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이곳 화순군 보건소로 공중보건의 배치를 받은 지 벌써 1년이 넘게 지났다. 학교를 나오니 시간은 왜 이렇게 빠르게 흐르는지 모르겠다. 화순군 보건소 치과 진료실로 찾아오는 환자는 많지 않다. 오더라도 할 수 있는 진료는 일부 보험진료와 레진 정도. 다른 진료가 필요한 환자는 근처 치과로 가시라고 권유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곳에서 진료 경험을 많이 쌓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난 1년간 다양한 인생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 글에서는 내가 그동안 경험한 몇 가지 일화들을 소개하고 싶다.
초등학교로
화순군에는 지역 내 초등학교로 공중보건치과의사가 찾아가 검진도 하고 불소도포도 하는 사업이 있다. 나 또한 여러 초등학교로 출장을 나간다. 매 학기마다 출장을 나가는데, 그러다 보니 학생들과 6개월에 한 번 만나는 셈이다.
정기적으로 학생들의 구강 상태를 살피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학생들의 가정환경이 대강 어떤지 파악하게 된다. 구강 상태가 특히 안 좋은 친구들은 기억에 남게 되는데, 그런 친구들일수록 그다음 만남에서도 치료가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가장 치료가 필요한 아이가 가장 치료를 받지 못한다. 이 사실을 공중보건의로서 검진을 다니며 많이 느꼈다. 이 아이들에게도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할 텐데, 그게 아무래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나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보건소 치과 진료실로 내원하도록 해 보았으나(보건소 진료비는 저렴하기에) 실제로 찾아온 아이는 2명뿐이었고, 그마저도 많은 치료를 제공해주지는 못하였다. 개인인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은 미약했던 것 같다. 제도의 개선이 필요한 것 같다고 느낀다.
광주 이주민건강센터
우연히 화순에 계신 학교 선배님을 만나게 되어 봉사를 시작한 곳이 바로 광주 이주민건강센터였다. 이곳에서는 일요일마다 한국으로 이주해 온 이주민들에게 의과·치과·한의과 진료 및 처방약품을 제공한다. 학생 때 봉사동아리를 통해 여기에서 진료 보조를 했었는데, 치과의사로서 다시 돌아와 직접 진료하니 마음이 새로웠다.
이곳에서 내가 진료를 담당한 한 환자가 떠오른다. 20대 후반의 남성 환자였는데, 심한 통증과 더불어 X-ray 상에서 치근단 병소가 보였기에 근관치료를 하였다. 이 환자는 증상이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오랫동안 내원하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교합면 삭제가 충분치 않아서 계속 자극되었던 것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근관충전을 하고 치근단방사선사진을 찍었는데 충전상태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가뜩이나 오래 불러서 미안한데, 마무리도 만족스럽지 않다니. 환자에게는 참 미안한 순간이다. 초보 치과의사라서 정말 미안합니다, 하고 속으로 얘기했다. 환자에게 치료 결과를 설명하고 쓸 수 있을 때까지 쓰다가 아프면 다시 오시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때 환자가 스마트폰 번역기를 켜고 타자를 치더니 나에게 보여줬다.
‘당신의 희생에 매우 감사드립니다. 하느님이 당신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치료를 받느라 본인도 힘들었을 텐데, 나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라준다. 이 환자는 내 기억에 평생 남을 것 같다. 미안하고 고마운 환자로. 일요일마다 봉사에 가는 것이 솔직히 피곤하긴 하지만, 지금도 이 환자를 기억하며 매주 센터 진료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다음에 이 환자가 또 오게 된다면, 그땐 더 잘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