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중 칼럼] 화해의 첫걸음

  • 등록 2012.01.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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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전 치협 대의원총회 의장>


화해의 첫걸음


미당이 나이 80에 러시아유학을 결심한 것은 톨스토이를 원어로 읽어보려 함이었다. 건강 탓에 계획은 꿈에 머물렀지만, 사람은 생각만큼 늙고 생각은 지적호기심만큼 젊다고 하듯, 미당은 눈감는 그날까지 소년이요 시인이었다. 대전문화예술의전당 후원회 이사들이 문화탐방을 가는 버스에서 인사말에 인용한 얘기다. 새벽에 출발하여 리움 박물관에서 조선화원전(畵員展)을 보고 남산 한옥촌을 거쳐 장장 180분의 뮤지컬 조로를 감상한 뒤, 자정이 다 되어 대전에 도착하는 강행군에, 대부분 나이 지긋한 일행이 28분이나 동참하였다. 너나없이 힘든 요즘 세상에 자신은 물론 2세들의 감성 함양이나 국가 브랜드 향상에 꼭 필요한 일이라 하더라도, 문화예술을 후원하고 공연장을 찾는 일이 때로는 지치고 더러는 아깝기도 하련만, 변함없이 기부하고 동참하는 것은 역시 지적호기심을 떼어놓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후원회에 가입한 날을 하나의 분수령으로 삼아, 자신의 인생을 그날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보는 그런 마음 자세로, 항상 젊고 의미 있게 살아갑시다.”라는 멘트로 인사를 마쳤다.


어느덧 십여 년을 헤아리는 고등법원 민사조정 일도 그렇다. 인정이 흘러넘쳐 공과 사가 동행하고 고소고발이 유난히 많은 사회인지라, 1심에서 일회전을 마치고 올라온 피고와 원고는 감정이 극도로 격앙되어 있어 조정은 시작부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필자는‘인’자로 시작하는 세 가지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조정 며칠 전에 도착하는 1심판결문과 항소이유서와 피 항고인의 준비서면, 이 세 서류를 대충 읽어서는 사건전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내가 몰랐던‘인생’을 공부해본다는 지적호기심으로 접근하면, 집중력이 높아져 이해가 쉬워진다. 둘째는‘인내’다.


피고 원고 할 것 없이 당사자들은 재판부가 내 사정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사자들이 터놓고 말하도록 끈기 있게 유도하고 경청하는 일이야 말로 설득의 제 일보다.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이 정신과치료의 절반이듯, 대화심리학에서는 경청을 가장 적극적으로 침묵하는 행위라고 부른다. 속을 털어놓은 당사자는 마음을 열 자세가 될뿐더러, 조정자 또한 끈기 있게 듣는 과정에서 엉뚱한 곳에 숨어있던 분쟁의 씨앗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점을 파악하고 양측 당사자의 마음에 준비가 되면, 상식에 맞고 타당한 타협점을 찾아준다.


이 단계에서는‘인정’에 호소한다.  바로 감성에의 소구(appeal)다. 양측이 가족이나 친구관계였다면 꿀처럼 달콤하던 그 시절로, 거래당사자들이라면 적어도 악의 없이 상담을 하던 그 관계로 되돌아가, 마음의 평화를 찾고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하여, 양측이 이를 받아들이면 조정이 성립되는 것이다.


“가장 훌륭한 판결보다 가장 나쁜 조정이 낫다”는 법언은, 판결 후유증이라는 앙금 없이 국민화합에 기여하는“설득과 타협”을 강조하고 있다.  인생을 공부하고 인내로 경청하며 인정에 호소하는 세 개의‘인"은, 임기 내내 MB를 괴롭힌 소통과 설득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자, 나아가 세계적인 사회불안을 가리키는 화두인 세대갈등의 해소에도 단초가 될 것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말 잘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요, 막말까지 마구 배설하여 갈등을 부추기는 인물은 또 얼마나 많은가. 신년 새해를 내가 말을 잘하기에 앞서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한 해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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