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대학을 다닐 때 내가 상상한 미래는 여느 치과의사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개원의가 돼 진료실에서 환자의 건강한 구강을 되찾아주는 역할에 집중하는 것. 지금처럼 일본 치과의사들에게 내 경험과 노하우를 전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어느 순간 나는 의사를 가르치는 의사가 됐다. 주 4일 진료하면서 한국·일본·미국 등 다양한 국적의 의사들을 가르치고 틈틈이 일본으로 협진을 하러 간다. 나리타 공항에 내릴 때마다 교수님들께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릴 때면 이게 얼마나 특별한 경험인지 깨닫곤 한다.
1980~90년대, 한국 치과의사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기술을 배우던 시절의 이야기. 당시 일본에서 선진기술을 배워 오는 것은 일종의 자부심이었다고 한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선배들이 배우러 일본으로 갔다면, 이제는 일본에서 나의 진료 경험을 원한다. 선배들의 노력과 한국 치과의 성장이 만들어준 기회가 내게 온 것이다.
나를 초청한 원장님들은 내가 메인 강사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수료하고 우리병원과 같은 진료를 하는 분들이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원격으로 증례 상담을 요청하고 케이스를 공유한다. 함께 치료 계획을 세우지만, 막상 실전에서는 불안한지 SOS를 요청한다.
위아래 16개 혹은 18개의 치아를 한꺼번에 다룬다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엄청난 도전이다. 프랩, 스캔, 세팅, 기공물 접착의 복잡한 과정은 한국에서 교육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을 일이다. “선생님이 옆에 있어 주시면 좋겠어요.” 그 한마디에 담긴 간절함을 알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일본 원장님들의 꼼꼼함은 협진을 할 때마다 놀랍다. 자신의 프랩이 제대로 됐는지 계속 확인받고 싶어 하고,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반드시 이유를 듣고 고치려 한다. 진료 순서의 단계마다 기록하고 촬영하고 점검하는 걸 보면 일본인 특유의 세심함이 느껴진다.
진료실에서 대화는 협진이 끝난 후 식사 자리로 이어진다. 일본의 치과 문화, 환자들의 성향, 그들이 겪는 고민들. 이 자리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 정말 일본은 음식만큼은 실패가 없다. 협진 가서 기술도 나누고, 맛있는 것도 먹고. 이게 일인가 싶을 때도 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소통이 계속된다. “그때 그 환자, 지금 이렇게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저번에 조언해주신 부분 덕분에 다음 케이스는 훨씬 수월했습니다.” 이럴 때면 마음 한구석에서 뿌듯함이 밀려온다. 해외 협진을 거절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며칠 후면 또 일본행 비행기에 오른다. 이번에는 협진을 했던 원장님이 대표로 있는 의료법인 소속 30명의 의사를 대상으로 세미나를 한다. 지난달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22명의 의사를 대상으로 보수교육을 마쳤다. 일본만큼 미국행 비행기도 탈 기회가 늘어날 것 같다.
바쁘지만 즐겁다. 진료실을 벗어나 강의, 출장, 협진, 직원 교육을 하면서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게 됐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관점이랄까. 그래서 다음 협진이 벌써 기다려진다. 맛집 탐방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