버섯, 무, 그리고 초록 파란 무언가 등등을 평소 딱히 찾아 먹지는 않지만, 비빔밥으로는 함께 먹어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아마도 그런 야채들, 각각 다른 맛과 향기, 씹는 맛이 다른 재료들을 조화롭게 만들어주는 ‘참기름’, ‘고추장’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참기름 고추장이 없는 비빔밥은 아직 시도해보진 않았지만 분명 ‘밥맛’일 것이고 ‘풀맛’일 것으로 예상된다.

 

모든 비빔밥이 다 다르지만 다 함께 버무려 조화로운 맛을 만들어주는 참기름 혹은 고추장은 거의 공통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참기름 고추장을 제외하면 비빔밥이 아닌 그냥 밥과 나물이 함께 들어 있는 데 그칠 것이다.

 

우리는 비빔밥을 통해 우리 민족의 창의성과 효율성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서양의 일반적인 식사 메뉴에서는 접시 위에 놓인 음식의 구성과 레시피는 거의 일정하다. 그렇지만 우리 비빔밥은 가는 동네마다, 식당마다, 그리고 같은 식당이라도 가는 날에 따라 그 구성이 다르기도 하다. 이걸 넣어볼까 저걸 넣어볼까 아주 심플하지만 창의성이 늘 함께하는 한국식 음식이다. 물론 그 창의성은 김밥이나 피자 치킨 요리에도 한없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 한국의 창의적 음식문화 가치이다. 비벼먹는 비빔밥 중, 뜨거운 돌솥비빔밥은 마지막에 누룽지도 함께 맛보게 하는 발전된 비빔밥의 한가지이다. 열기가 더해지니 육회 비빔밥까지 창의성이 이어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얼음 슬러시가 들어가 있는 시원한 물회도 어쩌면 비빔밥 문화의 한 예이다.

 

지금은 흔히 보기 어려운 모습이지만 큰 양푼이에 함께 넣어 비벼서 나누던 시절에는 공유와 나눔에 대한 생각도 같이 한 것이다. 물론 각자의 식기를 반드시 따로 사용하고 교차 감염 예방 개념을 탑재한 외국인들이 보기엔 한 양푼이를 같이 쓰면서 여러 숟가락이 드나드는 걸 보면 기겁을 할지도 모르겠다. 굳이 미화하여 억지 표현을 한다면, 맛있는 맛도 나누고 동반자의 아픔(감염)까지도 나누겠다는 “우리”문화를 (양푼이)비빔밥에서 느낄수 있다.

 

뜨거운 여름, 시원한 것을 생각하면 팥빙수도 비빔밥과 유사한 음식 문화이기도 하다. 삶은 팥과 연유만으로도 갈아낸 얼음 가루의 가치를 한껏 높여주는데, 필자는 간혹 따로 얼음 가루만 먹으면서 어릴적 눈(雪) 떠먹던 기분을 느껴보기도 한다. 최근 팥빙수에는 과일은 물론 곡물가루, 떡도 넣고 멜론 반 덩이까지 덮어주는 빙수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서로 다른 색과 다양한 맛을 내는 나물과 고명들이 비빕밤에 있듯이, 우리 사회에는 “많은” 생각과 “다양한” 말들이 함께 한다. 이를 잘 혼합해서 가치를 높이는 맛깔내는 참기름과 고추장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 조직의 참기름은 누구이며 우리 사회의 고추장은 무엇인가. 날이 뜨거우니 비빔밥 대신 시원한 팥빙수라도 비벼 먹어봐야겠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현철 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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