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관계

  • 등록 2025.05.21 1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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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최선을 다할게요. 선생님도 힘을 내주세요.”

 

치료받기 직전에 체어에 누운 채로 환자가 한 말이다. “너무 멋진 말이네요. 힘이 납니다.” 대답을 하고 치료를 시작하였다. 22년차 치과의사에게 환자의 의욕은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저년차일 때에는 젊음과 패기로 식어가는 환자도 데워서 볼 수 있었지만 열정을 되찾기 위해 때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동기부여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야 하는 고년차 치과의사에게, 차갑게 식은 환자를 마주하는 일은 참 난감한 일인 것 같다.


병원에서의 유대관계는 치유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이다. 환자와 의료진의 관계, 의료진 간의 관계가 동맹의 관계가 되는 일은 대화가 선순환되도록 하기 위해, 치료행위가 무탈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조금 어렵더라도 의료진은 그 일을 해내야 한다. 선순환적 관계 형성, 치료의 성공을 반복하여 환자군 전체를 정화시켜 나가는 것이 원장이 해야 할 일이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좋은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 분위기부터가 관계에 있어서는 차갑게 식은 상태이다. 학교, 회사, 가게 등 모든 공간에서 인간관계라는 것은 예전보다 차가운 것이 되었다. 병원도 그 흐름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을 가르고 뼈를 깎는 의료 현장에서의 인간관계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온건하게 맺어가야 한다고 생각된다. 건강과 생사가 걸려있는 의업의 현장에서 유대관계라는 것은 어쩌면 생명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의료진과 환자가 동맹의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서로 경계심을 조금씩 풀고 동반자가 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의료 사고, 의료 과오에 대하여 감각을 곤두세운 나머지, 시작도 하기 전에 책임을 논하려 하는 마음가짐을 갖는다면 그것은 의료 행위를 방해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은 의료진과 환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병원은 하늘이 도와야 하는 현장이다. 자신을 치료할 의료진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가짐을 갖는 환자는 하늘이 돕는다.

 

유대관계의 힘을 깨달은 의료인이 많아져야 함을 느낀다. 유대관계가 치료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게 된 의료진은 그 유대관계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한다. 그 유대관계의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에 다음 치료에 있어서도 늘 유대관계의 형성이 선결과제이다. 생명과도 같은 유대관계를 위해 신뢰관계 또한 살뜰히 보살핀다. 정직하게 진료하고 책임감 있게 돌본다. 의심 많은 환자조차 신뢰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행동한다.

 

치료받는 동안 최선을 다할 테니 힘을 내달라는 말을 들으며 이 환자가 나와 동맹의 관계에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질병과 맞서 싸우는 의료의 현장에서 환자의 신뢰는 의료진에게 큰 힘이 된다. 의료진이 환자의 조력없이 질병과 맞서 싸워야 한다면 얼마나 고독하겠는가. 환자가 의료진을 불신하고 돕지 않는다면 그것은 의료진의 편에 서야 할 환자가 질병의 편에 서는 것과 다름이 없다.

 

요즘 세상에 환자와 유대관계를 형성해가며 의료를 해나간다는 것, 참 힘든 일임을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종종 찾아온다. 의료계 종사자들이 신뢰받고 환자들이 진심으로 협력하는 사회가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의료를 경험하며 살게 될 것 같다. 어느 쪽이 먼저이든 어서 선순환이 시작되어서 의료 현장이 더 의미 있고 감동적인 시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곽재혁 좋은이웃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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