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에 관한 기억

2023.07.31 13:50:18

Relay Essay 제2563번째

치과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아~ 다. 평소와 같이 체어에 누워 있는 환자에게 아~라고, 이야기하는데 뒤에서 다른 선생님이 아~라고 따라 하는 것이었다. 조금은 당황스러워 행동이 정지되었다. 나는 무슨 상황인가? 싶었고, 의아한 표정으로 “왜요?”라고 물었다. “선생님 아~는 뭔가 상냥하게 아~하는 것이 끝음을 끌듯 올려요!”라고 했다. 나의 말에 물결이 보인다는 반응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J씨가 문득 생각이 났다.

 

작년 여름이었다. 오후 진료의 중반을 지나고 있을 때쯤 내게 온 환자는 J씨였다. J씨는 오빠의 손에 이끌려 치과에 오는 정신발달이 조금 느린 지적 장애인이었다. J씨 나이는 나보다 언니였지만, 목소리는 아이처럼 맑았다. 그날 난 처음으로 J씨를 담당하게 되었다. 위 어금니가 없는 J씨는 무엇보다 식사를 힘들어했고, 임플란트를 하기로 계획했다. 임플란트 식립부터 치료의 긴 시간을 견뎌 본을 뜨는 인상(impression) 단계까지 올 수 있었다. J씨는 인상 전 구강을 점검하러 온 원장님의 인사에 체어에 누워 있는 채로 원장님께 맑게 인사했다. 원장님이 “어땠어요?”라고 물었다. J씨는 “아팠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랬다! J씨는 치료받을 때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 대신, 아프다는 말로 내비쳤다. 표현의 소리는 불편한 정도에 따라 소리가 좀 더 크거나 일정했다. J씨의 의사 표현은 그랬다.

 

J씨는 입안에 기구가 오가는 작업 중 조금이라도 느낌이 이상하면 “아파요!”라고 말했다. J씨가 입을 크게 벌리는 것도 쉽지 않은 부분이었다. 신경 써서 아~라고, 말했다. 아~, (자상한)아~, 아~의 점점 반복되는 횟수가 늘어나다 보니 나의 아~ 에는 나름에 운율이 생겼던 거 같다. 인상을 뜨는 과정에서 J씨는 입속으로 평소보다 높이가 긴 coping이 들어가는 게 낯설었는지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J씨에게 “입안에 제 손이 있어요!”라고 말했고, 곧바로 아~ 라고 부탁하듯 말했다. 나의 아~ 에는 ‘J씨 입을 조금 더 크게 벌려 줘요!’라는 부탁이 담겨 있었다. 그러고 다시 아~를 외쳤다.

 

그때를 생각하면, 그런 내적 외침이 되려, J씨에 귀에는 박자감이 있는 아~로 들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인상재가 담긴 트레이를 쓰는 와중 입을 크게 벌려달라는 아~ 소리에 J씨가 진료실에서 나의 아~를 따라 하면서, 깔깔거리면서 진료실이 떠나가라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되려 웃지 못했고, 속으로 ‘대합치도 있는데!’라고 외쳤다.

 

그렇게 한 시간 반 정도 가까이 스케일링부터 인상 단계를 거치자 시간이 꽤 지나 있었고, J씨는 집으로 돌아갔다. 다른 스탭이 와서 “치과에서 J씨가 웃었던 일은 처음 본다”고 했다. 그랬다.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끝났다는 안도감보다, 진이 빠져 버렸다. J씨 웃음에 나는 속으로 ‘조금만 이따가요’를 외쳤고, 겉으론 침묵했다. 다른 스탭들은 J씨의 맑은 웃음에 미소를 지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날의 난 좋고 나쁨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팀장님께 이야기해 이른 퇴근을 했다. 체력의 한계치에 다다른 날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설명하는 방식보다 협조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J씨를 달래는 방법으로 말을 끌기도 했던 것 같다. 치과위생사 업무를 하면서 숱한 아~를 외쳤지만, 그날의 아~는 지금 생각해보면 더 아쉽기도 하다. J씨가 웃을 때, 같이 웃으면서 아~를 외칠 수 있지 않았나? 싶은 그런 생각이 든다. 직장을 옮기면서 J씨를 더 이상 볼 수가 없게 됐다. 혹 다시 만나는 날이 온다면 그때의 아~는 조금은 박자감 있게, J씨 혼자가 아니라 같이 웃을 수 있는 아~로 만나길 바라본다.

박진성 치과위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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