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의 가치, 가치를 높이는 보험: 100년만의 폭우와 뇌동맥류

2022.10.19 15:29:54

시론

지난 10월 3일 미국에서는 천년에 한번 올까말까한 폭우와 허리케인 IAN으로 인해 큰 피해가 있었다고 한다. 달러 찍어내는 나라니 어떻게든 해결해주겠지 싶기는 하나 전세계 누구라도 다치기 전이나 피해를 입기 전이 더 낫다고 할 것이다.

 

한국에서도 지난 8월과 9월에는 예상치못한(예상을 초월한) 폭우로 침수가 되고 안타까운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있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가 어려운 백년만의 큰 비로 천재지변(天災地變) 수재(水災)이었지만, 인재(人災)라고도 말할수 있는 부분도 있다. 최근 기상이변이 잦고 기습적인 게릴라성 호우도 잦은 것을 고려하면, 이번에 겪은 정도의 수재도 ‘사람의 힘’으로 예방을 위해 미리 무엇인가 해두었어야 하는 부분이 조금은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보인다. 배수 시설 등을 포함한 치수(治水)사업을 미리미리 준비하고 확대하여 백년에 한번일지라도 생길 수 있는 상황에 대해 대비하는 것이 바로 '보험'과 유사한 사업이다. 그러고 보니 이는 사람의 힘이 아닌 ‘돈의 힘’이고 그 돈을 쓰는 결정을 사람(정치인이나 행정가)이 하는 것이다.

 

백년에 한번 있을 일이라면 앞으로 99년은 무탈할터이니, 우리들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세금도 아니지만, 당장에 더 급한 곳에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백년에 한번이라는 일이 앞으로는 십년에 한번일 수도 있기에 그렇게 넘기기에도 참 어려움이 크다. 이런 언제일지 모르는 일에 재정을 투자하고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보험적 재정 운용’이고 실제 '보험'이다.

 

보험의 의미로 가장 중요한 기능은 큰 재난 혹은 위험의 대비라고 하지만 조금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오해를 사거나 몰이해를 유발할 수 있다. “언제 그런 큰 비가 올거라고 그 큰 돈을 쓰느냐”, “언제 전쟁이 난다고 그런 큰 돈으로 전쟁 준비(물론 전쟁 대비이다)를 하느냐”, “언제 병원 간다고 매달 보험료를 그렇게 많이 떼어 가느냐(그 돈이면 보험료 안내고 내가 아플때 내돈내치 하겠다)”. 이 세가지 언급을 예로 들어보면서 보험의 참 의미를 생각해본다. 실제 보험의 역할, 의미있는 역할, ‘가치가 큰 보험’은 ‘예측하지 못한’ 위험의 대비인 것이지 예측 가능한 범위 내의 비용을 요구하는 대비가 아닌 것이다.

 

매년 수십만원 이상 백만원 넘게까지 자동차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으면서도 사고가 나지 않기를 바라고 작은 사고가 나면 보험처리를 하지 않고 자기 부담으로 해결하는 것을 보면 보험의 참 의미를 이해하기 쉽다. 즉 보험으로 우리가 바라고 기대하는 것은 우리가 감내할 수 없는 재정적 지출규모를 필요로 하는 긴급 상황으로부터 감내할 수 있는 정도로의 지출로 줄여주는 도움을 받는 것이다. 반파 전손되는 정도의 사고로 월 급여나 수익의 상당비율을 차지하는 의료비 등이 필요할 때 도움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 진정 보험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보험의 다수는 이런 가치로운 보험보다는 일상에 깊이 젖어있는 큰 도움이 안되는 보험이 아닌가 의문이 든다. 진정 큰 도움이 필요한 시기에는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는 보험이 아닌지 되물어보게 된다. 자연재해로 혹은 급작스런 질병으로 큰 수술을 받아야하거나 아주 고가의 약을 필요로하는 암이나 희귀난치병 환자들은 충분히(?) 혹은 피폐한 삶으로 급전되지 않을 정도로 도움을 줄수 있는지 되물어 보아야 한다. 질병이 형벌이 아니라면 국가가 기본 생명권은 지켜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순간 가장 와 닿는 것이 가장 필요한 것이 국가보험, 사회보험이다.

 

최근에 간호사 한 분이 뇌출혈(뇌동맥류) 응급 상황에 지연된(?) 처치로 혹은 수술 집도의를 골든 타임에 만날수 없어서 사망한 일이 있었다. 골목만 돌아서면 존재하는 치과에 비해 전국에 개두수술을 집도할 신경외과 의사가 손에 꼽히는 현실은 잘못된 보험제도와 무관하지 않다. 줄어드는 출산율과 군단위 소도시에 분만 산부인과가 없는 것 역시 보험제도의 비정상적 운용과 관련이 없지 않다.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누구도 바로 잡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 보험다운 보험을 만들기 위해, 가치로운 보험 제도로의 변화를 위해 모두가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고 나 자신에게 필요한 보험이 무엇인지 우리 가족을 위해 필요한 보험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물론 정치인들과 행정가들이 우리의 의견을 받아줄리 만무하지만 계속 주장하고 홍보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노인표 한표를 더 얻기 위해 임플란트 하나를 더 보장해줄것이 아니라 극소수의 혜택자가 있을지라도 우리 모두가 생명의 존엄권을 함께 나누어 갖는데 필요한 보험을 가지면 어떨까? 그정도까지는 아니라도 감기는 보험 적용을 안할 것이니 스스로 평소 청결과 보건 수칙을 잘 지키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단순 우식 정도는 보험의 적용을 없애는 발상의 전환은 어떤가? 없애기가 어렵다면 본인 부담을 50~70%로 역전시켜보면 어떨까? 혹은 본인 구강건강 관리를 잘 할수 있는 연령층부터는 기초 상병들에 대한 보험 급여를 줄여나가는 것은 어떨까? 이런 역발상을 해보아야 우리의 보험이 가치로운 보험으로 변화하는데 그나마 새로운 출발점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건강보험공단의 횡령을 막고, 재외국민과 외국인의 정당하지 않은 의료보험혜택을 줄이거나 없애고, 보험재정을 보험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곳에 적용 영역을 확대해나가야 할 것이다.

 

엔도쟁이인 필자의 입장에서는 근관치료 수가의 원가보전율을 높여 달라고 목청 높여 말하고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개인 피보험자인 나는 이 잘 닦고 충치 풍치 예방할테니 5년에 한번이라도 뇌동맥류가 없는지 MRA나 CTA를 촬영해주면 좋겠다. 혹은 5시간 넘게 걸리는 신경외과 뇌동맥류 수술급여를 300만원이 아닌 천만원으로 올려주고 보험급여 공단 부담을 80%(본인부담 20%)로 올려주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어딘가 근처에도 머리를 열고 뇌동맥꽈리를 묶어주실 분이 계실 지도 모르겠다. 이런 보험제도였다면 그 간호사는 다시 환자들 곁에서 또 다른 환자를 살리는데 도움을 주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도쟁이 생각에, 언제 생길지 모르는 재난에 대비한 치수(治水) 사업에 돈을 미리 쓰는 것도 중요한데, 지금 당장 아픈 사람의 치수(Pulp) 사업(Dental clinic)에도 돈(보험료)을 좀 더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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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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