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의 역사는 약 46억 년에 달합니다. 그러나 인류가 본격적으로 문명을 이루고 농경을 시작한 것은 고작 1만 년 전, 지질학적 관점에서 보면 눈 깜짝할 순간입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인간은 자연의 일부에서 지구 환경을 바꾸는 주체로 빠르게 변모해왔습니다. 원래 지구의 기후는 약 2만~26만 년을 주기로 빙하기와 간빙기를 반복하며 변화해 왔습니다. 이러한 기후 주기는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 변화, 공전 궤도의 이심률 변화, 세차운동 등과 같은 천문학적 요인에 따라 조율되는 리듬으로, 이를 우리는 흔히 ‘밀란코비치 주기’ 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이 느긋한 자연의 흐름에 인간이 가속 페달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화석연료의 대량 사용은 이산화탄소와 메탄, 아산화질소 같은 온실가스를 대기 중에 축적시켰고, 지구 복사에너지가 대기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가두는 ‘온실 효과’를 강화시켰습니다. 이와 동시에 오존층 파괴와 같은 환경 문제도 복합적으로 기후 시스템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 결과, 20세기 초반 이후 지구 평균 기온은 약 1.1℃ 상승했으며, 수천 년에 걸쳐 일어날 변화를 단 100여 년 만에 압축해버렸습니다. 더 이상 기후 변화는 자연의 순환이 아닌, 인간의 흔적 그 자체입니다. 국제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2021년 보고서에서 “인간의 영향이 대기, 해양, 빙권, 생물권에 걸쳐 전례 없는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곳곳에서는 한쪽에서는 물폭탄이 쏟아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대지가 말라가며, 누군가는 기록적인 더위에 시달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례적인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그림 1).
![[그림 1] 기후변화를 겪는 지구 (출처: //climate.nasa.gov/explore/ask-nasa-climate/2352)](http://www.dailydental.co.kr/data/photos/20250833/art_175505339149_2d968b.jpg?iqs=0.5724328170756304)
대한민국에서 ‘기후 변화’라는 단어가 대중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였습니다. 당시에는 외신 뉴스에 간간이 등장하는 해외 소식 정도로 여겨졌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피부로 와닿지 않는 ‘먼 나라 얘기’였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기상청과 환경부의 경고와 연구가 본격화되며 분위기는 달라졌습니다. ‘기후 변화’는 더 이상 뉴스 속 용어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체감의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북태평양과 동북아시아 대륙 사이에 위치한 반도 국가로, 중국 대륙과 일본 열도에 의해 외부 기후 영향이 다소 완충되는 지리적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치는 일견 기후 변화로부터의 자연적 방어막처럼 보일 수 있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한국은 대륙성과 해양성이 충돌하는 기후대에 놓여 있어 태풍, 장마, 한파, 폭염 같은 극단적 날씨 현상이 자주 발생합니다. 특히 기후 변화가 심화되면서 이들 현상의 강도와 빈도가 모두 증가하고 있으며, 해수면 상승 역시 눈앞의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국립해양조사원에 따르면 최근 30년간 부산의 해수면은 연평균 약 3.2mm씩 상승해 지구 평균에 근접하거나 이를 웃도는 수준을 보이고 있습니다. 서해와 남해의 저지대는 점차 침수 위험에 노출되고 있으며, 해양 생태계 변화와 수산업 피해도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결국 한국은 결코 기후 변화의 안전지대가 아니라, 오히려 복합적 위험에 노출된 대표적인 기후 취약 국가입니다.
실제로 이제는 우리 주변에서 기후 변화의 징후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서울 도심의 옥상 텃밭에서 바나나가 자라고, 동해안에서는 열대 해파리와 상어가 나타나며, 남해안 어획량의 주요 어종도 점점 아열대 종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겨울의 상징이던 ‘삼한사온’은 거의 자취를 감췄고, 여름에는 갑작스레 쏟아지는 국지성 폭우가 예측 불가능한 재난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3년 이후, 시간당 100mm를 넘는 집중호우가 서울과 수도권을 덮치며 지하차도 침수, 도심 정전, 산사태 등 복합 재난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습니다. 기후 변화는 더 이상 기온의 상승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일상을 직접 위협하는 새로운 위기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책임은 분명합니다.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량 기준으로 세계 10위권에 속하며, 1인당 배출량도 주요 선진국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더 이상 ‘경제 성장’을 이유로 기후 위기를 외면할 수 없는 위치에 선 것입니다. 2021년, 정부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석탄발전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산업계의 반발과 제도 이행의 속도 또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럴수록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고 구체적인 행동들입니다. 에너지를 아끼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친환경 제품을 선택하는 일들은 다소 미약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러한 일상의 작은 실천이 모일 때 더 큰 변화의 물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결국 실질적인 변화는 제도보다 먼저 개인의 인식 변화에서 출발합니다. 치과계도 예외는 아닙니다. 재료의 선택, 장비의 효율적 사용, 보호구의 관리와 재사용 등 진료 현장의 세세한 영역에서도 이제는 친환경적 전환이 적극적으로 고민되어야 할 때입니다.
이제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불안’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하늘과 바람, 습도와 온도 속에서 실감하는 ‘오늘의 현실’입니다. 우리가 지구인으로서 가져야 할 태도는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책임감과 미래 세대를 위한 실천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 지구에서 차지하는 면적은 0.07%, 인구는 전 세계의 0.64%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작지만 강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의식과 실천의 힘을 지닌 공동체입니다. 규모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행동의 깊이와 지속성이 기후 위기 극복의 열쇠가 되는 지금, 한국은 그 변화의 흐름을 선도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과 책임감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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