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근교 바다의 작은 섬에 배를 타고 갈 일이 있었다. 짧은 뱃길이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왠지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요즘 매스컴을 통해 많이 들어서 알고 있는 ‘평형수’는 제대로 채워졌을까? 구명조끼는 어디 있지? 하면서. 다행히 세월호 사고 직후라 그런지 관계자들의 표정이나 행동에서도 진지함이 느껴지고 비교적 차분하지만 철저한 탑승 관리가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섬에 도착한 일행은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섰던 터라 목적지 근처에서 막걸리 한 잔으로 허기를 달래기로 했다. 우리 일행이 식당에 들어서자 주인아주머니는 반가운 인사뒤에 푸념을 늘어놓았다.
요즘이 섬에서는 일 년 중 가장 바쁜 때라고 한다. 그런데 손님이 너무 줄어 매출에 큰 영향이 있다고 말이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소비 경기 위축이 여기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배를 타고 와야 하는 곳이라 더욱 영향이 심각하다고 한다.
조금씩 나아지는 기미는 있다니 어서 평상시로 돌아가기를 함께 빌어 본다. 이처럼 누군가의 작은 실수 하나가 이렇게 작은 곳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무섭다.
책임자 한 사람의 현명한 결정과 구성원들의 반복된 훈련이 얼마나 필요하고, 게다가 각자의 책임감과 희생정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얘기할 필요가 더 이상없겠다.
세월호사고에서 보았듯이 우리 사회에는자기는 잘못 없다는 주장만이 난무하다. 환자들 중에도 병·의원에 진료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선생들끼리 얘기한다.
주의 사항이나 치료 과정, 결과 등을 설명했어도 이해하고 따르려 하지 않고, 본인의 생각과 다르면 무조건 틀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진 듯하다.
13년 전 미국의 한 치과대학에서 본 광경이다. 스태프가 통증을 호소하는 초진 환자에게 진료 전에 일일이 설명하고 사인을 받는 데 한 나절이 걸린다. 하지만 환자와 스태프는 자연스럽게 당연한 듯 긴 대화를 계속하고 있었다. 아마 우리나라 같으면 “아파 죽겠는데 뭐하는 거냐”고 거센 항의를 받았을 것이다. 반면에 우리에겐 현실적으로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고정관념에 갇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물론 사정이 있겠지만 이 지경이 되어서야 병원에 와서는 그토록 성급하게 행동하는지 야속할 때가 적지 않고, 한참을 치아 없이 살아온 어르신이 이번 주말에 잔치가 있으니 틀니를 빨리 만들어 달라는 요구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빠른 시간 안에 어떤 결과를 원하는 사람들의 조급함은 절차를 무시해야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캐나다의 한 관광지에서 있었던 일도 떠오른다. 엘리베이터에 남는 공간이 있어 함께 타기를 청했지만 운영자가 정원과 중량 초과를 이유로 단칼에 거절하던 것이다. 절차와 원칙을 지키는 것보다 빠른 결과를 얻는 것이 융통성이라고 알아 왔던 우리네 정서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의사나 환자 모두가 바쁘다는 이유로 절차를 등한시한다면 언젠가 큰 문제가 생길 소지는 다분하다. “뭘 이렇게까지~~”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중에 생길 문제에 대한 꼭 필요한 과정인 것이고 그것이 결국 양쪽에 더 유익하리라고 생각된다.
진료의 주체인 의사가 항상 여유있게 진심으로 다가가서 설명하고 교육하여 환자의 생각에 치우침이 없이 중심을 잡아 주도록해야 한다. 환자의 의식 수준도 높아져야 하겠지만 먼저 우리 의사들의 변화가 필요할 때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평형수’와 같은 역할과 치과계의 ‘평형수’로의 의무도 반드시 해야 하겠다. 그렇지 않았을땐 치과계도 가라앉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 돌아오는 길에 사찰 입구에서 곡식과 반찬거리들을 좌판에 늘어놓고 파는 할머님 여럿이 계셨다. 연세 많으신 분들이 이른 아침부터 준비해서 들고 나오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았을 텐데도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별로 없다.
그냥 지나치기 뭐해서 땅콩과 곡류 몇 가지를 팔아 드렸더니 인상 좋으신 할머니께서 땅콩 한 움큼을 더 집어 주셨다. 개시해 줘서 고맙다고 가다가 먹으라고 하신다.
치아도 몇 개 없는 웃음 띤 그 얼굴에는 세상의 많은 일이 스쳐 간 주름들이 깊다.
하지만 어느 누구보다 환한 모습에 젊은 내가 부끄러움을 느꼈다. 괜찮다고 해도 한사코 싸 주신 땅콩을 나눠 먹으며 돌아오는 뱃길에 올랐다.
갈매기 떼가 평화로이 자유롭게도 날아다닌다. 복잡한 인간들의 세상을 아마도 갈매기들은 모르~으리.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호진 양평 영진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