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수필(791)>
자전거로 올라간백두산 천지
허형범(인천 중구 허형범치과의원 원장)

  • 등록 2001.02.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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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선순간 ‘아! 천지로구나’ 가슴이 뛰고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2000년7월15일 새벽 5시 9박 10일간의 일정으로 인천을 떠나 설레는 마음으로 백두산을 향했다. 내가 속한 LOOK스케이팅클럽은 매년 환경보호 캠페인의 일환으로 사이클 대행진을 하는데 이번 등정은 날로 심각해지는 지구촌의 대기오염을 경계하고 환경의 중요성을 알린다는 취지로 마련되었다. 지금까지 백두산을 가려면 항공편으로 서울에서 북경을 거쳐 연길로 해서 가거나, 배편으로 인천에서 대련이나 천진으로 가서 연길까지 기차로 갔는데 지난 5월부터 속초항에서 출발하여 러시아 자루비노를 거쳐 훈춘, 연길 지역으로 육상운송을 연결한 최단거리 해륙교통로인 백두산항로가 열려서 시간을 단축시키게 되었다. 속초항에 도착해 수속을 마치고 동춘 카페리에 오르니 오후2시. 뱃고동을 울리며 동해의 공해상으로 나갔다. 검푸른 망망대해는 하늘의 변화에 따라 색을 달리하고 우린 북으로 달리고 있었다. 18시간의 항해 끝에 다음날 아침9시. 배는 소련의 작은 항구 자루비노에 도착했다. 낙후한 항만시설, 경비병의 굳은 표정에서 그 옛날 강국 소련의 모습은 간데 없고 남루한 군복을 입은 앳된 러시아 국경수비대 병사의 모습에 연민이 생겼다. 우리가 가져간 자전거를 신기하게 바라보길래 사탕과 담배를 주니 눈치를 보다 얼른 주머니에 넣었다. 2시간이나 걸려서 러시아를 벗어났으나 다음은 중국 국경수비대의 검문, 세관통관이 지리하게 이어졌다.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가는데 내 땅을 밟고 가지 못하고 두 나라 국경을 거치며 이런 절차가 반복되니 분단의 아픔이 다시 느껴져 부아가 치밀고 속이 상했다. 트럭에 자전거와 짐을 싣고, 일행은 미니버스를 타고 백두산 쪽으로 향했다. 날씨가 꾸물거리더니 빗방울이 굵어졌다. 백두산 천지 입구에 있는 장백산 대우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비는 계속 왔고 백번 오면 한두번밖에 볼 수 없어서 백두산이라 부른다(?)는데 정말 제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안타까웠다. 백두산은 하늘이 허락해야만 볼 수 있다고 할만큼 연중 맑은 날이 40여일에 불과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가 변덕을 부려 기상을 예측할 수가 없다고 한다. 6월말에서 7월초의 날씨가 가장 좋다는데도 밤늦게까지 비가 계속 내려 ‘여기까지 와서 백두산 천지를 못보는구나.’ 하는 마음에 밤잠도 설쳤다.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어제의 날씨는 거짓이었다는 듯이 햇살이 눈부셨다. 검푸른 백두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오니 반가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서둘러 아침식사를 하고 등정대원 7명이 자전거에 올라 힘찬 구호와 함께 백두산 천지를 향해 올라갔다. 천지까지는 12㎞의 가파른 경사로가 이어졌는데 아스팔트도 아닌 시멘트 보도블록이 깔려 있어 자전거 바퀴가 그 틈새로 빠지곤 해서 올라가기가 더욱 힘들었다. 일반 관광객은 매표소부터 7000원씩 주고 지프를 타고 올라가는데 그 중엔 우리 차, 갤로퍼나 무쏘도 있어 무척 반가웠다. 밖에서 만나는 우리 것은 작은 것에도 가슴이 벅차다. 천지까지 오르는 길은 긴 언덕과 급한 커브길이 연이어 나타났지만 회원 모두는 해내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모두 완주 등정하였다. 천문봉 주차장에 도착하여 모두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중국, 일본, 한국 관광객들이 다가서며 이 긴 언덕을 자전거로 올라왔냐고 하며 혀를 내두르며 박수를 보냈다. 한국인의 위상을 세우는 일을 해낸 것 같아 뿌듯했다. 숨을 돌리고 백두산 정상의 바람결을 느끼며 올라온 쪽을 내려다보니 백두산 아래로 드넓은 만주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 선조들이 말을 달리며 호령하던 저 벌판에 지금도 광개토대왕의 깃발이 휘날리고 수많은 고구려 병사의 함성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마음이 착잡했다. 한민족의 발상지인 민족의 성산 백두산천지를 보기 위해 우린 100m정도 절벽에 가까운 산등성이를 자전거를 밀며 올라갔다. 정상에 선순간 ‘아! 천지로구나’ 가슴이 뛰고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TV에서 애국가가 나올 때마다 보았던 천지, 시리도록 깊고 푸른 천지는 투명한 초록빛, 코발트빛 물감을 풀어 놓은 것 같았다. 내려가서 손이라도 담궈보고 싶었지만 금지되어 있었다. 북한쪽에서는 장군봉까지 케이블열차도 설치하고 물가에서 소풍도 즐긴다던데 내나라를 놔두고 남의 나라로 멀리 돌아와 천지를 바라보고 있어야 하나 생각하니 분단의 현실에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경이로운 천지의 모습에 마음이 벅차올라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물이 났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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