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중 칼럼] 흑기사 2: 미녀 삼총사

  • 등록 2011.08.22 00:00:00
크게보기

|명|사|시|선|

  

임철중 칼럼
<전 치협 대의원총회 의장>


흑기사 2: 미녀 삼총사


회고록으로 위장한 복수극이나 정치공작이 횡행한다. 흘러간 사건을 둘러싼 감정적 또는 일방적인 글을 써놓고는 움직일 수 없는 근거를 들어 반박하면, “사건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둘러댄다. 뒤에 시비가 가려져도, 상대를 실컷 헐뜯고 항간에 의혹을 불러일으켰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이에 비해 신성일 씨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솔직 신선하다. 그러나 장동건, 배용준, 원빈의 종합선물세트인 미남 신성일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연기력이다.


선배 윤일봉 씨의 별명처럼 처음 신성일의 연기는 ‘막대기"였다. 같은 미남계열의 남궁원도 이런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였고, 미녀스타들도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미모를 자타가 공인하는 김태희도 “몰입에 문제가 있다"느니 “학예회 하느냐?" 등등 연기력 시비가 그치지 않는다. 과연 그들의 연기가 그렇게 서투른가? 


세기의 미녀 리즈 테일러는 ‘팔방미인"이었다. 재주가 많다는 뜻이 아니라 어느 각도에서도 완벽한 미모라는 조크다. 단 연기력에는 항상 의문부호가 따라다녔다.


데뷔 18년 만에 받은 ‘버터필드 8"의 아카데미주연상은 다소 무리였고, 끈질긴 노력 끝에 6년 뒤 ‘버지니아 울프"에서야 인정을 받았다. 왜 모두 미남미녀의 연기력 평가에는 야박할까? 연기는 한마디로, “먼저 자신을, 이어서 관객을 몰입시키는" 능력이다. 그러나 무결점의(impeccable) 아름다움은 때때로 몰입을 방해한다.


첫째 연기자의 몰입문제; 스스로 외모를 의식, 몸을 내던져(lapse into the role) 망가지지 못한다. 둘째 관객의 몰입; 화려한 미모에 시선을 빼앗겨 드라마에 빠져들지(immersed) 못한다. “너무나 눈부셔 대사가 한 마디도 안 들리더라" 한다.


셋째 문장이 지나치게 매끄러우면 감동을 잃는 법; 한 치의 오차 없이 균형 잡힌 얼굴에서, 팬들은 집중력을 이끌어줄 악센트를 찾지 못한다. 얼마 전 시사만평을 30여 년 그려온 박기정 화백이 J일보를 떠났다. 젊은 시절 인기 만화 ‘도전자" 나 ‘치마부대"는 탄탄한 데쌩의 내공으로, 수많은 후배가 베껴 그리는 교본이었다. 캐리커쳐 솜씨도 발군으로, 그가 그리지 않은 인물은 VIP축에 끼지를 못했다. 붓이 몇 번 쓱쓱 지나가면, 누구라도 한눈에 알아보고 그 성품까지 묻어나는 해학적인 인물화가 완성된다. 닮게 그리는 재주보다 대표적인 ‘특정부분"을 찾아내는 관찰력이 더 중요하여, 이를 과장해서 표현하면 작품이 되는 것이다.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은 대부분 미남미녀가 아니다. 스펜서 트레이시의 개구쟁이 같은 눈매, 캐서린 헵번의 사각 턱, 잉그리드 버그만의 지나치게 굵은 선 등, 모두가 캐리커쳐로 그리기 알맞은 ‘특정부분"으로, 개성인 동시에 팬들의 몰입을 위한 IP 포인트다. 그러나 이것은 훌륭한 연기자가 갖춰야할 "기본조건"일 뿐이다.


헤일 수 없는 나날 뼈를 깎는 연습과 연구와 도전이 연기력을 향상시켜 인기의 수명을 보장한다. 생애를 관통하는 장기전에서는 ‘타고난 미모"보다 갈고 닦은 노력의 결과인 ‘연기력"이 더 큰 박수를 받는 것이다. 20세기 미녀3총사의 나머지 둘은 마릴린 먼로와 오드리 헵번. 먼로는 마치 인생의 방관자처럼 성큼 떨어진 두 눈을 반쯤 감은 나른한 외사시의 시선과 창백한 금발에 새빨간 립스틱으로, 백치미의 정화요 섹스심벌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헵번은 14세 소녀시절의 아픔을 간직한 안네 프랑크 필에서, 커다란 눈 가냘픈 몸매에 외계인처럼 신비한 아우라로, 다시 말년에는 봉사와 헌신의 기품 있는 여신상으로 진화하며 일생을 마감하였다.


리즈를 포함한 미녀3총사 모두가, 스크린 안팎에서 자신의 역할을 치열하게 살아냄으로써, 전설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그리하여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리자
Copyright @2013 치의신보 Corp. All rights reserved.

관련기사 PDF보기



주소 : 서울시 성동구 광나루로 257(송정동) 대한치과의사협회 회관 3층 | 등록번호 : 서울, 아52234 | 등록일자 : 2019.03.25 | 발행인 박태근 | 편집인 이석초 대표전화 : 02-2024-9200 | FAX : 02-468-4653 | 편집국 02-2024-9210 | 광고관리국 02-2024-9290 | Copyright © 치의신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